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철도역은 산업화가 진행되고, 승용차 이용이 대중화된 시기부터 오랫동안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도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철도역만큼 도시의 모양과 사람들의 삶을 깊이 바꾸어 놓은 시설도 드물다. 그것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 있는 지하철이든, 대도시와 주변 외곽지역을 이어주는 광역철도든, 오늘날 대표적인 고속 교통수단인 고속철도이든 간에 그 역이 놓이는 순간 그곳에는 길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고, 마침내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곳은 번성하는 곳이 되어왔다. 지난 120여 년 동안 철도역은 ‘이동의 점’에서 ‘머무름의 장소’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 변천의 궤적을 되짚는 일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복합개발과 대중교통지향형 개발(TOD)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의 기록
철도역은 어떻게
우리의 도시를 바꾸어 왔는가?
우리나라 역세권 개발의
변천과 의미
철도역의 탄생과 도시의 성장
우리 철도의 출발점은 1899년 9월 개통한 경인선이다.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이 첫 철길과 함께 등장한 역은, 단순한 정차 시설이 아니라 근대 도시로 들어서는 ‘관문’이었다. 역 앞에는 광장이 생기고, 광장을 따라 여관과 상점과 시장이 들어섰다. 이른바 ‘역전(驛前)’ 시가지이다. 사람과 물자가 역을 통해 드나들면서, 역전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서 가장 붐비는 중심이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로 영국, 유럽, 일본, 미국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철도의 역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길목에 놓인 대전은 한적한 고을에서 충청권의 거점 도시로 성장했고, 이처럼 철도가 키운 도시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간선 철도가 비껴간 상주, 전주, 익산 등의 전통 도시들은 활력을 잃기도 했다. 이는 중요한 역들의 위치가 곧 도시의 위계를 새로 쓰던 시대였던 셈이다. 역사는 도시의 얼굴이자 번영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시기의 역세권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발’한 결과가 아니라, 사람과 흐름이 모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의 중심 시가지였고, 이러한 자생적 집적이야말로 이후 모든 역세권 개발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고속도로 개발과 승용차 대중화 시대로의 진입은 이러한 철도역의 역할이 축소되는 계기가 되었다.
호남선 개통 당시 군산역(1914년)
역세권 개발의 진화: 역사(驛舍)에서 역세권으로
움츠러들었던 역이 다시 도시의 중심으로 불려 나온 계기는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이었다. 서울역–청량리 지하 구간과 함께 경부·경인·경원선에 전동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역은 특별한 여행의 출발점이
아니라 매일의 통근과 통학을 떠받치는 일상의 결절(結節)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역은 여전히 ‘계획적으로 개발되는’ 대상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전환은 1980년대의 민자역사(民資驛舍)에서 비롯되었다. 1982년 철도청이 국유재산 활용 규정을 정비하면서, 민간 자본으로 역사를 새로 짓고 그 안에 백화점과 상업시설을 들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사업자
설립을 기준으로는 1986년의 영등포역이, 개장을 기준으로는 1988년의 서울역이 그 출발점이다. 민자역사는 ‘역=교통시설’이라는 오랜 등식을 깨고, 역 자체를 상업과 결합한 복합시설로 바꾼 첫 실험이었다. 역이
도시의 소비와 생활을 담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개발은 아직 역사라는 한 점(點)에 머무는 복합건물 수준이었다. ‘역세권’이라는 말이 도시계획의 일상 용어로 자리 잡고, 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짜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철도 역세권 개발은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역사의 교통 기능에 충실하던 시기, 역사 건물을 상업·업무 중심으로 키운 시기, 그리고 역사를 넘어 인접 지역까지 아우르는 도시적 복합(재)개발의 시기다. 우리가
흔히 ‘역세권 개발’이라 부르는 것은 마지막 단계이며, 이는 서울 지하철 1기(1~4호선) 건설이 본궤도에 오르고 2기(5~8호선)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 이후의 일이다.
역세권 개발이 광역적·전국적 스케일로 도약한 것은 2004년 고속철도(KTX) 개통과 함께였다. 광명·천안아산·오송처럼 새로 놓인 고속철도역 주변에는 신도시급 개발이 그려졌고, 기존 도심의 역들도 광역 거점으로
재편되었다.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2010년에 제정·시행된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아직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역세권개발구역의 지정과 사업 시행 절차를
체계화했을 뿐 아니라, 철도사업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역세권 개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추진된 복합환승센터는 철도와 버스, 도시철도의 환승 기능에 상업·업무 기능을 더해, 역을
‘갈아타는 곳’에서 ‘머무는 곳’으로 끌어올렸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백화점을 비롯한 복합용도 개발과 버스-철도-택시 등의 복합환승센터로 자리매김한 동대구역이다.
