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팝 박대희 대표

종이로 가구를 만든다는 발상

버려지는 가구를 줄이기 위해 종이를 선택한 사람. 박대희 대표가 창업한 ‘페이퍼팝’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2번,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을 미션으로 삼는 소셜벤처다. 늘어나는 1인 가구, 잦은 이사로 인해 버려지는 가구들이 대부분 매립이나 소각으로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그는 “가구는 빠르게, 기후변화는 느리게”라는 구호로 종이 가구의 가능성을 실험해왔다.
그에게 종이는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었다. “버려지는 가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재활용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로도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직접 기술을 연구하고 생산 방식을 검증하며, 종이 가구의 가능성을 하나씩 입증해왔다. 회사 이름 역시 종이(PAPER)와 팝아트(POP)의 합성어로, 종이 제품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실제로 페이퍼팝은 종이 책장, 침대, 수납정리함, 야외용 등받이 의자 등 약 400여 가지 제품을 내놓았다. 원재료 선택부터 포장, 사용 후 처리까지 제품의 모든 과정에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철학이 깔려 있다. 박 대표는 2029년까지 6천 개 상품 개발을 목표로 내세웠고, 이를 위해 “기술도, 생산도, 테스트도 모두 직접”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에서 직접 개발하고 조립하며, 실제 생활 속에서 제품을 써보며 튼튼함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오래 쓰고, 다시 쓰는 디자인

페이퍼팝의 가구는 단순히 가볍고 저렴한 대체재가 아니다. 튼튼하게 쓰다 부품만 갈아 끼울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오래 쓸 수 있고, 버릴 때는 95% 이상 종이로 재활용된다. 실제로 첫 제품인 종이 책장을 7년 이상 사용하고 있다는 후기도 있다. 이는 종이 가구가 단순히 임시방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 가구임을 보여준다.종이는 최대 7번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다. 이 특성은 ‘덜 만들고 덜 버리는’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래서 페이퍼팝의 종이 가구는 누구나 쉽게 공구 없이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부품을 교체하며 수명을 늘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 소재의 95% 이상을 다시 종이로 재활용할 수 있어 자원 절약의 효과까지 함께 담아낸다.

박 대표는 이런 철학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도 이어간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쓰레기를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 “회사의 철학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조금씩 지켜온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여기에 단순한 구조와 직관적인 디자인은 소비자가 직접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더한다. 새로운 가구를 구입할 때 ‘쉽게 버려질 것’이라는 우려보다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다. 빠른 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페이퍼팝은 오래 쓰고 다시 쓰는 습관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한다.

자투리에서 새로 태어난 ‘새로반’

종이 가구를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투리 종이가 생긴다. 페이퍼팝은 이 버려질 자원에 다시 쓸모를 부여하는 ‘RE-PAPER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 제품은 ‘새로반’이다. ‘새로 태어난 소반’이라는 뜻처럼, 남는 종이로 만든 작은 반상은 식기 받침뿐 아니라 조명이나 책을 올려두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된다.

무늬와 패턴이 모두 다르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 되고, 사용자는 자신만의 유일한 소반을 갖는 만족을 느낀다. “자투리 종이는 대부분 다시 펄프로 가서 재활용되지만, 한 번 더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반은 단순한 자원 재활용을 넘어 ‘다시 쓸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낸 사례였다.상업성만 본다면 쉽지 않은 프로젝트다. 자투리를 모으는 것 자체가 손이 많이 가고, 이를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 역시 수작업에 가까운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페이퍼팝은 버려지는 자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부 팀원들 역시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미션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말할 만큼 의미가 컸다. 결국 ‘새로반’은 소비자에게는 유니크한 만족을, 제작자에게는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준 프로젝트였다.

가치 소비로 이어지는 길

창업 이후 지금까지 30만 개 이상의 종이 가구가 만들어졌고, 약 1,500톤의 폐기 자원이 절감되었다. 박대희 대표는 그 여정에서KT&G 상상스타트업 캠프에서의 배움을 전환점으로 꼽는다. 종이 가구가 단순히 편리함이나 가격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깊이 고민한 계기였다. 앞으로는 종이 가구의 생산 방식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값싼 인건비 지역에서 대량 생산해 전 세계로 운송되는 기존 가구 산업과 달리, 종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각 지역의 종이로 현지 맞춤형 가구를 만드는 로컬 생산 방식은 또 다른 지속가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가치를 담지 못한 기업은 오래 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묻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30만 개 이상의 제품 판매와 이를 통해 1,500 톤 이상의 자원을 절감한 사회적 성과는 그에게도 큰 의미로 남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가 아니구나,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이 “친환경이라서 좋았다”는 후기를 남기며 가치 소비의 흐름을 만들어 가듯, 박대희 대표는 작은 변화를 믿는다.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가구, 버려질 뻔한 자원에서 다시 태어난 제품, 그리고 가치 소비로 이어지는 일상. 그가 바라는 ‘종이 OFF’ 의 삶은 결국 지구의 시간을 늦추는 방법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