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을 향해 도약하는
창해의 물고기

현재 심사정의 어약영일도(魚躍迎日圖)

조선 후기 화단의 빼어난 화가로는 아호에서 공통점을 가진 ‘3재()’가 있다.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을 일컫는다. 공재는 중국의 남종문인화를 수용하면서도 조선의 풍물을 새롭게 각인시킨 속화(俗畵)와 인물화에 남다른 공헌을 남겼고, 겸재는 우리의 산수를 우리의 감성으로 담아낸 진경산수로 화단을 일신했다. 현재는 남종문인화와 절파 형식의 북종문인화까지 절충 수용하여 조선의 풍정이 물씬 묻어나는 자신만의 남종문인화를 새롭게 창안했다. 이들 세 사람의 다양한 작품은 조선 후기 화단에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여기서는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줄 뿐만 아니라 기이한 작품성으로 남다른 즐거움을 주는 현재의 [어약영일도(魚躍迎日圖)]를 통해 그의 삶과 예술성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writer. 최견 서예가, 한국서화교육원장

견디기 힘든 시련을 딛고

현재의 집안은 명문이었지만 성천부사를 지낸 조부 심익창(沈益昌)이 부정한 과거시험에 개입한 죄로 평안도 곽산에 유배된 지 10년째 되던 해에 현재가 태어났다. 그때 치른 과거 자체가 파방(罷榜)되었기에 세간의 이목은 현재의 집안에 집중됐다. 이때 집안사람들이 받은 수모와 수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이다. 본래 현재의 친가, 외가 모두가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집안이었다. 친가에서는 증조부 심익창을 비롯해 백조부 심익현이 이름난 서예가였으며 부친 심정주(沈廷冑) 또한 포도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
현재의 짧은 묘지명을 보면 어릴 때 현재는 한 세대 앞선 당대 제일의 화인 겸재로부터 그림을 배웠음을 알 수 있다. 10세 무렵부터 5년 정도 겸재의 문하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나이 38세 되던 해 이루어진 [와룡암소집도(臥龍菴小集圖)]의 발문을 보면 당대의 감식가이자 대수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상고당 김광수, 석농 김광국이 와룡암에서 비오는 날 조촐한 술자리를 함께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보아 곤궁한 처지에 있던 현재이지만 대수장가들과 그림을 통한 교류가 꽤 깊었음을 알 수 있다.
42세 나이가 되자 현재에게도 잠시 광명이 드는 듯했다. 영조는 1748년 1월 ‘어용모사도감(御容模寫都監)’을 설치토록 명을 내리고 유생들 중 그림에 능한 심사정과 조영석, 윤덕희로 하여금 감동(監董)을 맡도록 하였으나 불과 5일이 지나지 않아 현재는 죄인의 후손이란 이유로 쫓겨나고마는데, 이것이 현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관직에 몸담았던 꿈같은 닷새였다.

기발한 착상과 완숙한 기량을 담은 화폭

명의 때, 넘실대는 푸른 파도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칠흑같이 어둡던 천지에는 어느덧 찬란한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고요하던 수면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온 듯제법 파고가 높고 하얀 포말들이 수없이 흩어지고 있다. 수평선 위는 온통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한 해 소망이라도 빌어 보아야 할 것 같다.
근경(近景)의 거센 물결 속에는 힘차게 도약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절반쯤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렬한 눈빛은 전면의 태양을 응시하며 근엄하면서도 멋스럽게 뻗은 팔자수염 또한 가관이다. 억센 듯 강인한 등지느러미를 보면 수 천리 물길을 헤치고 갈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튼실한 아가미와 열십자의 미끈한 비늘 등이 예사롭지 않은 물고기, 즉 잉어임을 보여주고 있다.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복숭아꽃이 피는 3월이면 잉어 무리가 이곳 ‘삼급랑(三級浪)’을 뛰어넘어 용문에 이르는데 무리 중 가장 용감하고 신령스러운 한 마리만이 이를 올라 용으로 변한다.”고 했다.
푸른 바닷속의 잉어. 이는 현재의 기발한 발상이 아닌가. 여기에다 거친 파도, 약동하는 잉어, 붉은 태양이라는 요소를 기막히게 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에 이르기까지 전체 화폭을 3단으로 구분하여 자칫 단조롭기 쉬운 화면 구성을 자연스레 해소하고 용문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험난한 여정인 ‘삼급랑’을 잘 은유하고 있다.일그러지는 각양각색의 파도를 하나하나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솜씨나 농담의 변화에 무리 없이 녹여낸 선염법 등이 완숙한 현재의 기량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그린 시기 또한 현재의 회갑 년이니 만년에 농익을 대로 익은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만의 예술세계에 매진

어엿한 사대부의 자식임에도 사람들로부터 죄인의 후손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화인의 길. 오직 붓질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며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서지(西池) 옆 안산(鞍山) 자락에서 뜰 앞의 국화가 잎만 무성할 때 현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63세였다. 장례비마저 먼 친척들이 근근이 마련했다.
현재 심사정, 그의 탁월한 발상과 원숙한 기량은 그윽한 산수를 오색의 담채로 녹여냈고 화려한 화조(花鳥)나 세상을 희롱하는 선인(仙人)으로 되살아났기에 그의 작품 모두가 우리의 홍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