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지나던 철로 위를 유유히 달리는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으며 온몸으로 마주하는 산과 강과 논밭의 풍경이 정겹다.

writer. 전하영 photographer. 이도영

춘천의 청년 작가를 회상하다

김유정역과 유정이야기숲

수도권과 연결되는 청록색 노선, 경춘선 전철을 타고 춘천 김유정역에 내리면 먼저 궁서체로 적힌 낯선 이정표들이 고즈넉한 산촌 문학마을로의 진입을 안내한다. 춘천 출신의 근대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딴 역이다. 2010년에 새롭게 지어진 지금의 김유정역은 근사한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역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작부터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멋진 포토존이다. 역을 등지고 왼쪽으로는 옛 김유정역(폐역)으로 향하는 유정이야기숲 산책로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강촌레일파크 입구가 보인다.

먼저 유정이야기숲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지금은 쓰임을 다한 낡은 철길에 ‘노란동백꽃길’이란 예쁜 이름이 붙어 있다. 봄이면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노란 동백꽃이 피어나는 길이다. 걷다 보면 ‘나신남’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역장 캐릭터 조형물이 보인다. 지금은 폐역이 된 구 김유정역을 지키는 역장이다. 구 김유정역은 1939년 신남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추억을 실어 나르다 2004년 김유정역으로 개명했다. 하지만 경춘선 복선전철화와 함께 폐역되고 김유정역은 지금의 새 역사로 이전했다. 구 역사는 현재 준철도기념물로 지정돼있다. 내부는 옛 시골 간이역의 대합실과 역무실 모습을 재현해 자그마한 추억 박물관처럼 운영하고 있다. 구 김유정역의 건너편에는 옛 경춘선을 달리던 낡은 무궁화호 객차 2량이 서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객차 좌석 등을 활용한 아늑한 북카페로 꾸며져 있어 잠시 앉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유정이야기숲을 돌아보며 소설가 김유정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면 근처 김유정문학관과 실레이야기길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 지금의 김유정역 바로 앞, 굵직한 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실레마을이 바로 김유정의 고향이다.
그의 수필 속 표현에 의하면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실레라 불렸다 한다. <봄봄>, <동백꽃>, <만무방> 등 그의 다양한 소설은 모두 이 작은 마을 구석구석을 무대로 했다.

절경 속을 가로지르다

강촌레일파크 김유정 레일바이크

김유정역 왼편으로 서정적인 레트로풍의 볼거리가 가득했다면, 오른편으로는 좀 더 신나고 역동적인 즐길 거리가 준비돼있다. 입구의 아기자기한 간판에서부터 기대감을 모으는 강촌레일파크다. 경춘선 단선 열차가 멈춘 선로 위로 빨간 지붕의 앙증맞은 레일바이크들이 줄지어 달리는 곳이다. 열차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던 아름다운 풍경을 레일바이크를 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천천히 즐길 수 있다.
레일파크 광장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김유정 문학마을 테마와 연결되는 대형 책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거대한 북월(Book-wall)의 아래쪽은 북스테이션카페다. 이곳에서 잠시 책을 보며 바이크 탑승 시간을 기다릴 수 있고, 바이크에 들고 탈 간단한 음료를 주문할 수도 있다. 카페 맞은편, 공중에 형형색색의 우산을 예쁘게 매단 곳이 바로 탑승장이다.
강촌레일파크는 김유정 레일바이크와 경강 레일바이크, 가평 레일바이크까지 총 3개의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김유정 레일바이크는 가장 길고 인기 있는 코스다. 2인승 또는 4인승의 레일바이크를 타고 실레마을부터 6km를 달린 후 낭구마을 중간휴게소에서 낭만열차로 갈아타 강촌역까지 2.5km를 더 달리는 여정이다. 왕복 총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레일바이크 코스는 대부분 얕은 내리막길이라 힘들게 페달을 구르지 않아도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느린 속도로 여유롭게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실레마을을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강줄기와 산자락이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 위를 시원하게 내달린다. 지상 구간을 지나는 열차처럼 선로와 차도가 교차하는 건널목을 지나기도 하고, 넓은 들과 정겨운 논밭 사이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중간중간 바람개비터널, 버블터널 등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4개의 터널이 볼거리를 더한다. 다채로운 조명과 음악으로 채운 터널 안은 바깥의 목가적인 풍경과 선명한 대조를 이뤄 더욱 신비롭다. 4개의 터널 중 마지막 터널은 원래 안경을 착용하고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VR터널로 운영됐으나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VR체험은 잠시 멈춘 상태다.
계절이 선사한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고루 눈에 담으며 40분 정도 달리면 낭구마을에 도착한다.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린 뒤 3량으로 된 붉은색의 낭만열차에 올라탄다. 첫 번째 칸은 창문과 지붕 없이 개방되어 있어 탁 트인 경치를 한눈에 담기 좋다. 두 번째 칸은 지붕은 있지만 창문이 없어 맑은 강바람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 따뜻하고 아늑하게 이동하기 원한다면 창문이 있는 실내칸인 세 번째 칸에 탑승하면 된다. 낭만열차에서 하차한 후에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다시 레일파크로 돌아올 수 있다.
김유정 레일바이크 코스 못지않게 경강 레일바이크와 가평 레일바이크 코스도 각각의 매력을 지녔다.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왔다면 ‘펫 바이크’로 운행되는 경강 레일바이크를 이용할 수 있다. 반려견을 태우고 경강역에서 출발해 벚꽃나무터널과 느티나무터널, 북한강 철교 위를 지나 경강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왕복 시간은 총 1시간 정도 소요된다. 300평 규모의 반려견 운동장과 휴게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가평 레일바이크는 가평역을 출발해 느티나무터널을 통과하고 경강역에서 회차해 가평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마찬가지로 30m 높이의 철교를 지나며 아찔한 북한강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레일바이크는 따뜻한 봄이나 선선한 가을에 즐기기 가장 좋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도 나름의 낭만을 선사한다. 하얗게 눈 덮인 산과 들 사이를 네 바퀴 자전거로 천천히 달려보는 이색 경험을 원한다면 올겨울, 두툼한 옷으로 철저히 무장한 후 강촌레일파크를 찾아보자.
  • 김유정 레일바이크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383
    033-245-1000

    경강 레일바이크
    강원도 춘천시 서백길 57
    033-245-1002

    가평 레일바이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장터길 14
    031-582-7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