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SPECIAL

PLACE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120도 바꾼 박물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템스강변의 용도 폐기된 발전소가 더 없이 ‘모던’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실험적이며 지구친화적인 공간, 테이트 모던 이야기.

writer. 임지영

템스강변의 용도 폐기된 발전소가 더 없이 ‘모던’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실험적이며 지구친화적인 공간, 테이트 모던 이야기.

writer. 임지영

미술관으로 변신한 기름탱크

런던 사우스 뱅크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가끔은 런던 구경이 아니라 런던에 놀러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테이트 모던’이라면 그 정도 인기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테이트 모던은 템스강변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런던아이(London Eye), 빅벤, 세인트폴 대성당, 밀레니엄교와는 사뭇 결이 다른 랜드마크다. 방치된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이곳은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 5월 12일 개관했다.
테이트 모던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영국 정부와 테이트 재단은 템스강변에 위치해 있으면서 건물 면적이 넓고 지하철역에서도 가까운 이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을 지을 장소로 낙점했다.
그리고 국제 건축 공모전을 통해 스위스의 건축회사 헤르초크 앤 드 뫼롱을 프로젝트 참여자로 선정했다. 리모델링 공사에는 총 8년이 소요됐다. 기존의 외관은 최대한 손대지 않고 내부는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바꾸는 방식으로 개조됐다.
미술관은 2016년 10층짜리 신관을 개관하며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시도했다. 미술관에는 건물 한가운데 원래 발전소용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동일한 높이 99미터의 굴뚝이 그대로 솟아 있다. 반투명 패널을 사용하여 밤이면 등대처럼 빛을 내도록 개조한 이 굴뚝은 오늘날 테이트 모던의 상징이 되었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설치작이 된 테이트 모던은 한 해 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런던의 새로운 관광명소,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 되었다.

콘텐츠와 재미, 체험까지
모두 잡은 공간 레이아웃

요즘의 방문객들은 콘텐츠뿐 아니라 공간의 소비를 원한다. 테이트 모던이 바로 그런 미술관이다. 웅장한 외관의 본관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1층이 펼쳐진다. 박물관의 아이콘인 터빈 홀을 놓친다면 절대 테이트 모던을 봤다고 할 수 없다.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몰고 다닌 3.400㎡ 규모의 넓은 터빈실은 터빈을 제거하고 철제 빔과 천장크레인은 그대로 살렸다. 테이트 모던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뱅크사이드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 2층은 카페와 세미나룸, 강당, 기념품 매장, 전시실 등이 있다. 3층과 5층은 상설전시 공간이다. 샌드위치처럼 낀 중간의 4층에서는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게 구성되어 있다. 완만한 나선형 계단, 놀이터와 작은 의자들, 요소요소에 ‘히든카드’처럼 숨어 있는 가족과 아이들을 배려한 장치들도 돋보인다. 6층에는 테이트 모던 멤버들의 전유 공간인 ‘멤버스 룸’이, 한 층을 더 올라가면 7층에는 레스토랑과 바, 이스트룸 등이 있다. 단절되기 쉬운 요소들이 계단, 통로들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시공간 외에 서점과 신관 10층의 테라스를 꼭 들러보자. 테이트 모던의 서점은 희귀한 아트북과 선물할 만한 아이템이 많기로 유명하다. 런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신관 10층은 일명 ‘뷰(view) 맛집’이다. 기름탱크였던 곳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아트를 감상한 후 숨을 고르고 10층 전망대로 올라가면 엽서에서나 보던 런던 파노라마가 마법처럼 펼쳐진다. 눈으로만 담아야지 했다가 가슴으로 담아간다.

20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전시 파노라마

테이트 모던의 컬렉션은 대부분 20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다양한 미술품들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4가지 테마, 즉 풍경, 정물, 누드, 역사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미술품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형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접근방식과는 사뭇 다른 테마로 보는 전시방식으로 인해, 테이트 모던은 현대미술의 중심을 뉴욕에서 런던으로 옮겨왔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백남준을 포함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 중이다. 박물관 자체는 무료 입장이다. 예약도 필요 없다. 운이 따라준다면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지만, 전시를 관람하려면 사전 예약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
테이트 모던은 1900년대 초반의 모더니즘에서 흥미를 자아내는 현대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예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원시와 문명이 걸어온 길을 예술적으로 복기하는 에밀리 카메 킁와레예, 미국의 개념주의 미술가이자 환경미술가인 제니 홀처 같은 실험적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공간은 뭐니뭐니 해도 ‘야오이 쿠사마: 인피니티 미러 룸’이다. 육각형 유리공간 안에서 샹들리에와 미러로 된 벽,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이 연출하는 공간의 무한 변신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
별관들도 둘러볼 가치는 충분하다. 나탈리 벨(Natalie Bell) 건물에서는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직조해 내는 과정을, 블라바트닉(Blavatnik) 건물에서는 공연, 설치미술, 영상 작품들에 헌사된 지하 탱크 공간을 마음껏 유영할 수 있다. 공간 탐험을 마치고 나면 왜 테이트 모던이 창조도시라고 불리는 런던에서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라 불리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