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노스탤지어호에 타고 있어. 5호 차 3A, 창가 자리야. 기차 여행을 할 때면 너는 언제나 내게 창가 자리를 양보해줬지. 내가 고맙다고 하면 짓궂게 웃으며 말했어. “창가에 앉으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거든.” 물론 그건 네 방식의 농담이었지. 총알이 빗발치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으니까.
이 열차의 목적지는 사라진 것들의 행성. 어느 순간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것들을 볼 수 있는 행성이지. 행성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다고 들었어. 그곳에 가면 오직 열차 안에서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대. 사라진 것들을 수집한 행성의 주인이 이곳을 개방할 때 내건 단 하나의 조건이었다지.
나는 천천히 객실 안을 둘러봐. 뜨개질하는 할머니, 종이책을 보는 할아버지, 단체로 관광 온 듯 같은 조끼를 입은 노인들.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도 있지만 노스텔지어호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나 같은 노인들이야.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 딸기를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딸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마침내 열차가 사라진 것들의 행성에 도착해. 열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승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봐.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열차 안의 공기를 가볍게 흔들어.
행성의 풍경은 박물관이라는 말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 웅장한 나무 모양의 조형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있고, 그 주위를 증기기관차가 나선형으로 감싸고 있어. 증기기관차의 후미에는 디젤 열차가, 그리고 그 뒤에는 고속철도와 자기부상열차가 이어져 행성 전체를 휘감아 달리는 것처럼 보여. 그것만이라면 열차 박물관과 다를 게 없겠지. 각 열차 위에는 홀로그램처럼 사라진 것들이 떠 있어. 저택을 장식하던 괘종시계, LP 레코드를 재생하는 턴테이블, 나무로 만들어진 자전거…. 이 행성의 독특한 중력이 사물들을 공중에 멈춰 있게 하는 거야. 옛날 영화에서나 본 것들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웠어. 더 오래된 것들일수록 기품 있어 보이기도 했고.
노스텔지어호는 무심한 듯 느리게 나아갔어. 나는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부스, 타자기, 아날로그 라디오 같은 것들을 신기하게 바라봐. 무질서하게 떠 있을 뿐인데도 묘하게 어우러져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물들. 사라진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슬픈 느낌이 들어. 마음이 뭉근해지는 따뜻한 슬픔 말이야.
창밖의 경치가, 실제로 본 적 있는 것들로 바뀌기 시작했어. 둥그런 딱정벌레처럼 생긴 로봇청소기, 날 없는 선풍기, 반으로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 우리가 어릴 때 유행했던 물건들이야. 너라면 분명 이런 것들을 더 재미있어했을 거야. 이곳에 너랑 함께 왔다면 좋았을 텐데, 너는 왜 말도 없이 나를 떠났을까. 혹시 비밀 쪽지를 남기고 간 건 아닐까. 나는 가끔 책장의 모든 책을 샅샅이 뒤져보곤 해. 쪽지 따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네가 떠난 지 벌써 50년이 흘렀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리움 때문일까. 창밖으로 너의 환영이 보여. 너는 ‘사라진 것들’과 더불어 열차 위에 떠 있어. 가슴 위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모습이 깊은 잠에 빠진 천사 같아.
너는 여기 있을 수가 없는데. 너는 인간이고, 인간은 사라진 것에 포함될 수 없잖아?
공연히 눈을 깜박거리고 먼지 없는 창을 소매로 닦아. 환영이 아니야. 잘못 봤을 리가 없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난다고 해도, 난 너의 그림자만으로도 널 알아볼 수 있는걸.
허둥지둥 객실 칸 사이로 가서 당장 내려달라며 문을 두드려. 하지만 열차 문은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열리지 않게 되어있어. 기차가 나아가고 너와의 거리가 멀어져. 안 돼, 안 돼. 나는 열차 뒤로 달려가. 화장실에서 나오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소릴 질러. 죄송하다고 외치면서도 멈추지 않아. 지나가던 차장이 막아서려 했지만 가볍게 밀치고 또다시 사과해. 아무리 달려도 너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지.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쳐.
“제발 열차를 멈춰주세요! 부탁입니다!”
너무 소란스러워서였을까. 기적처럼 열차가 멈춰. 열차의 마지막 칸에서, 창을 사이에 두고 너를 마주해. 한쪽으로 살짝 기운 목덜미에 새겨진 양 모양. 그건 전기양 주식회사의 초창기 로고였어.
나는 그제야 깨달아. 네가 안드로이드였다는 사실을. 폐기되어야 할 구형 안드로이드. 그래서 말없이 날 떠난 거야? 왜, 내게 도시를 탈출하자고 말하지 않았어? 나에게 말해줬더라면, 나와 함께 기계들의 섬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너와 나, 영원히 함께….
나는 열차 복도에 주저앉아 흐느껴. 우리는 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을까.
“이봐요, 젊은이. 괜찮아요?”
갈색 정장을 입은 노인이 내게 다가와 물어. 그에게는 내가 삼십 대 정도로 보이겠지. 너와 헤어질 때 모습 그대로니까.
“네, 괜찮아요.”
열차가 다시 출발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로 돌아가. 손톱보다 작아진 너를 보며 목덜미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귀 뒤에 있는 볼록한 로고가 만져져. 네 것과 조금 다른, 양 모양의 로고가.
남유하 작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예리한 시선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다. 단편 〈미래의 여자〉로 제5회 과학소재 장르문학 우수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푸른 머리카락〉으로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았으며,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다이웰 주식회사》와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창작동화집 《나무가 된 아이》 등이 있다. 《다이웰 주식회사》에 수록된 단편 〈국립존엄보장센터〉는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소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