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우리의 쇼핑 문화를 바꾸고 패션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하지만 지구와 공존하지 않는 패션은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가는 길을 모색 중이다.

writer. 전하영

최신 트렌드를 값싸고 빠르게

패스트패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란 개념은 19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제공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는 패스트패션이 글로벌 패션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전으로 패션 트렌드가 더욱 빠르게 전파됐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의류 소비 습관도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더 자주 쇼핑을 하고,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구입하게 됐다. 유행을 따르기 위해 더 자주, 더 많은 옷을 구매하고, 유행이 지난 옷은 빠르게 버리는 경향이 생겼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상품을 출시했다.
패스트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자 어느새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울트라 패스트패션(Ultra-Fast Fashion)’도 등장했다. 울트라 패스트패션은 패스트패션보다 더 빠르게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하고, 더욱 신속하게 제품을 출시한다. 트렌드가 나타나고, 소비자의 수요가 발생하는 즉시 그것을 반영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울트라 패스트패션의 목표다. 패스트 패션의 상품 회전 속도가 평균 3개월이라면 울트라 패스트패션은 그것보다 훨씬 짧은 평균 4주의 상품 회전 속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소비를 촉진하는 패스트패션 문화는 환경에 많은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원이 소비되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패션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 또 한 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속가능한 패션에 관심을 가지며, 의류 구매 시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 산업에도 또다시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들은 더 책임감 있는 생산 방식을 모색하고 있으며, 친환경적 소재의 사용도 증가하고 있다.

빠르기만 한 패션에 대항하다

슬로우패션과 컨셔스패션

2000년대 초, 패스트패션의 부작용이 점점 두드러지면서 환경 오염, 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개념 중 하나가 ‘슬로우패션(Slow Fashion)’이다. 옷의 생산과 소비를 느리게 하여 환경적, 사회적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한 슬로우패션은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패션을 추구한다. 장인정신과 수제 생산을 존중하면서,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 슬로우패션이다.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기보다는 시즌에 얽매이지 않는 클래식하고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패스트패션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개념으로 ‘컨셔스패션(Conscious Fashion)’이 있다. 이 또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의류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등장한 개념이다. 컨셔스패션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의식적인 패션 선택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재료를 사용하고, 윤리적인 생산 및 유통 방식을 추구하며, 소비자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 의식적인 구매를 장려한다.
그 외에도 업사이클링 패션(Upcycling Fashion), 제로웨이스트 패션(Zero Waste Fashion) 등 패션의 환경적 영향을 줄이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업사이클링 패션은 버려진 소재나 제품을 새로운 가치가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재활용(recycling)을 넘어서 버려진 자원에 새로운 디자인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품을 폐기하는 대신 새롭게 활용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줄인다는 점이 업사이클링 패션의 핵심이다. 제로웨이스트 패션 역시 제품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를 최소화하는 생산 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원단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패턴 설계부터 모든 과정에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고려한다.

미니멀리스트의 똑똑한 멋 부림

캡슐옷장

개인이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덜 사거나 사지 않는 것이다. 옷을 소비하지 않고 이미 갖고 있는 아이템만으로 다양한 룩을 연출할 수 있다면 ‘스타일’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바로 ‘캡슐옷장(Capsule Wardrobe)’이다.
캡슐옷장은 최소한의 옷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도록 구성된 옷장을 의미한다. 캡슐옷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본적으로는 옷장 속 옷의 수를 최소화하고, 서로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옷을 선택하면 된다. 먼저 품질 좋은 10~50벌 정도의 기본 디자인 옷을 핵심 아이템으로 선정한다. 이들은 서로 잘 어울려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믹스매치가 쉬운 중립적인 색상들로 옷장을 구성하면 좋다.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직업 등을 고려해 옷장을 구성하되, 기본 색상의 티셔츠, 정장 바지와 스커트, 청바지, 니트웨어, 재킷 등 기본 아이템은 고루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들을 기반으로 구성해야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캡슐옷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정비한다.
캡슐옷장을 실천하면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꽤 많은 장점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경제적인 절약의 효과가 있으며, 옷을 선택하는 데 드는 시간도 아낄 수 있다. 또한 제한된 아이템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해 봄으로써 개인의 스타일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게 된다.
캡슐옷장과 비슷한 성격으로, 3개월 동안 33개의 옷과 액세서리만 착용하는 프로젝트 333, 열흘 동안 10개의 아이템만 돌려 입는 10X10 챌린지 등 다양한 캠페인과 프로젝트들이 있다. 전 세계를 광적인 소비로 몰아넣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서 같은 날 시행되는 ‘바이낫띵데이(Buy Nothing Day)’도 존재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생각만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장 쉬운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