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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은 경천동지의 연속이었다. 그해 5월, 대한제국 한성부에는 경희궁 앞을 출발해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 인근인 청량리까지 달리는 전차가 개통되었다. 이어 9월에는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기차도 뚫렸다. 넉 달
사이에 쇠바퀴를 단 탈것이 두 종류나 생긴 것이다. 당시 전차의 개통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이자, 독립국 수도로서는 도쿄보다도 빨랐다. 개통식이 있던 날, 전차가 흥인지문을 통과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성문 위에
새까맣게 모여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고 한다.
하지만 개통 일주일 만에 탑골공원 앞에서 5살짜리 어린이가 전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침 극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전차 탓이라는 소문이 돌던 차였다. 분노한 군중은 일본인 운전사를 폭행하며 전차 두 량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차의 등장으로 시공간 감각이 완전히 뒤집혔기 때문이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속도의 기준은 걷기였다. 양반은 가마나 말을 탔고, 형편이 되는 사람은 인력거를
탔다. 나머지는 그저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충 ‘해 질 녘쯤 도착하겠지’였다. 걷다가 힘들면 쉬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예측의 시대는 끝났다. 걸어서 두세 시간 걸리던 거리는 전차를 타면
한 시간 만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전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서울의 반경도 점점 넓어졌다. 사대문의 안과 밖의 개념이 사라지고, 마포선·왕십리선 등 신설 노선이 뻗어나갔다. 전차 종점 주변에는 새 거주지가 형성되었는데, 돈암동·청량리·마포·영등포가 바로 그렇게 생겨난
지역들이다.
전차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신분과 성별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전차는 차비만 있으면 누구든 탈 수 있었다. 양반과 평민, 남녀가 같은 칸에 나란히 앉았다. 지엄했던 반상의 법도도, 남녀칠세부동석의 가르침도
근대가 가져온 속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전차는 1939년 하루 이용객 39만 명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과 광복 직후의 혼란,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며 빠르게 기울었다. 특히 6·25전쟁 이후, 궤도와 차량이 대거
파괴된 데다 전력 부족으로 운행이 중단되는 일도 잦았다. 노후한 차량과 시속 7km의 속도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도로에는 자동차와 버스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어느새 구시대의 전차로는 폭증한 인구와 시대가 요구하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밤 깊은 마포종점 / 갈 곳 없는 밤 전차 /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1968년 7월 발표된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가사처럼, 전차의 처지는 구슬프고 암울했다. 1966년, 서울 대중교통 분담률에서 전차는 이미 15%로 줄어든 상태였고, 도로 한복판을 차지한 궤도는
자동차들의
등쌀에 치이며 ‘교통 체증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썼다. 결국 1968년 11월 29일 자정, 마지막 전차가 시내를 달렸다. 폐선 후 전차의 궤도는 아스팔트로 덮였다. 그렇게 최초의 대중교통은 사라졌다. 시대는
다시 한번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게 아스팔트 아래 묻혀 영영 잊히는 듯했던 전차가 58년 만에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위례선 트램이 2026년 12월 개통을 앞두고 시운전을 시작했고, 대전시 역시 도시철도 2호선 전 구간을
트램으로 짓는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물론 과거 대한제국의 전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는 침목도 없는 레일 위를 달리며 땅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면, 지금은 매립형 레일과 충전재 덕에
미끄러지듯 달린다. 승객 수송 규모도, 이동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무엇보다 하늘에 어지럽게 얽혀있던 전차선이 사라졌다. 위례선은 전국 최초의 완전 무가선 트램으로 배터리만으로 달리고, 대전
2호선은 수소연료전지와 급속 충전 방식으로 전 구간 무가선을 목표로 한다.
전차는 지금까지 자동차가 주인이었던 도로에 다시 사람을 서게 한다. 보행자들이 자동차를 피하느라 정신없던 도로가 대중교통 중심으로 재편되고, 사람들이 트램을 기다리며 머무르는 공간에는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화석연료를 태워 가며 오로지 빠른 속도만을 추구하던 시대를 지나,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보행자를 배려하고 생태계를 지키는 사람 중심의 녹색 교통 시대로 넘어온 셈이다. 어느새 시대가 요구하는 속도가 달라진
것이다. 반세기 만에 훌쩍 세련되어진 전차가 앞으로 어떤 속도와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