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기록

이동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여는
철도 자산의 재발견

철도역과 철도부지는 오랫동안 ‘이동을 위한 통로’로만 여겨졌다. 열차가 지나가는 공간, 화물이 쌓이던 야적장, 도시를 가로지르며 공간을 단절하는 거대한 교통시설. 그러나 인구 감소와 저성장, 산업 대전환과 도심 내 가용 토지 고갈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철도 자산은 전혀 다른 얼굴로 재조명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고속·광역철도망이 확충되면서 철도역은 ‘시·공간 압축’과 ‘네트워크’ 효과가 가장 기대되는 공간이 되었고, 도심 한복판의 철도부지와 그 상부·지하는 우리 국토와 도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른자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한 난제는 이 잠재력을 어떻게 실제 가치로 바꾸는가이다. 이미 그 해결의 단초를 해외 선진 도시들이 보여주고 있다. 뉴욕은 철로 위에 새 땅을 지었고, 도쿄는 철도를 아래로 내려 지상을 열었으며, 런던은 버려진 부지를 되살렸다.

달리는 열차 위에 세운 새로운 땅, 뉴욕 허드슨 야드

맨해튼 서쪽, 하루에도 수백 편의 열차가 드나드는 롱아일랜드철도(LIRR) 차량기지 위에는 원래 아무것도 지을 수 없는 ‘빈 하늘’만 있었다. 허드슨 야드는 이 운행 중인 선로 위에 약 28에이커(약 11만㎡)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지반을 얹어, 말 그대로 ‘없던 땅’을 만들어낸 사업이다. 열차 운행을 멈추지 않은 채 선로 사이 좁은 틈에 300여 개의 대구경 케이슨을 박고 그 위에 데크를 올려, 13개의 초고층 건물군(연면적 약 111만㎡)이 집적된 복합도시를 세웠다. 총사업비는 약 250억 달러(약 34조 원)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부동산 개발로 기록된다.

주목할 것은 철도 자산이 재원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뉴욕 교통공사(MTA)는 차량기지 상부의 공중권(Air rights)을 99년간 임대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유동화했고, 허드슨 야드는 MTA 역사상 단일 사업으로 가장 많은 약 17.8억 달러를 기여받은 수익을 낳는 자산이 되었다. 여기에 뉴욕 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 등 공공 투자가 더해져 민간 개발을 견인했다.

기능과 성과도 뚜렷하다.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50 허드슨 야드에 본사를 두었고, 웰스파고, 워너미디어, 메타 등 금융·미디어·IT 기업이 잇달아 입주했다. 여기에 전망대 엣지(Edge), 공연예술센터 더 셰드(The Shed), 조형물 베슬(Vessel) 같은 세계적 문화·관광 시설이 결합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허드슨 야드가 완공되면 뉴욕시 GRDP에 연 약 190억 달러(시 전체의 2.5%)를 기여하고 약 5만 6,000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혁신적 공간이 인재를 끌어오는 ‘무기’가 된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허드슨 야드는 유휴 철도 자산을 도시의 새로운 업무·산업·문화와 인재의 거점으로 전환시킨 대표 사례이다.

철도를 지하로 내리고 도시를 위로 세운, 도쿄 시부야

세계에서 가장 바쁜 횡단보도인 ‘스크램블’로 유명한 도쿄 시부야역은 4개 사철 사업자의 9개 노선이 만나고 하루 이용객만 2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철도역 중 하나다. 이곳에서 ‘100년 만의 대개조’라 불리는 재개발이 2010년대 초부터 202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은 다름 아닌 철도 지하화였다. 2013년, 지상에 있던 도큐 도요코선(시부야~다이칸야마 구간) 시부야 종착역을 지하로 내리고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과 직결시키면서, 지상에는 넓은 부지가 열렸고 복잡하던 JR 승강장도 재편할 여지가 생겼다.

이렇게 확보된 공간 위에 사철 사업자인 도큐(Tokyu)가 직접 시행자로 나서, 옛 지상 선로 부지에 2018년 35층 규모의 ‘시부야 스트림’을, 역 상부에 2019년 시부야 최고층(229m)인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를 세웠다. 여기에 히카리에(2012), 후쿠라스(2019), 미야시타파크(2020), 사쿠라 스테이지(2024)가 더해지며 역 일대가 통째로 입체 복합 거점으로 재탄생했다.

가장 큰 변화는 도시의 ‘위상’이다. 옛 선로 부지 위에 지어진 시부야 스트림의 상층부(14~35층, 약 5만㎡)에는 2019년 구글 일본 본사가 들어왔고, ‘구글 포 스타트업 캠퍼스’도 함께 문을 열었다. 2010년 롯폰기로 떠났던 구글의 복귀는 1990년대 말 일본의 IT 중심지였던 시부야 ‘비트밸리(Bit Valley)’의 부활을 상징한다. 업무공간 부족으로 기업들이 빠져나갔던 쇼핑·유흥의 거리가, 철도 지하화가 열어준 부지 위에서 글로벌 IT·창업 거점으로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철도 자산을 가진 사업자가 개발이익으로 철도 지하화와 기존 철도역 개량, 도시 공간 재구조화를 함께 이끄는 이 방식은, 철도와 주변의 개발이익을 철도에 재투자하는 이른바 R+P(Rail and Property, 철도·부동산 통합개발) 모델의 전형을 보여준다.

