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철도문학상

장려상 수상작

일몰행

동해 일출과 첫눈에 반한 키스가 있었다
그리고 서해로 난 손금 같은 철길
삶은 일몰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다
편도행 티켓 한 장 손에 꼭 쥐고
굽은 철길에서 크게 휘청거렸을 때
손금을 다시 새길 수는 없는가, 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터널 속 불안을
늘어나는 밥그릇 수만큼 달리는 일이
산다는 것의 전부라니
탈선을 감행한 적 있다
육중한 무언가를 예감하려 선로에 귀를 대고
철길 진동을 필사하는 일에 골몰하였으나
손금은 깊어졌을 뿐 다시 그려지지 않았다
귀 환해지도록 기적 소리 들은 적 있는가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장면처럼 기차는
레일 위를 솟구치며 허공으로 이륙했다

모자 아래 섬광처럼 빛나는 역무원의 두 눈
대합실에 나만 남겨두고 떠났던 부모님이
맞은편 자리에서 삶은 계란을 까 드시고
차창 너머 마을의 밥 짓는 연기 속을 나비 날았다
종착역 안내 방송에 퍼뜩 눈을 뜬다
호접몽 밖의 역무원이 수신호를 보내는데
생을 바쳐 읽어왔던 돋을새김의 철길이
이곳에 닿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
모가지째 떨어지는 동백 같은 일몰 하나
마지막 플랫폼이 붉게 몸을 연다
지는 꽃의 향기가 가장 진하지 않던가
멀리서 곡성 들리고 해진 몸은 하차한다

철도문학상은 철도를 소재로 한 일반인들의 창작 공모작 중 우수한 문학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공모전입니다.
2024 <철길로 미래로>는 제9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수상작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