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도로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점차 자동차가 도시를 점령하는 동안 지구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writer. 전하영

자동차 없던 시절,

사람들이 교류하던 거리

오늘날 자동차는 우리 삶에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있어 자동차 없는 일상은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가 지금처럼 우리나라에 대중화된 것은 이제 고작 40년 정도 됐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가정마다 자동차를 소유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0~60년대에 이르러서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의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좁은 비포장도로 위로 말이나 소가 끄는 마차가 다녔다. 비포장된 흙길은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건조한 날에는 흙먼지가 날렸다. 도심의 포장도로의 경우 돌이나 블록으로 포장돼 있었다. 사람들의 대중적인 이동 수단은 마차와 기차, 자전거, 도보였고, 일부 도시에서는 전차가 다녔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이 가까워 도시 중심지에도 주거 지역이 많았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시장이 위치했고, 물건은 주로 기차나 배로 운송됐다. 도시에서는 말과 소를 이용한 마차가 물류 수단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동이 주로 도보로 이뤄졌기 때문에 현재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인 교류가 더 활발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의 우리나라 거리 풍경도 비슷했다. 고즈넉한 한옥이 줄지어 선 작은 골목 사이로 말이나 소가 끄는 마차가 다녔다. 도시 상류층의 이동수단으로는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가 사용되기도 했다. 밤에는 대부분의 거리가 어둡고 조용했으며,아침이면 물건을 팔기 위해 시장에 모인 상인들로 거리가 활기를 띠었다.
이처럼 자동차 없던 시절의 거리는 사람 중심의 거리였다. 사람들이 길 위에서 서로를 직접 마주하고,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이웃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말 없이 달리는 마차의 탄생,

자동차의 등장과 그 후

인류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1886년 독일 엔지니어 카를 벤츠에 의해 탄생했다. 비록 최고속도 시속 16km로 마차보다 느린 자동차였지만,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는 카를 벤츠의 목표는 이루어진 셈이다. 자동차의 발명으로 인류는 차츰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대한민국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외국인이나 일부 부유층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처음 출현한 무렵에는 사람과 동물, 자동차가 같은 길을 이용했다. 그러다 점차 사람은 길가로 밀려나고 자동차와 마차가 길 중앙을 차지했으며, 얼마 후에는마차마저 밀어내고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했다.
한참 뒤인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나라도 도로 건설이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대부분은 비포장도로였다. 1970년대에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됐고, 경제성장과 함께 자동차 생산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돼 다수의 일반 가정에서도 자동차를 소유하게 됐다.
2024년, 이제 도시의 도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가 쉼 없이 달린다. 서울의 주요 도로는 거의 매일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다. 이 많은 차들이 뿜어내는 온실가스는 소리 없이 조금씩 지구의 온도를 높여가고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인류에게 기후 위기라는 치명적인 과제를 던져 준 것이다.
세계는 지금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자동차 등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주목하며,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친환경차 보급에 집중한다. 실제로 세계 자동차 업계는 최근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하며 전기차, 수소차로의 사업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트렌치코트가 입고 싶어서

자동차 시동을 끕니다

체감상 매년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구의 기온이 오르면서 우리나라의 봄은 여름처럼 더워졌고, 여름은 길어졌으며, 가을은 점점 더 늦게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장롱에서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을 겨를도 없이, 무덥고 혹독한 날씨뿐인 지구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년에도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선한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탄소저감에 동참해야 한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동차를 ‘Off’ 해보자는 제안이다.
우리가 탄소저감을 위한 작은 움직임에 동참함으로써 지킬 수 있는 것은 봄가을만이 아니다. 우리의 풍요로운 식탁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지구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가뭄, 홍수 등이 계속되면 옥수수, 밀, 쌀 등 주요 곡물을 기반으로 한 음식들은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해양이 산성화되면 해양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온도 상승에 민감한 산호초가 사라지게 되고, 그로 인해 고등어, 연어, 대구 등 우리가 즐겨 먹는 해산물의 양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도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과 강수량 변화는 커피콩의 품질과 수확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아라비카 커피는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해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적합한 재배 지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밸런타인데이마다 주고받는 달콤한 초콜릿 역시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열대기후에서만 잘 자라는 카카오나무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카카오 콩을 생산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자동차 시동을 꺼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이유라도 좋다. 트렌치코트를 더 오래 입고 싶어서, 품질 좋은 커피를 계속 마시고 싶어서 시작한 우리의 작은 노력이 지구 생태계를 구하는 희망의 손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