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인도네시아 사업에 관한 마지막 기고문입니다. 독자분들께 생생한 기차 탑승기를 전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열차를 타러 왔습니다. 반둥행 열차는 주말에는 예매가 어렵지만 평일 좌석은 여유로웠습니다. 일반실 95,000루피아(약 9,000원), 특실 135,000루피아(약 13,000원)로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저는 특실을 예매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아직 철도 노선이 많지 않아 자카르타에서 150km 떨어진 반둥으로 이동할 때 대부분 차나 비행기를 이용합니다. 저 역시 반둥을 몇 번 방문한 적 있지만 기차로 이동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동남아시아의 유럽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습니다. 고지대에 위치해 선선한 날씨 덕에 자카르타 시민들이 주말여행으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카이스트와도 같은 반둥공대가 위치해 있고, 인도네시아 철도공사(PT.KAI)와 국영 통신회사(PT.LEN) 등의 본사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내년에는 중국과 건설 중인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가 개통될 예정입니다.

자카르타에서는 극심한 차량정체와 대기오염 완화를 위해 차량 홀·짝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차량이 홀·짝제에 해당하는 날이라 집에서 6시 30분에 출발해 역사에 도착하니 7시 15분이었습니다. 열차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라떼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다 7시 50분쯤 자그마한 역을 한 바퀴 구경하고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전자 탑승권으로 열차 탑승이 가능하다고 사전 안내를 받았지만 현장 발권을 해야 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직원분께서 함께 발권기로 가서 탑승권 발권을 도와주셨습니다. 인도네시아 분들은 대부분 정말 친절합니다. 그렇게 저는 여권과 백신 인증을 확인받고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정확히 8시 10분, 열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출발합니다. 빨간색 옷을 입고 짐을 나르는 포터 분들이 창밖에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합니다. 저도 열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하며 기차여행을 즐길 준비를 마쳤습니다. 감비르 역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출발할 때의 속도는 엄청 느리고, 창밖으로는 주위의 빈민가가 많이 보입니다.

떠난 지 10분쯤 되었을 때 승무원들이 음식 카트를 끌고 등장합니다. 저는 15,000루피아(약 1,400원)를 주고 블랙커피를 한 잔 주문했습니다. 역시나 친절한 직원 두 분이 정성스럽게 서빙해주십니다. 20분이 지나자 느리게 운행하던 열차는 약 70km/h 정도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열차 안은 아주 안락하고 깨끗하지만, 환기 소음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반둥에 가는 길에는 폐역도 많이 보이는데, 일부 역사는 여객철도는 다니지 않고 화물역으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40분쯤 달리니 논밭과 함께 옷 입은 허수아비들, 일하는 농부들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농촌과 인도네시아의 농촌 풍경은 아주 흡사합니다. 조금 다른 부분은 인도네시아는 논 중간중간에 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 밑에 의자가 놓인 걸로 보아 농부들의 쉼터인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한 포장에서 1년에 4번 농사짓는 사모작을 한다고 합니다. 열차에서 보이는 어떤 논밭은 곧 추수할 만큼 벼가 자라있지만, 근처의 다른 논은 모내기를 하고 있어 이색적인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 주변으로는 공동묘지가 보이고, 소가 풀을 뜯고 있습니다.

한 시간쯤 더 지나니 전차선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하이브리드 전동차로 운행하는 것 같습니다. 철도 근처에 위치한 집 앞에 널은 빨래가 달리는 열차에 부딪힐까 걱정될 만큼 가깝습니다.

반둥에 다가오니 고지대에 올라온 것이 느껴집니다. 높은 교량 위에서 내려다본 계단식 논의 풍경은 환상적입니다. 마침내 열차가 역에 정차하려나 봅니다. 정차한 역은 반둥역은 아니고, 반둥 입구의 역(우리나라로 치면 광명역 정도)입니다. 11시 2분, 드디어 반둥역에 도착했습니다. 반둥역은 크지 않지만 깨끗하고 한적합니다. 지금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한참 개보수 및 증설 공사 중입니다.

저는 이제 반둥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후 3시 10분 열차로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이 한적한 도시와 달리 자카르타는 도착시간인 6시경에는 교통체증이 심해 집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요즘은 항상 퇴근시간 즈음에 세찬 비까지 내려 1시간 내외인 거리를 5시간 걸려 퇴근했다는 분들도 주위에서 종종 봅니다. 물론 저도 20분이 소요되는 퇴근길을 2시간 걸려 퇴근했습니다. 이래서 더욱 철도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비가 와도 끄떡없고,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집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철도가 인도네시아, 특히 수도 자카르타에는 꼭 필요합니다.

저는 만 6년 동안 인도네시아 철도사업만을 수주하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성과가 있을 때는 더없이 기뻤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 응답이 없을 때는 많이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철도여행을 하면서 ‘아직 이곳에는 철도가 많이 필요하구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느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분이 제 글을 읽으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고 기다려 주신 분이 계셨다면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기회가 오게 된다면 조만간 해외사업 성공사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히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