기후 저널리즘의 길을 찾다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는 국내 최초의 기후위기 전문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노광준 PD는 자신을 ‘기후보좌관’이라 소개하며, 기후 담론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방송을 만들고 있다. 20년 넘게 라디오 PD로 활동한 그는 만 50세 되던 해 방송국이 폐국되면서 실업자가 됐고, 그 시기가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사회가 필요로 하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죠. 농업과 토양학을 전공했고, 먹거리·임업 분야에도 익숙했으니 기후 저널리즘이 딱이더라고요.” 기후는 과학자만의 영역이 아니라며, 자신의 저널리즘 경험이 기후위기 대응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기후’는 2023년 개국 두 달 만에 ‘이달의 PD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사람들이 매일 날씨를 확인하듯 기후 변화에 대한이야기도 일상적으로 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날씨만큼 오늘의 기후도 중요하다는 뜻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하루 1시간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매일 2시간씩 방송된다. 그는 “기후 문제는 거대한 담론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밥상, 옷, 전기, 물까지 모두 연결돼 있어요. 기후 담론의 일상화가 저희 프로그램의 핵심 가치입니다”라고 전했다. 이 방송의 철학은 노 PD가 펴낸 책 《오늘의 기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후 초심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로, 꿀벌 실종 사건부터 탈원전 논란까지 우리 주변에서 놓치기 쉬운 기후 이슈를 다시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한다.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피부가 편안해졌다’는 내용입니다. 또 화학성분이 없는 안전한 제품을 사용하면서 환경 보호에도 동참할 수 있어 만족감도 큰 것 같습니다.”

시민이 만드는 뉴스, 그리고 물 이야기

‘오늘의 기후’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이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청취자들이 직접 현장의기후 이야기를 전하는 ‘기후 톡파원’ 제도를 통해 기존 뉴스에서는 볼 수 없던 생생한 소식들이 소개된다. 노 PD는 특히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후 한 청취자가 공연장 후기를 보내준 사연을 언급하며 “현장감이 생생해서 청취자들도 마치 직접 다녀온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또 폭설로 양계장 닭 2만 마리가 죽었지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연도 소개됐다. “그 제보자는 수의사였는데, 이런 뉴스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거든요. 앞으로는 해외 톡파원도 늘려서 전 세계 기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할 계획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그램이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기후 이야기를 더 깊이 풀어간다는 점이다. 도시계획 전문가, 프랑스에서 건축을 연구하는 학자, 에너지 전문가, 먹거리 전문가 등 각 분야의 전문 출연진이 릴레이로 출연하며 기후위기는 단순히 재난이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친 문명의 전환 문제임을 일깨운다. “출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두 달씩 기다리셔야 할 정도예요. 이만큼 기후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노 PD는 AI의 물 사용 문제를 언급하며 “생성형 AI가 질문 6개를 처리할 때마다 물 한 컵(약 200ml)을 쓴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냉각수로 엄청난 물을 소비하는데, 이 추세라면 2027년쯤에는 AI가 쓰는 물 사용량이 영국 전체 물 사용량의 절반에 이를 거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경기도에 들어서는데, 반도체 공장은 특히 초순수 정수를 필요로 해서 물 부담이 큽니다. 국가 차원에서 물 효율화와 기술 개발이 절실해요.” 그는 개인적인 실천으로 고체 비누 사용을 추천했다. “고체 비누를 쓰면 확실히 물을 덜 쓰게 되고, 요즘은 고체 샴푸도 좋아서 환경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물을 아껴야 하는 이유를 아프리카의 현실을 통해 설명했다. “저희 방송은 한 달에 한 번씩 아프리카 현지를 연결하는데,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화가 만드는 변화, 그리고 내일

노 PD는 기후 대응에서 문화의 역할도 중요하게 본다. 싸이의 ‘흠뻑쇼’를 언급하며, 공연이 열리던 시기 전남 지역이 6개월 이상 가뭄을 겪으면서 대규모 물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실제로 불거졌던 상황을 짚었다. “한쪽에서는 샤워도 제대로 못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물을 펑펑 쓴다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만약 공연에 재활용된 빗물을 썼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그는 유럽의 사례도 언급했다. “프랑스에서는 가뭄 때 주민들이 골프장에 몰래 들어가 홀을 막는 일이 벌어졌어요.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물을 둘러싼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콜드플레이의 내한공연은 공연계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는 이 지속가능한 투어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 대중문화에도 변화를 촉구했다. “콜드플레이는 재생에너지, 플라스틱 감축, 나무 심기 등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 케이팝도 명품 브랜드 모델만 할 게 아니라 비건 레더 같은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식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세계적인 문화 리더로 남을 수 있어요.” 《오늘의 기후》 책에서도 그는 “단순한 볼거리에서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문화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우리가 어떤 문화적 선택을 해야 할지 묻는다.방송인으로서의 꿈도 밝혔다. “방송국도 전기와 물을 많이 쓰거든요. 재생에너지 100%로 운영하는 방송국, 이른바 RE100 방송국이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부터 그런 변화를 실천해보려 합니다.” 노 PD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우리는 물이 너무 흔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요.하지만 작은 실천의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듭니다.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부터, 이제 우리 모두가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