버려진 철도부지가 국가와 도시의 혁신 거점으로, 런던 킹스크로스

런던 킹스크로스역과 세인트판크라스역 북쪽에는 약 67에이커(약 27만㎡)에 이르는 낡은 철도부지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창고와 가스공장, 오염된 땅이 뒤섞여 런던이라는 글로벌 도시의 도심 한복판에 접근조차 어려운 ‘버려진 섬’이었다. 이 땅이 되살아난 계기는 1996년 유로스타 터미널을 세인트판크라스로 옮기기로 한 고속철도(CTRL) 결정이었다. 단일 소유주인 킹스크로스센트럴 유한파트너십(KCCLP)이 부지를 통합 관리하며, 장기·인내 자본을 바탕으로 20여 년에 걸친 일종의 도시재생을 추진했다.

계획은 명확했다. 역사 건물 20동을 복원하고 신축 건물 약 50동, 신설 도로 20개, 대형 공공공간 10개를 조성하며, 주택 약 2,000호(이 중 약 40%가 부담가능주택 또는 공공주택)를 공급했다. 또한 부지의 40% 이상을 공원·거리·광장 같은 공공공간으로 채운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발생한 개발 이익은 세인트판크라스역과 철도 기반시설 개량을 뒷받침하는 재원으로도 활용되었다.

성과는 ‘가치의 역전’으로 요약된다. 첫 입주자인 세계적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마틴스(런던예술대)는 2011년 옛 곡물창고를 약 2억 파운드를 들여 개조한 캠퍼스로 이전하며 이 일대의 창의적 분위기를 규정했다. 또 18세기의 석탄창고 2개는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설계를 통해 콜 드롭스 야드(Coal Drops Yard)라는 건축적 아이콘으로 변모했다. 이어 구글(신사옥), 메타,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아스트라제네카, 나이키, 삼성 등 글로벌 기업이 몰려들었다. 그 결과 지역 내 일자리는 2011년 8,000개에서 2019년 2만 7,000개로 늘었고, 입주 기업 수는 2010~2021년 사이 약 800개로 두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업무공간 임대료가 2010년 런던 도심 평균보다 약 48% 낮은 수준에서 2022년 약 19% 높은 수준으로 역전되었다. 한때 아무도 찾지 않던 철도부지가 런던의 ‘지식·혁신허브(Knowledge Quarter)’이자, 런던과 유럽에서 ‘가장 힙한장소’로 바뀐 것이다.

세 도시의 공통된 유산과 우리의 과제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세 개 도시 사례가 던지는 주요 메시지는 공통된다. 첫째, 철도 자산은 도시에 남은 가장 저평가된 미래 자산이며, 뉴욕의 철도 상부 인공지반과 도쿄에서 철도 지하화가 연 지상, 그리고 런던의 철도 유휴부지 재생 모두가 철도의 입체적 활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둘째, 그 막대한 재원은 개발이익 환수(Value capture)와 결합해서 조달되었다. 뉴욕의 공중권 임대, 런던의 개발이익 철도 재투자, 도쿄의 철도-부동산 통합개발(R+P)이 그것이다. 셋째, 세 곳 모두 단순한 상업 개발에 그치지 않고 혁신·창업·문화·교육 기능을 유치해 도시와 국가의 위상 자체와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넷째, 어느 사례도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20여 년에 걸친 인내와 일관된 거버넌스가 공통분모였다.

우리에게도 이 흐름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24년 제정된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은 ‘선(先) 지하화, 후(後) 개발이익 환수·재투자’라는 재정 모델을 제도화했고, GTX 등 광역고속철도와 복합환승센터,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도심융합특구는 철도역을 국토와 도시의 미래 성장거점으로 재편하고 있다. 철도 자산을 ‘이동의 통로’에서 ‘국토의 미래 성장 앵커’로 다시 정의하고, 시·공간 압축과 네트워크 효과를 결합한다면, 우리의 철도역세권 역시 다핵 네트워크 국토를 지탱하는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 사례는 빛만큼 그림자도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다. 개발이익이 확실한 요지로만 개발이 집중되면 자칫 사업성이 낮은 구간의 역차별과 개발 재원확보가 불투명해지고, 지나친 고밀 개발은 교통 혼잡과 도시 경관적 위화감을 낳을 수 있다.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과 소상공인이 밀려나는 현상도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철도 자산의 미래 가치는 부동산 개발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도시의 품격, 그리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공성으로 환원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선로 위에 세워야 할 것은 더 높은 건물이 아니라, 더 나은 도시일 것이다.

참고 문헌

서민호. 2024. “국토·도시공간 재구조화를 위한 철도 지하화의 의미와 과제”. 월간 <교통> 제314호. 한국교통연구원. pp.20-27 서민호. 2025. “도심융합특구를 통한 초광역권의 성장과 공간혁신 플랫폼 형성”. 월간 <국토> 제525호. 국토연구원. pp.11-20 서민호. 2026. “지상·지하 입체도시 건설을 위한 기술 혁신의 도전과 과제”. <건설기술 쌍용> 통권83호. pp.26-38 Centre for Cities. 2022. Learning from King’s Cross Regeneration. PPIAF · The World Bank. 2017. Railway Reform: Toolkit for Improving Rail Sector Performance - Case Study: London King’s Cross. Related Companies · Oxford Properties. 2016. New Report Details Substantial Economic Impact of Hudson Yards Development. Tokyu Corporation. 2025. Greater SHIBUYA Redevelopment Strate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