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주 지적생명체 탐사단 C013팀 팀장님께

안녕하세요, 팀장님. 태양계의 지구에 파견된 마크로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라고 이야기했을 때 벌써 100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챙겨주신 탐사 전용 에어바이크가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다 타버린 재향만 나는 검은 흙과 무심하게 철썩이는 검푸른 바다밖에 없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우리와 소통 가능한 지적생명체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만, 응답은커녕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비웃으며 지구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했던 B216 팀의 말은 틀렸습니다. 여기에는 생명체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발 늦었을 뿐 이곳에는 분명히 엄청난 문명이 있었을 거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 이곳에 살았던 생명체의 발자취를 찾아보려고 지구에 온 이후로 부지런히 에어바이크를 타고 땅 위를 탐사했습니다.

지구는 어떤 이유로 멸망했을까요. 다른 외계생물이 와서 이곳을 공격했을까요.
아니면 종족의 내부 분열로 인해 갈등을 빚다가 세계가 끝났을까요. 아니면 지각변동이나 기온의 변화 등으로 멸망했을지도요.

저는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구조물을 보았습니다. 모든 게 멈추어 있었죠. 하지만 이곳은 철로 만들어진 존재의 행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과 동일합니다. 뭐, 사실 그렇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철이야말로 우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금속이니까요. 오래전에 헤어졌지만, 사실은 고향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죠. 우리 모두 별의 자손들이니까요.
플라스틱과 콘크리트와 유리 사이에서 철의 종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혜롭게도 생존을 위해 다른 물질과의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철의 종족은 아주 다양한 형상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모두 생명의 징후를 잃어버리고 그 숨이 다한 지 오래였지요. 마치 순식간에 공격받아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육체는 아주 작기도 했고 거대하기도 했습니다. 편의를 위해 저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다로 나누어진 땅을 연결하는 철 족속에는 ‘땅-땅-연결-철의 종족’이라는 이름을, 물 위를 떠돌아다니는 족속에는 ‘부유-물-철의종족’이라는 이름을,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콘크리트와 결합한 족속에는 ‘혼합-정지-철의 종족’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비록 그들의 문명이 쇠퇴하여 그들의 몸에 생명이 사라지고 붉고 거친 상흔만이 있었지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이 지구의 지배자였다는 것을요.

다양한 철의 종족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종류는 ‘긴-땅-철의 종족’과 ‘땅-위-이동-철의 종족’입니다. 그들을 찾아낸 것은 땅을 샅샅이 수색하면서였습니다. 저는 땅 위에 수평을 이루며 지평선을 향하여 끝없이 달리는 한 쌍의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름을 ‘긴-땅-철의 종족’이라고 붙였지요. 처음에는 그 개체의 끝이 어디서 나는지 알고 싶어서 무작정 수평선을 따라갔습니다.

그 끝을 발견하는 데에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이 ‘땅-위-이동-철의 종족’이었습니다. 그는 생을 다하여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었죠.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뼈대만을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종족은 몹시 거대하고 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따라온 기다란 종족 위만 달릴 수 있는 듯했습니다. 마치 공생 관계처럼 보였습니다.

기록도 증언도 없기 때문에 저는 오로지 감에 의지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여정이 길게 뻗어있는 까닭을 알고 싶었습니다. 두 종족을 찾기 위해 땅을 열심히 보며 걸었다면 이제는 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를 볼 때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연 풍광을 사랑하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해안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내달렸습니다. 그들은 사교적인 성정을 지녔는지 다양한 철의 종족이 있는 들판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보았음직한 시점으로 바라보며 처음으로 지구가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다른 철의 종족과 달리 어디로 이동했는지 흔적을 알 수 있다는 개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지의 세계를 달려나가는 높은 도전정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이렇게 달린 것일까요. 신이 그들을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일까요. 그들은 무엇을 흡수하고 섭취하였을까요. 왜 그렇게 외형을 다양하게 만들고 살아왔던 것일까요. 그들은 어떤 여가를 보내고 무엇을 궁금해했을까요.

팀장님, 저는 지구에 좀 더 남아서 이 둘을 중심으로 철의 종족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지구에 대한 다른 정보들도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이들의 생활 방식이나 철학에 대해 알게 되면 또 메시지 드리겠습니다. 그때 까지 안녕히 계세요.

마음을 담아, 마크로 드림.

박해울 작가

2012년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고, 2018년 《기파》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가.
유년시절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뉴턴》을 읽으며 SF와 판타지 작가의 꿈을 키웠다. 2019년 《오늘의 SF #1》에 단편소설 <희망을 사랑해>를 실었고, 2021년에는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에 <요람 행성>, 《비유》48호에 <승차권을 반드시 소지하고 계십시오>를 발표하는 등 꾸준히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