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조선의 첫 철교, 한강철교 출처: 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1900년 7월 5일, 한강 위에 처음으로 철로가 지나는 다리, 한강철교가 놓였다.
나룻배와 배다리에 의지해 건너던 넓은 강 위로 마침내 기차가 지나갈 길이 생기자 서울로 들어가는 길의 성격도 완전히 달라졌다.
1930년 조선의 첫 철교, 한강철교
지금도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지만, 철교가 없던 시절의 한강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넓고 먼 강이었다. 강을 건너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고, 임금
행차처럼 큰 규모의 이동이 있을 때는 여러 척의 배를 이어 만든 배다리가 놓이기도 했다. 그만큼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국가의 질서와 역량이 걸린 일이었다. 그런 강 위에 철로 만든 다리가 놓인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낯설면서도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길 위에 배 대신 철재가 올라가고, 노 젓는 소리 대신 기적과 쇳바퀴 소리가 강을 가로지르는 일. 한강철교는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근대 토목의 상징이었다.
한강철교가 들어설 무렵 한반도의 철도는 아직 막 첫발을 뗀 상태였다. 1899년 9월 개통한 경인선은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구간만 먼저 열렸고, 기차는 한강 앞에서 멈춰 섰다. 인천에서 출발한 열차는
노량진까지만 달렸고, 그 이후 서울로 들어가려면 승객과 물자가 모두 내려 다시 배를 타야 했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데 육로로는 12시간, 뱃길로도 8시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철도는 이미 새로운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한강은 여전히 그 속도를 멈춰 세우는 마지막 경계였다.
용산~노량진간 한강인도철교 사진엽서
1900년 7월 5일, 그 경계 위에 마침내 한강철교가 놓인 것이다.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길이 1,110.25m의 다리였다. 약 4개월 후 남대문역 구간까지 이어지면서 경인선은 비로소 강을 넘어 서울과 연결되었다.
12시간 걸리던 길이 2시간 안으로 줄어든 순간이었다. 이후 수송물량이 늘어나며 한강철교는 제2철교, 제3철교가 놓이면서 경성으로 들어오는 길이자 다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길목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6·25전쟁은 이 다리를 다시 끊어 놓았다. 한강의 교량들은 폭파되었고, 한강철교 역시 파괴와 임시 복구를 반복해야 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깊었지만, 철길은 끝내 다시 이어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지나 복구가 계속되었고, 끊겼던 한강철교는 1969년 6월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복구를 마쳤다.
한강철교의 시작은 일본이 침탈을 위해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목적으로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서울로 들어오는 문이자 전국으로 뻗어가는 철도의 등뼈가 되었다. 지금도 매일 수많은 열차가 이 다리를 건너 전국으로
향한다. 강 위에 놓인 한 줄의 철길은 그렇게 서울의 방향을, 그리고 한반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한강철교 공사
한강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