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한 한 줌의 숨을 기원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월면열차 8호기의 운행을 맡고 있는 철도기관사 벅스입니다. 제 이름의 어감이 이상하지요? 달 공용어로 발음하기에 제 이름이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지만 이름만큼은 늘 선물 받는 것이니까요.
자, 먼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좌석 앞에 붙어 있는 그림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만약에 벨트가 끊어졌거나 파손된 좌석에 앉아 계신다면 빨간 불이 들어오기 전에 안전벨트가 온전한 좌석으로 옮기시기를 권장합니다.
물론 제가 지금의 안내멘트를 읊는 서기 2189년 4월 2일 시점에서 이 월면열차는 다친 곳 없이 멀쩡합니다. 그러나 제 목소리를 듣는 여러분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열차에 탑승하게 되실지 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열차의 동력원은 태양열을 충전해 달리기 때문에 멈출 일이 없으나 달의 표면을 강타하는 운석들은 늘 우리의 골칫거리잖아요?
그래요. 저는 여러분이 무사히 열차 여행을 마치길 바랍니다.
그러면 발착 포트 올드린을 떠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

아주 아름답지요?
물론 인공지능 기관사인 제게 여러분과 같은 눈과 귀는 없습니다. 하지만 열차의 실내 데시벨 기록을 보면 탑승객 중 89%에 달하는 분들이 바로 이 창밖의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으신다고 합니다.
달의 지하 기지에서 평생을 보내셨을 여러분이 영상이 아닌 실제로 푸른 별 지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니까요. 물론 소문과 달리 그 크기가 너무 작은 것에 실망하는 탑승객 분이 계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저 지구에서 우리의 달을 올려다보면 지금 여러분이 보는 동그라미보다 더욱 작은 구체에 불과하다는 걸요.
물론 지금 제 음성은 여러분이 지구를 처음 목격한 뒤 10분 뒤에 재생되도록 준비돼 있습니다. 소원을 비셔야 하니까요. 저는 마술사는 아니지만 한 번 맞춰볼까요? 아마 여러분은 도착 포트인 암스트롱 기지까지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달라는 소원을 저 푸른 별에 대고 비셨을 겁니다.
제가 가진 기록에 따르면 지구 문명의 절반 이상에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자신들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고 온전히 보름달이 영롱하게 떠올랐을 때 말이죠. 달에 사는 토끼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 믿은 거죠.
그런데 달에서 태어난 여러분은 거꾸로 지구를 보며 소원을 빌고 있으니 흥미롭지 않나요?
물론 여러분의 여행은 안전할 겁니다. 기관사인 제가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드릴 테니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제 이름 벅스의 유래를 설명드릴 차례군요. 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토끼의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니 믿어봄 직하지 않나요.

* * *

방금 여러분이 지나치신 것이 달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인 콜린스 전파망원경입니다.
수명을 다하기 전엔 지구와 우리 달의 소통에 큰 역할을 해준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제 알고리즘의 토대 또한 저 콜린스 전파망원경의 것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이제 여러분은 직선 터널을 통해 다시 지하로 들어가시게 됩니다.
도착 포트까지 6시간도 채 남지 않았지요.
이 안내멘트 또한 여러분이 듣는 제 음성 중 마지막이 될 겁니다.
저는 압니다.
여러분이 월면인으로서 궤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셨을지.
전신우주복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기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음에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그런 삶이 계속될수록 인류의 출발지인 지구를 향해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쌓이고 쌓였을지.
저는 모릅니다.
현재 지구의 상태가 과연 어떨지.
이상기후 현상에 해일과 쓰나미가 더 많은 도시를 덮쳤을지.
전쟁과 폭동, 여러분이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을 결국 쓰러트리고 말았을지.
그러니 저는 기관사로서 제 할 일을 다 하겠습니다.
단 한 명의 탑승객이라도 여행을 원하는 분이 계신다면 멈추지 않고 달릴 겁니다.
그것이 아무리 불확실한 미래라 하더라도 저는 여러분의 행운을 빌 뿐입니다.
이 열차에서 내려 꿈꾸던 지구에 발을 내딛게 되신다면,
그리하여 생애 처음으로 우주복을 벗고 합성 산소가 아닌 진짜 산소를 들이마시며 웃으시게 되겠지요.
그때가 온다면 부디 밤하늘을 올려다 봐주세요. 그때도 월면을 열심히 달리고 있을 이 열차를 향해 웃어주세요. 부디 제가 멈추지 않기를 빌어주세요. 여러분의 탑승료는 그 웃음으로 받겠습니다.
부디, 평안한 한 줌의 숨을 기원합니다.
임태운 작가

2007년 《이터널 마일》로 한국전자출판협회 제2회 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마법사가 곤란하다》, 장편소설 《화이트블러드》 《이터널 마일》 《태릉좀비촌》을 펴냈고,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그것들》 《앱솔루트 바디》 등 다수의 앤솔러지에 참여했으며, 《장르의 장르》 《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에 글을 싣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한국 SF 문학계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