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열차, 초고속 인터넷, 총알배송 등 빠른 속도에 익숙한 현대인들.
바쁜 세상의 치열한 속도전 속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것들을 알아본다.

writer. 전하영

빠른 배송을 향한 무한경쟁

퀵커머스

우리나라의배송 서비스는 날이갈수록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과거에는 주문 후 3일 내에만 상품이 도착해도 빠른 배송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익일배송, 당일배송, 새벽배송을 넘어 급기야 주문 후 1시간 안에 물건이 도착하는 즉시배송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배송 경쟁’을 넘어 ‘배송 전쟁’의 시대다.
이제 퇴근길에 직접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대신 모바일로 식재료를 주문만 하면 집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물건이 먼저 도착해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주문 후 짧게는 15분, 길게는 2~3시간 만에 배송이 완료되는 근거리 즉시배송 서비스를 ‘퀵커머스(Quick Commerce)’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급부상한 서비스다. 배송 가능한 제품도 각종 신선식품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하다. 퀵커머스 서비스는 도심에 여러 개의 물류센터를 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곧장 라이더가 상품을 전달받아 출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업체들은 위험과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빠른 배송 서비스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배송 속도에 대한 경쟁은 과열된 상태다.
이 같은 배송 속도 전쟁터의 한편에서는 정반대로 느린 배송의 가치를 추구하는 ‘슬로우커머스(Slow Commerce)’도 등장했다. 배송, 물류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몰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빠른 배송 대신 품질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느린 배송을 선택하는 문화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생산 일정이나 배송 상황에 맞춰 미리 주문하거나 크라우드 펀딩으로 구매하는 방식, 핸드메이드 제품을 주문 제작하는 방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제철 식품을 미리 주문받은 뒤 품질이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때 배송하는 서비스도 있다. 소비자와 노동자의 상생을 추구하는 슬로우커머스가 유통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짧고 빠르게 즐기는 요즘 영상

    숏폼 콘텐츠

    MZ세대로 대표되는 요즘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특성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짧은 콘텐츠를 매일 수시로, 빠르게 소비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짤막한 영상이 끝나면 신속하게 다음 영상을 재생한다. 이렇게 10초에서 10분 내외로 만든 짧은 영상 콘텐츠를 ‘숏폼 콘텐츠(Short-form Contents)’라 한다. 과자를 먹듯 빠른 속도로 즐긴다 하여 ‘스낵컬쳐(Snack Culture)’라고도 불린다. 잠깐의 휴식시간이나 이동시간 등 틈날 때마다 쉽게 소비할 수 있고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빠르게 시청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15초~1분 길이의 짧은 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글로벌 소셜미디어 틱톡이 있다. 인스타그램의 릴스, 유튜브의 쇼츠도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숏폼 콘텐츠 서비스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했다. 플랫폼 안에서 음악과 편집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한 장비 없이 휴대폰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나만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숏폼 콘텐츠는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 연예인들은 챌린지 영상 등을 만들어 자신의 곡을 홍보하기도 하고, 각종 기업과 브랜드들도 숏폼 콘텐츠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숏폼 콘텐츠 플랫폼들은 대부분 세로 형식의 영상을 제공한다. 스마트폰에서 위아래로 빠르게 피드를 넘기며 시청을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영상 하나가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영상이 재생되고, 다시 빠르게 다음 영상을 재생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하지만 무한 재생을 멈추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이처럼 의미 없고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밀도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무한대로 쏟아지는 영상물로부터 정신 해독을 원하는 ‘비디오 디톡서(Vedeo Detoxer)’들이다. 이들은 얕고 가벼운 숏폼 대신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롱폼 콘텐츠를 찾아 소비한다. 이는 영상이 아닌 글의 형태다. 영상이 텍스트를 대체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글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는 의미다. 최근 텍스트를 읽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문해력에 관한 논란도 많아졌는데 롱폼 콘텐츠가 숏폼 콘텐츠의 단점과 부작용을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느린 아날로그의 역주행

    필름 카메라 · LP

    디지털화로 모든 것이 빠르고 간편해진 세상에서 느리고 불편한 매력으로 인기 역주행 중인 아이템들도 있다. 오래된 아날로그의 감성을 가득 품은 필름 카메라와 LP 레코드다. 빠르게 찍고 즉각 확인이 가능한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원하는 음악을 즉시 재생하는 음원 스트리밍 대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LP 음악을 재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레트로, 뉴트로 열풍과 함께 이러한 아날로그 기기들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롭게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부터는 사진을 인화하는 일조차 거의 없어졌다. 한정된 필름으로 어렵게 사진을 찍어 인화하지 않고도 손쉽게 훨씬 많은 양의 사진을 찍어 데이터로 보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랬던 필름 카메라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요즘은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동시에 사진관처럼 현상도 해주는 가게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필름 사진이 특별한 추억을 더 특별하게 간직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들은 필름을 구매하고 현상을 맡기는 과정까지도 즐거운 경험으로 느낀다.
    LP 역시 카세트테이프와 CD, MP3, 스트리밍 서비스 순으로 음악 재생 매체가 발달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던 물건이다. LP는 관리도 까다롭고 사용 과정도 번거롭다. LP판을 조심스럽게 턴테이블에 올린 후 정확한 위치에 바늘을 내려놓고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해야 비로소 소리가 재생된다. LP를 찾는 사람들은 조금 느리고 불편한 이 모든 과정을 가치 있는 경험으로 여긴다. 직접 손으로 만지며 향유할 수 있고 음반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도 LP를 찾는 이유다.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다시 LP 음반을 발매하는 뮤지션도 늘고 있다. BTS나 블랙핑크 등 인기 아이돌들까지 LP 음반을 출시하는 것을 보면 LP의 화려한 부활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