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호에는 인도네시아 사업을 하며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경험을 적어보겠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당장 티 나는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네트워크 강화 때문에 일이 바빠 힘든 건 있었지만 그건 즐거운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발주처나 파트너사의 버티기 및 말 바꾸기 등 제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날 때가 저에게는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최근에 있었던발주처의 기성 지급 지연이 하나의 사례입니다.

2019년 10월 자카르타 LR 개통 후 같은 해 12월 공사가 준공되고 기술자들이 한국에 다 복귀했음에도 2021년 중반까지 마지막 기성 일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발주처인 Jakpro는 주계약자에게 100% 기성을 지급했으나, 주계약자가 시스템 하도사인 공단 컨소시엄에 기성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하도급 지킴이’ 같은 시스템이 없기에 발주처에 문의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주 계약자에게 지속적으로 문서를 보내고 답변을 요청했으나 기성과는 상관없는 하자보수 관련 서류만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그 자료는 저희가 당장 제출할 수 없는 서류였습니다. 마지막 기성을 2019년 말까지 지급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던 자료를 들이밀며 제발 만나 달라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같은 회사 사업 개발 담당자를 만나 이 내용에 대해 문의해도 알아보겠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연이어 무시를 당한 상태라 상처는 받지 않았지만 이렇게 정공으로만 가면 끝이 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주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저희 서류를 다 검토하고 “아마도 기성을 지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실무자의 긍정적인 답변을 받고 기대하고 있던 주였습니다. 그런데 답변 온 내용은 또 똑같이 ‘유지보수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2019년 마지막 기성 지급 확약 서류를 가지고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자카르타 LRT 1단계 사업은 완료되었고, 그 팀도 뿔뿔이 흩어져 다른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대리급 직원 사무실에 갔더니 9시가 넘었음에도 아직 도착 전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차장급 최종 실무자 사무실에 찾아가자 본사 월간회의를 갔다고 합니다. 곧장 본사로 달려가 10시부터 계속 기다렸습니다. 회의를 마친 간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무조건 눈에 익은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저희의 계획이었습니다. 2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더군요. 이것도 실패하면 다음주부터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시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12시 반쯤 어떤 나이 지긋한 분이 나오셨는데 제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줄을 서서 이 분께 사인을 받기 시작합니다. 직감적으로 이 분이 높으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참 기다리다 말을 걸었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하고 제게 10분만 시간을 달라 애원하듯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본 사업 최종 결정자와 미팅을 주선해 달라 부탁드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최종 결정자에게 전화를 거시더군요. 그리고는 저희에게 곧 연락이 갈 것이라 했습니다.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미팅이 잡혔습니다.

결전의 날, 단단히 준비를 하고 회의실로 들어갔습니다. ’19년 확약서를 써준 사람의 후임자인 최종 결정자가 나왔지만 또 똑같은 말입니다. “2019년도에는 내가 없었다, 그래서 이 확약서는 모르겠고 유지보수 서류 가져오면 기성을 주겠다.” 저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요. “저 사인할 때는 나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 대 회사로 한 사인이고, 우리는 유지보수와 관련 없는 기성금을 받고자 한다. 마지막 기성금을 지급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와는 대화가 안 된다며 그냥 나가시더군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휴대폰을 살짝 던지는 시늉을 하자 실세인 여자 차장님, “우리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이리 화를 내냐?”고 합니다. 아… 굉장히 화가 나더군요. 그럼 우리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제 옆에서 가만히 계시던 조 과장님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셨습니다. “변호사와 상담하니 기성 미지급 경고장(소마시)을 내고 우리가 승소하면 1년 넘는 미지급 기간의 이자도 너희가 내야 한다고 들었다. 우리 공단은 진행하겠다”고 강력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꼬리를 내려 “그럼 최대한 빨리 유지보수 서류를 제출한다고 약속하면 병행해서 기성 주겠다”고 말을 바꾸더군요. 서류는 올해 안에 꼭 제출하겠다고 답하고, 이후 또 하나의 확약서에 사인한 뒤 한 달 후에야(처음 요청한 지 1년 8개월 만에) 드디어 마지막 기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유보금도 계속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불러도 대답 없고, 다른 이야기로 맞대응하던 2년여의 생활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일을 겪은 뒤 뭐든 집요하게 진행하다 보면 다 이룰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인도네시아의 LRT와 MRT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