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배를 타고 교동(강화도 인근)을 향할 때였다.
배가 바다 한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쳐 배가 도저히 항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뱃사람이나 선객 모두가 제 정신을 잃고 불보살(佛菩薩)을 부르짖으며 목숨을 구하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 ‘희지’는 홀연히 크게 한바탕 웃으며 일어나 검은 구름과 거센 파도 속에서 너풀너풀 춤을 추는 게 아닌가. 바람이 잦아 든 후 누군가가 물으니 “죽음은 늘 따르는 것이거늘 바다 가운데서 이렇게 비바람 치는 기이하면서도 장엄한 광경을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으랴.” 했다.

이렇게 보통사람들의 심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행동과 남다른 배포를 가진 이가 수월 임희지(水月軒 林熙之, 1765~1820 이후)였다. 수월은 단원 김홍도와의 합작품인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에 대나무를 그릴 정도로 당대에 이름 났었다. 여기서는 수월의 기인다운 모습과 원숙한 필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노모도(老貌圖)를 통하여 새해의 벽사(辟邪)를 기구하며 아울러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호수에 비친 달 같은 삶

수월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1790년 역과에 합격하여 한역관(漢譯官)에 종사하며 봉사벼슬을 지냈다. 수월의 바로 다음 세대로서 위항인들의 전기를 기록한 호산 조희룡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서 그나마 적잖은 수월의 흥미로운 행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희첩(姬妾)을 하나 두고서는 에둘러 말하기를 “내 집에 정원이 없어 꽃을 기르지 못하지만 이 사람이 바로 한 떨기 꽃이라네.”라고 하였다. 수월은 술을 좋아하여 식음을 잊고 며칠씩이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생황을 잘 불어 이를 배우고자하는 자가 많았다. 거처하는 수연두옥(數椽斗屋)은 두어 칸의 아주 작고 비좁은 집이었다. 이런 집 마당에 조그만 연못 하나를 팠는데 사방 몇 자 되는 크기였다. 연못을 만들었지만 물을 얻을 수가 없자 날마다 쌀뜨물을 모아 그곳에 부어 못을 채우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아침저녁으로 그 못가에서 피리를 불고 노래하며 이르기를 “나의 호가 수월이라 이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것인데 달이 어찌 물을 가려가며 비추겠는가.” 하였으니 그의 풍류가 대개 이러하였다.

사나우면서도 정감 가는 부엌 귀신 모(貌)

중국 산해경에는 ‘모(貌)’라는 상상의 동물이 나온다. 모는 부엌에서 곧잘 음식을 훔쳐 먹으며 사람이 잡으려 하면 숨기도 잘 하는 재주를 가진 짐승으로서 훗날 부엌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수월이 그린 모의 겉모습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종 삽살개와 매우 흡사하다. 눈을 가릴 정도의 털북숭이인 삽살개도 쫓아낼 삽(揷), 액운을 나타내는 살(煞)로 표기되듯이 벽사(辟邪)의 뜻을 가지고 있기에 이 둘은 모습과 상징에서도 매우 유사하다 하겠다.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노란 눈과 어딘가 낯선 붉은 코,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이 녀석은 수사자와 같은 용맹이 넘쳐 보인다. 하나로 모은 앞발의 두툼한 발목과 날선 발톱은 여하한 상대도 능히 제압할 것 같아 보이며 말갈기 같이 좌우로 늘어진 긴 털에다 늘씬하게 뻗은 뒷다리, 봉두난발처럼 하늘로 불쑥 솟은 꼬리를 더하니 민첩성 또한 빼어나 보인다. 여기에다 수월은 남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임금 왕(王)자를 녀석의 이마에다 턱하니 그려 넣었으니 백수(百獸)의 왕으로 군림하길 바란 탓일 터. 이렇게 그려진 녀석을 볼라치면, 처음에는 못난이에다 사납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웃집의 정든 강아지처럼 어리숙하면서도 정감 가득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꼬리 위 상단에 “정축년 동지 후 3일에 수월도인이 지두로 그리다 (丁丑冬至後三日 水月道人指頭弄墨)”를 써 놓고 있어 수월의 지두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좌측 중앙에 있는 화제를 보자.

  • 수월 임희지 노모도, 호암미술관 소장

  • 그려진 누런 눈에 코를 쳐들고
    수염을 드날리며 혀를 내미니 위엄은 이빨에 있네
    발을 내딛고 귀를 내밀며
    좌우로 흔드니 기쁨은 꼬리에 나타나고
    비록 용맹하나 온순해 장난치길 좋아하고
    높은 마루에 당당히 앉아 잔치 상을 지키니
    소리치고 날뛸 때면 온갖 귀신 달아나네

사나운 듯 용맹한 노모가 부엌귀신답게 음식을 지켜주고 있지만 온순한 성미를 가져 누구와도 잘 어울려 놀며 불필요한 싸움은 하지 않는 다정함도 갖춘녀석으로 수월은 적고 있다.

도도히 살다간 생애

팔 척의 훤칠한 키에 둥글며 뾰족한 수염을 흩날리며 성큼성큼 길을 걸어가는 수월은 마치 도인이나 신선같아 보였다. 성품 또한 강개하고 기절이 있는 깨끗한 선비였다. 인왕산 아래 송림 우거진 계곡에서 벗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박주(薄酒) 잔 나누기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수월. 워낙 술을 좋아해 도연(陶然)히 취하기를 몇 날 며칠 하면서 집안 살림과 세속의 일쯤은 거들떠보지 않는 태평한 삶을 산 그였다. 게다가 일상에서의 일탈이듯 기괴한 행동마저 서슴지 않았으니 주변에서는 이렇듯 도도히 일세를 산 이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했다.

중인 계급의 위항인들이 그러했듯 그의 졸년 또한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단지 앞의 ‘군현아집도’가 1820년에 그려졌으니 그의 나이 56세 이후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평소 수월이 즐겨 그리던 난엽(蘭葉)은 춤을 추듯 너울대며 시원스럽게 뻗쳐 있다. 한 줄기 난엽 같이 청아하면서도 호탕하게 살다간 수월 임희지, 어디선가 노모(老貌)를 거느리고 세파(世波)에 허덕이는 우리를 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