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약재와 채식으로 처방하는 한약국

인천 부평의 한 여고 앞에는 채식과 환경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든다는 조금 특별한 한약국이 있다. 한방과 채식을 결합한 국내 유일의 채식 한약국인 기린한약국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현주 한약사는 녹용이나 웅담 등 동물성 한약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식물성 한약재만으로 약을 처방한다. 기린한약국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단지 약 처방만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보다는 삶의 방식이나 식단을 바꿔 체질을 개선하고 싶어 오는 경우가 많다. 이현주 한약사가 환자들에게 약과 함께 맞춤형 채식 식단을 처방해주기 때문이다.
“한 약학을 공부하던 당시에는 저도 동물성 약재로 실습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졸업할 무렵 채식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를 통해 몸과 마음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어요. 이것을 직업적으로도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채식 한약국을 열게 됐습니다. 이후 여러 강연도 하고 한국 ‘고기 없는 월요일’ 대표로도 활동하며 채식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현주 한약사는 올해로 채식을 실천한 지 19년째다. 채식 시작 후 몇 년 뒤부터는 육류는 물론 계란, 우유까지 먹지 않는 완전한 비건으로 살고 있다. 그에게 “고기를 먹지 않으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선입견에 대해 한약사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과거의 영양학에서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영양소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영양학 모델을 취한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의 문제가 나타났어요. 최근 영양학계에서는 채소와 과일의 섭취를 강조하고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는 ‘자연식물식’과 ‘식물기반 영양학’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기를 먹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과학적 데이터들이 뒷받침하고 있죠.”

평화적으로 세상에 참여하는 나만의 방식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대학 시절, 이현주 한약사는 돌을 던지지 않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시작한 채식에서 우연히 답을 찾게 됐다.
“채식을 처음 시작한 건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혼란하던 무렵, 식단을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란 주위의 조언 때문이었어요. 채식을 하고 100일 정도 지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죠. 채식에 대해 더 공부해가다 보니 이것이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채식’이란 키워드를 넣어 제 삶을 다시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로 뛰쳐나가 외치지 않아도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식은 그의 성향과 잘 맞았다. 그래서 한약국을 찾은 환자들에게 채식의 이점을 알려 나가기 시작했고, 점차 강의 등 더 적극적인 활동들을 늘려나가게 됐다.
“제가 지금껏 채식을 실천하고 전파해온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인간으로 살면서 가능하면 다른 생명들에게 해를 덜 끼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비록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구하려는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채식은 내 한 끼 식사를 바꾸는것만으로도 지구 공동체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처음에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너무 별난 사람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바꿔보고자 채식을 알리는 활동들도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1년 동안 실천하면 30년산 소나무를 15그루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 부담 없는 채식의 시작, 고기 없는 월요일

    이현주 한약사는 2010년부터 글로벌 환경단체 ‘고기 없는 월요일’의 한국 대표로도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다. 고기 없는 월요일은 ‘일주일 하루 채식’을 통해 기후변화를 완화하고자 하는 환경 운동이자 라이프스타일 운동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적 삶을 제안한다. 폴 매카트니로 인해 세계로 확산해 현재는 40여 개국에 조직이 있다. 이들은 유엔 회의에 함께 참여하거나 글로벌 환경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한국 고기 없는 월요일에는 이현주 한약사를 포함해 10명 정도의 메인 활동가와 50여 명의 서브 활동가가 활동 중이다. 이들 중에는 완전한 비건도 있지만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 유제품, 난류는 허용) 등 좀 더 유연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이들은 채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프리, 제로 웨이스트 활동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 친환경적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 있다.
    “대 한민국 국민 전체가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1년 동안 실천하면 30년산 소나무를 15그루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식단을 바꾸면 지구와 동물들이 행복해지고 내 건강도 더 좋아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삶이 굉장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실천하시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올해 전 세계의 활동가들과 함께 기후 위기를 고민하고 식량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글로벌 활동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국내외를 오가며 채식 강의 등 교육 활동도 계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방 채식을 지향하는 후배들도 양성해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