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혹시 기억하려나 모르겠는데, 204X년 4월 27일의 가장 큰 뉴스는 남북한 철도 운행 재개 사업이었다. 철도 자체야 이미 2005년이 되기도 전에 복원됐지만, 그 사이로 열차가 마지막으로 운행한 지가 수십 년이 더 된 터였다. 그 사이로 다시 열차를 운행한다. 그리하여 갈라진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두 나라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저조한 지지율로 골치를 썩이고 있던 정부의 야심찬 한 수라고 할 만했다.
놀랍게도(그리고 꽤 익숙하게도), 그로부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살벌한 메세지를 쏟아붓던 북한은 우리 정부의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철도 운행 재개에 필요한 이런저런 기술적 점검이 끝나고 난 다음, 문산역과 금강산역에서 각각 열차가 출발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울역에서 평양역까지 매일 24번씩 KHX(Korean Hypertube Express)가 오가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각각의 열차에는 몇몇의 특사들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이 운행 재개는 지극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꽤나 분분하던 여론을 기억한다. 50대 미만의 세대에게 북한은 꽤나 낯선 존재였다. 아니, 낯설다기보다는 아주 불편하고 웬만하면 서로 왕래하고 싶지 않은 이웃 정도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다. 장년층에서는 아직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희망을 품은 이들이 많았다. 좋든 싫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든 없든, 어쨌든 우리는 이웃이잖아.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글쎄, 일단 난 이 철도 운행 재개 사업에 꽤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땐 하이퍼튜브 철로가 전국을 잇게 되면서 ITX 새마을호가 모조리 퇴역하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하이퍼튜브 열차들은 중앙 통제 AI를 통해 완전 자율 운행하고, 나 같은 늙은 기관사는 모조리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북한에는 하이퍼튜브 철로가 아직 놓이지 않았다. 말인즉슨 예전의 전동차가 사용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가 북한으로 가는 열차의 기관사로 낙점되었다.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정부는 당시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들던 정치 평론가들은 이미 열차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년에 철도 운행으로 말싸움을 벌였던 것을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뭐, 그래도 내가 매주 한번씩 금강산역으로 열차를 몰고 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운행 재개 사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비록 정부가 희망하던 대로 우리 철도가 대륙철도에 편입되고 사람들이 기차 한 번 탄 채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떠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북한이 갑자기 역사를 폭발시킨다든가 하는 식으로 사업이 완전히 망하지도 않았다. 남북한의 서로 떨어지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떨어질 수도 없는 기묘한 관계처럼 이 금강산행 철마는 계속해서 달려왔다.
내가 모는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딱 한 개의 차량이 달려 있다. 대북 특사를 가끔 태우고는 하지만, 그 차량도 텅 비어 있는 때가 많다. 창밖으로 비치는 북한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끔 스스로에게 묻고는 한다. 여객열차는 사람을 실어. 화물열차는 화물을 수송하지. 그렇다면 내가 나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믿음일 것이다. 이 가느다란 철로를 통해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심너울 작가
트렌디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MZ세대 SF 작가 중 한 명이다. 2018년 단편소설 <정적>으로 데뷔해 2019년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제6회 한국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토리코믹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장편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중단편소설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산문집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