남대문과 전차 운행 전경(1930년)
마포아파트 전경(1963년)
장항: 삶의 현장(1970년)
수도권전철화계획도(1971년 추정)
TOD 관점에서 본 역세권 개발의 의미
자생적 역전 시가지에서 출발해 민자역사와 KTX 역세권을 거쳐 온 우리 역세권의 진화는, 결국 대중교통지향형 개발(Transit-Oriented Development, TOD)이라는 개념으로 수렴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역 인접의 고밀복합개발이 곧 TOD인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 특히 철도역과 토지 이용이 긴밀히 조율되지 않은 채 이루어진 개발은 역 주변에 들어선 무질서한 개발과 다르지 않다. TOD는 1990년대
초 피터 캘소프(Calthorpe)가 그 개념을 제시한 이래 철도역과 같은 대중교통 결절점을 중심으로 한 고밀도의 복합개발과 더불어 걷기 좋은 도시설계의 계획요소가 결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핵심은
단순하다. 역을 중심으로 충분히 밀도 높고, 주거·업무·상업이 어우러지며, 걸어서 다니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중에서도 서울은 TOD의 토양이 유난히 비옥한 곳이다. 일찍부터 역을 중심으로 고밀 개발과 높은 대중교통 분담률을 자연스럽게 이루어 왔기 때문이다. 서울은 대중교통을 먼저—때로는 개발과
나란히—공급하고, 토지구획정리와 택지개발로 고밀·복합 시가지를 빚어내며, 도시계획과 용도지역제로 이를 뒷받침해 왔다. 그 사상적 기원에는 1980년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강병기 교수가 제안한 ‘로자리오(염주형)
계획’이 있다. 지하철 역세권을 염주 알처럼 꿰어 고밀 개발을 유도함으로써, 충분한 이용 수요를 확보하고 대중교통의 지속적 운영 기반을 마련하려는 구상이었다. 실제로 아파트를 먼저 공급하고 지하철을 뒤에 놓은 ‘개발
선행’ 방식조차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는 효과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은, 재정이 빠듯한 여건에서 그 당시의 서울이 택한 길을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 경험은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국내 지방 중소도시는 물론,
빠르게 도시화하는 개발도상국 도시들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다만 토양이 비옥하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은 교통의 ‘결절(Node)’인 동시에 사람이 머무는 ‘장소(Place)’다. 그동안 우리의 역세권은 환승과 통과라는 결절의 효율에 무게를 실어
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결절을 사람이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로 완성하는 일이다. 또한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젊은 사람들이 점차 서울로 이주하면서 지방이 침체하는 시기에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개발의 역량을 집중하고, 도시와 국토의 공간구조를 재편함으로써 21세기 중반 이후로도 철도역이 도시와 국토의 중심축이 되어 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가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종로선 및 수도권전철 개통(1974년)
서울역 전경(1976년)
서울역 전경 (1976년) 사진 출처: 서울역아카이브
역세권 개발의 과제: 통합개발과 개발이익 환수, 그리고 사회적 포용
역세권을 ‘좋은 장소’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남는다. 첫째는 개발이익의 공공 환원과 재원 조달이다. 홍콩은 철도와 부동산을 한데 묶은 ‘철도 + 자산(Rail+Property)’ 모델로 역세권에서 생긴
개발이익을 철도 재원으로 되돌렸고, 일본과 프랑스도 토지구획정리와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통해 통합개발을 이끌었다. 우리 역시 개발부담금과 광역교통시설부담금, 민간투자 유치 등 여러 장치를 운용해 왔다. 다만 서울
9호선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논란이 보여 주듯, 수요 예측과 위험 배분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역이 만들어 내는 가치는 본질적으로 철도라는 공공 인프라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 가치를 도시
전체로 되돌리는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는 사회적 포용이다. TOD는 접근성을 높여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리지만, 바로 그 때문에 임대료가 치솟고 원주민과 소상공인이 삶터에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부를 수 있다. 역 인근에 저렴주택 비율을
의무화하고, 세입자를 보호하며, 계획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고, 개발이익을 형평하게 되돌리는 노력이 모두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역세권은 ‘모두를 위한(for all)’ 공간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관심과
정책결정자의 일관된 계획, 지속적인 정책적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경전선 마산시내 구간
기존 서울역·용산역·영등포역에 이은 네 번째 고속철도 정차역인 수서역
철도역은 지난 120여 년 동안 도시의 관문에서 생활의 결절을 거쳐, 이제 도시가 모여드는 장소로 진화해 왔다. 역세권 개발의 역사는 곧 우리 도시가 철도와 함께 성장해 온 역사이며, TOD는 그 오랜 흐름의 자연스러운 종착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마침 지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와 남부내륙선, 중부내륙선, 동해선, 충북선 등의 철도 고속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도시 내와 도시 간, 지역 간의 철도망은 역세권의 단위를 하나의 도시에서 광역권으로, 그리고 보다 더 큰 범역으로 넓힌다. 지상과 지하를 아우르는 입체적 통합 설계, 보행과 환승의 매끄러운 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머무르고 싶은 장소’라는 목표가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좋은 역세권은 빠르게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철도가 도시를 바꾸어 온 다음 장(章)을, 우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쓰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