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을 통한
폐공간의 부활

산업화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80-90년대에 지어진 기피시설이 그 모습을 탈바꿈하고 있다. 시대적 요구와 콘텐츠를 수용하며 시민들이 아끼는 복합예술공간으로 부활한 부천아트벙커B39도 8년 전까지 용도 폐기된 소각장에 불과했다.
부천시 중동 신도시 건설 붐이 한창이던 1992년 11월, 삼정동에는 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5년 전격 가동되기 시작한 폐기물 소각장은 부천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태우기 시작했다. 삼정동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소각장의 환경적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환경부의 지휘 아래 농도를 측정한 결과 허용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다이옥신이 배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푸른마을회'를 결성하며 환경 복구를 위해 노력했던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 후, 6개월간 폐기물 소각장은 가동을 중단하고 다이옥신 저감 및 각종 유해 물질 제거를 위한 집진 설비를 증축했다.
소각장에 별도의 암모니아 저장실 및 공기 압축실이 신설되기도 했다. 2000년 대장동 자원순환센터가 완공되면서 주민지원협의체에서는 삼정동 소각장의 통합 운영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2010년 대장동 자원순환센터가 확장되어 삼정동 소각장의 역할을 흡수하게 됐다. 용도가 폐기된 삼정동 소각장은 무한 유휴상태에 들어갔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싶던 공간이 소환된 것은 2014년이었다. 관과 지역 주민 모두가 철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삼정동 폐기물 소각장은 문화체육관광부 도시재생지원사업의 일환인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을 만나면서 극적인 운명의 변화를 겪게 된다. 4년간 방치되던 폐 소각장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이 공간을 새로운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리노베이션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건축가 김광수의 지휘 아래, 쓰레기의 반입과 저장, 소각, 처리 과정을 하나의 축으로 따라가는 동선을 기반으로 공간은 재배치되었고, 2018년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새로운 얼굴로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투박한 과거 공장의 모습, 세련된 현대 문화공간의 모습, 여기에 시민이 상상하는 미래공간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소각로와 장비 그대로 살려
재미에 의미를 더한 전시실과 홀

부천아트벙커B39 관람의 첫 관문인 1층은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준비된 곳이다. 과거 쓰레기를 태우고 처리하던 시설들과 이를 다루던 사람들의 풍경을 재구성했다. 멀티미디어홀, 벙커, 에어 갤러리, 재벙커, 유인 송풍실 등 의도적으로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공간들은 기술과 인간, 문화와 예술을 담고 있다. 과거 쓰레기 저장조 역할을 하던 '벙커'는 부천아트벙커B39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자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공간이다. 소각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되면서 설치된 ‘벙커브릿지’는 방문객들이 쓰레기 소각 절차를 따라 공간을 유연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름부터 맑은 공기가 느껴지는 ‘에어 갤러리’는 대리석 타일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조화된 야외공간이다. 이곳이 과거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로가 위치했던 공간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변신에 경이로움을 느끼게된다. 이 공간들을 잇는 건 멀티미디어 홀이다. 도심의 생활 쓰레기가 모이던 공간에서,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전시, 사람들이 모인다.

2층은 쓰레기 소각장의 운영을 위한 직원들의 공간이었다. 현재는 부천아트벙커B39의 사무실과 교육 및 대관을 위한 스튜디오가 위치해 있다. 특히 중앙제어실과 재벙커 & 크레인 조종실은 과거 소각장 시설들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과거 작동하던 장비와 기기들이 보존되어 있어 소각장의 역사와 가치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 속 박물관'같은 공간이다.
3층부터 5층까지 이어진 '보존구역'은 독특한 형태의 기계 설비들로 빼곡히 차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곳은 뮤직비디오, 광고 및 패션, 영화와 TV 시리즈 등의 촬영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판타스틱 뮤직 페스티벌부터
부천아트페어까지

놀라운 모습으로 변모, 재생된 공간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건 그 속을 채운 이벤트와 사람들이다. 개관과 함께 부천아트벙커가 선택한 전시는 프랑스의 미디어 아티스트 기욤 마망의 <Light Matters>라는 설치작품 전시였다. 새로운 공감각적인 기호, 이미지, 소리, 리듬, 대비 그리고 매끄러운 움직임의 형태들 사이의 공통적인 표현 방식을 찾은 전시는 부천에 들어선 새로운 랜드마크가 주변 환경과 연출하게 될 조화를 암시하는 듯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부천의 대표적 행사인 '판타스틱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크라잉넛, 하림과 블루카멜 등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행사는 아트벙커라는 더욱 특별한 장소를 만나 '역대급'으로 치러졌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BIFAN 관객들은 물론, 이곳을 오가는 부천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정적인 전시 외에 동적인 공연이나 퍼포먼스 또한 얼마든지 수용, 흡수하는 B39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프렉티스 2020'이라는 타이틀을 단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이 B39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2021년 하반기에는 부천아트페어를 개최하며 침체된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부천지역 시각예술시장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부천아트벙커B39 2층에는 워크숍이나 세미나 용도로 시민들이 대여할 수 있는 4개의 스튜디오가 있다. 누구든 연결되고 만나는 교류의 장이자 영감의 무대라는 뜻이다. 한때 지역 갈등의 중심이었던 소각장이 예술과 문화를 입고 도시재생의 '비상구'가 되었다. 아트벙커가 삶을 이어가는 한, 벙커가 있는 거리도 그만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