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h로 달리는 고속열차에서 첨단 무선통신 설비에 의한 철도교통 관제는 안전운행을 위한 필수요소다. 100% 국내 기술로 개발된 철도통합무선망 LTE-R을 최장거리 철도 구간에 성공적으로 구축해낸 문엔지니어링 조준구 전무를 만났다.

writer. 전하영 photographer. 이도영

철도 전용 첨단 무선통신망, LTE-R

안전한 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도 통신의 단절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철도통신망은 인체의 중추 신경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고양차량기지부터 동대구역까지 약 300km 구간에 철도통합무선망 LTE-R 기지국을 구축하는 ‘경부고속철도 1단계 LTE-R 개량사업’이 완료됐다. 단종된 구형 외산 장비를 대체해 100% 국내 기술로 개발된 4세대 이동통신 LTE-R 장비를 행신~동대구역 열차 운행 구간에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프로젝트의 책임감리를 맡은 문엔지니어링 조준구 전무는 국내 최장거리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에 대해 철도통신기술자로서 큰 보람과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LTE-R은 ‘Long Term Evolution-Railroad’의 약자로, 고속철도 안에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비롯한 실시간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현재 휴대폰에서 사용하는 LTE 기술을 철도 환경에 최적화한 것이다. 문자와 음성만 가능했던 기존 통신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더욱 안전한 운행과 효율적인 시설 관리, 신속한 재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LTE-R은 통신의 품질은 물론이고 사용자의 편리성 면에서 과거의 시스템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전에는 구간마다 통신 방식이 달라 승무원이 3가지 단말기로 음성 무선통신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이제는 LTE-R 단말기 하나로 음성, 데이터, 영상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기관사와 관제사 간 실시간 무선통신은 물론, 선로변 취약지구의 영상감시정보 전달, 쾌적한 역사 환경 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고된 여정 끝 이룬 값진 성과

조준구 전무는 30여 년 경력의 베테랑 정보통신기술사다. 2009년부터는 지금의 문엔지니어링에서 철도 감리 부문 감리단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철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왕십리~선릉 지하철 구간 통신 감리, 분당선 구간 6개 역사통신 책임감리, 호남고속철도(오송~송정) 선로통신 책임감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특히 2018년 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2017년 12월에 개통했던 경강선(원주~강릉) LTE-R 사업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 분야의 세계 최초 대형 프로젝트였으며, 국내 기술로 제작한 첨단 무선통신 시스템을 산악철도 현장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첫 사례였다.

“영하 25도의 눈 쌓인 백두대간 산속에서 전파간섭 시험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선로변과 인접한 동일 주파수대의 기지국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주파수 간섭을 회피하고 충돌을 방지하는 시험을 수행하면서 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어요. 시공사와 어려운 문제를 들고 씨름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모든 공정을 무사히 끝내고 나니 철도 통신 역사에 남을 만한 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조 전무는 현장 적용 무선 기지국 건설에 필요한 제반기술 기준 및 관련 공법 등을 신규 정립하고 경강선 구간을 무사 개통한 공로를 인정받아 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서 국내 최장거리인 경부고속철도 1단계 LTE-R 개량사업에서도 책임 감리단장을 맡았다. 앞선 경강선 구간은 신설구간이라 주간 작업이 가능했으나 경부고속철도는 운행선 구간이므로 열차 운행이 끝난 야간에만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총연장 300km 구간의 교량, 터널, 역사 등에 새벽 시간만을 이용해 LTE-R 기지국을 설치하고 케이블을 포설해야 했다.

“이번 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연중 계속되는 야간작업으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건강을 해쳤던 부분입니다. 연일 반복되는 야간작업에 지쳐가는 작업원 들과 감리원들의 모습을 볼 때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노력과 협력 끝에 전 구간에 LTE-R 설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 모든 공정을 무사히 끝내고 나니
    철도 통신 역사에 남을 만한
    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LTE-R, 재난 대응 속도를 높이다

고속열차 안에서 영상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LTE-R 시스템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긴급 상황 발생 시 훨씬 더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통신 시스템은 문자와 음성만으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어 재난 발생 시 현장의 무전을 통해 상황을 확인한 후에야 열차가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또한 경찰, 소방, 응급 의료기관의 무선 시스템이 모두 달라 신속한 대응이 더욱 어려웠다. 현재는 국내 제조 장비로 통일한 LTE-R 망 구역 내에서 각 기관의 재난구조 요원과 상황본부의 다자간 통화가 가능해져 일원화된 지휘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사고 현장에서 실시간 전송되어온 사진이나 영상은 천 마디 말을 통한 보고보다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사태 파악과 사고 수습에 매우 용이합니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 녹음, 녹화되므로 사고 후 분석 및 원인 제거에도 긴밀하게 사용됩니다.”
실제로 LTE-R 시스템 덕분에 경강선 강릉 구간에서 발생한 아찔한 탈선사고를 조기 수습한 사례도 있었다. 선로 한쪽의 전기와 광케이블이 절단된 상태에서도 교번 배치한 기지국의 무선통신망이 살아있어 신속하게 사고를 파악하고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LTE-R은 재난 상황 대응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철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였다. 철도 시설물 중 접근이 쉽지 않은 구역의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선로 유지보수 작업 시에도 스마트 안전 솔루션을 통해 더욱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역사 내 공기 청정도와 온도, 습도 등의 정보를 실시간 전달해 쾌적한 환경 유지를 돕고 있다.
기술의 발전 뒤에는 늘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숨어있다. 조준구 전무 역시 정보통신기술자로서 항상 신기술 공부에 힘쓰며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승객이 한 번쯤 안전한 철도를 위해 땀 흘린 이들의 수고를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승객이
한 번쯤 안전한 철도를 위해 땀 흘린 이들의 수고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