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을 다한 철길에서 시민들의 다정한 쉼터로 탈바꿈한 경의선 숲길은
어느새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writer. 전하영 photographer. 이도영

느긋하게 걷는길

경의선 숲길

바쁘고 소란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경의선 숲길은 잠시도시의 박자를 벗어나 천천히 걷고 싶어지는 길이다.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옛 철길 구간을 따라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6.3km의 길고 단정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2016년에 조성된 이 선형 공원은 한때 쓰임을 다한 폐철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서울의 대표적인 친환경 도심공원으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전국 수많은 도시재생형 공원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연트럴파크’로도 불리는 연남동 구간은 공원 주변 골목으로 새로운 상권이 조성돼 주말마다 젊은 나들이객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도심과 숲이 공존하는 경의선 숲길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그저 도란도란 걷기만 해도 좋은 아름다운 길이지만, 경의선 철길의 역사를 알고 걸으면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경의선은 경성의 ‘경’과 신의주의 ‘의’ 자를 딴 이름으로, 1900년대 초반 일제가 한반도 수탈을 위해 건설한 철로다. 한때 한반도의 남북을 관통하는 가장 많은 노선을 운행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반쪽짜리 철길이 됐다. 그러다 1975년에는 여객 영업을 중단했고, 물류 역시 다른 수송수단들이 발달하면서 지상 구간의 철로는 점차 도시환경을 해치는 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경의선 지하화 작업이 시작되면서 마포와 용산 구간을 연결하던 지상의 철길은 완전히 폐선됐다. 철길을 걷어낸 자리에는 시민들을 위한 지금의 경의선 숲길 공원이 들어섰다. 철길이 놓이기 이전부터 오랜 세월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던 마포와 용산 일대는 격변의 시간들을 지나 2022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따라 오가고 있다.

바쁘고 소란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경의선 숲길은 잠시 도시의 박자를 벗어나 천천히 걷고 싶어지는 길이다.

명실상부 나들이 맛집

와우교 구간 & 연남동 구간

경의선 숲길은 크게 4개의 주요 구간으로 나뉜다. 연남사거리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지는 연남동 구간, 홍대 앞 와우교부터 서강대역에 이르는 와우교구간, 신수·대흥·염리동 구간, 그리고 새창고개·원효로 구간이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연남동 구간과 와우교 구간 산책로를 걸어봤다.
와우교 구간은 경의선에 대한 향수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구간이다. 먼저 열차가 다니던 시절 ‘땡땡거리’라 불리던 철도 건널목을 재현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철로를 향해 수신호 중인 역무원과 건널목을 건너려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한 동상이다. 그 앞쪽으로는 달리는 열차 대신 양 갈래의 산책로와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동상들을 중심으로 허름한 노포와 현대적인 가게들이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녹이 슨 선로 변환기 등 곳곳에 숨은 옛 경의선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와우교 아래에는 ‘책거리역’이란 이름으로 옛 간이역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도 보인다. 와우교부터 홍대입구역 6번 출구까지는 독서를 테마로 조성된 ‘경의선책거리’다.
거리 곳곳의 대형 조형물들이 이 거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숲길 주변으로는 작은 책방들과 도서 관련 아카이브 공간, 체험및전시공간 등이 자리해있다. 홍대입구역부터는 경의선 숲길의 하이라이트인 연남동 구간이 이어진다. 젊은이들로 복작이는 연남동 한가운데로 운치 있는 은행나무길과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늦가을에는 더욱 절경을 뽐낸다. 공원에는 지금은 사라진 세교천(망원천)을 재현한 작은 실개천도 흐르고 있다. 남아있는 철길의 흔적도 공원의 풍경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부터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등 공원을 즐기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산책로 양옆으로는 연남동의 감성을 가득 품은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 소품샵들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미로 같은 작은 골목들을 탐험하며 맛집이나 멋진 가게를 찾아내는 것도 이곳의 재미 중 하나다.
미로 같은 작은 골목들을 탐험하며 맛집이나 멋진 가게를 찾아내는 것도 이곳의 재미 중 하나다.

낭비없는삶을응원하는가게

지구샵

연남동 골목을 구석구석 탐색하다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 중 하나가 지구샵 연남점이다. 지구를 위한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제로웨이스트 편집샵으로, 환경과 제로웨이스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꼭 한 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제로웨이스터의 홈’이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지구샵의 내부는 주방, 욕실,서재의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주방 테마 구간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를 대체하는 가벼운 나무 식기들과 다양한 색상과 재질의 다회용 빨대, 미세플라스틱 걱정을 덜어줄 물방울 수세미, 자연 유래 성분의 주방비누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절수패드가 설치된 싱크대에서 친환경 수세미와 주방비누 등의 사용감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욕실 테마 구간 역시 실제 욕실처럼 꾸며져 있다. 아크릴 타월을 대체할 유기농 샤워타월과 수건, 생분해가 가능한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과 샴푸바 등의다양한 친환경 욕실용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서재 구간에는 사탕수수 메모패드,재생지 엽서 등 친환경문구 아이템이 진열되어 있으며, 세 가지 테마 외에도 수많은 제로웨이스트 생활용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가게 한 켠에는 리필스테이션과 순환스테이션도 운영 중이다. 리필스테이션에서는 천연성분으로 이뤄진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핸드워시, 디퓨저 등을 원하는 만큼 리필해 구입할 수 있다. 미처 빈 용기를 준비해오지 못했다면 1,000원의 환경 기부금을 내고 유리병을 제공받아 원하는 제품을 담아갈 수 있다.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면 ‘탄소중립 실천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순환스테이션은 플라스틱 병뚜껑, 일회용 수저, 우유팩과 멸균팩, 젤 아이스팩등이 새활용될 수 있도록 수거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순환 자원을 모아 지구샵에 가져오면 지구은행이라고 적힌 귀여운 지구통장에 스탬프를 적립할 수 있다. 스탬프 10개를 모으면 2만 원 이내의 비건 베이커리류나 음료 등과 교환할 수있다.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55, 1층

월~일 11:00~21:30(매주 화요일 휴무) 070-7721-5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