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맞춘다는 것, 보폭을 맞춘다는 것, 그리고 어깨를 겯는다는 것.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굳은 결의와 부드러운 유연함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함께 가겠다는 비상임이사 2인을 만났다.
스크린도어 설치, 가장 의미 있던 일
공개 채용으로 입사한 30년 경력의 ‘철도 전문가’ 노복균 이사는 철도 업계 내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국노총도시철도연맹 중앙위원과 서울도시철도공사 지원관리처 차장, 서울도시철도공사 동묘사업소 역장, 김포골드라인 관리역장을 지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1급까지 오르기까지의 여정에는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이 참 많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 목도한 사건 사고의 잔상은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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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응암역 부역장으로 있던 시절, 달려오는 전동차에 몸을 던지려 한 행인을 구해준 일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셨는데, 그 가족들로부터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당시는 지금보다 지하철 안전사고가 많을 때였습니다. 삶의 터전인 지하철역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죠.”
스크린도어가 수도권 148개 역사에 설치되던 날 누구보다 기뻐한 건 그였다. 이제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스크린도어는 노조 차원에서 강력하게 도입을 주장했던 바였어요. 해마다 일어나는 수십 건의 자살과 수백 건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였으니까요. 스크린도어 설치 후 기관사들은 공황장애가 없어지고 역무원들은 자살로 인한 심리적 압박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었어요. ‘마침내’ 말이죠.”
차이를 좁히고 결론에 이르는 ‘연결의 힘’
노복균 이사는 2021년부터 공단의 비상임이사로 활동해 오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매월 정기 이사회 및 비상임이사 설명회에 참석하고 이사회 안건을 사전에 검토하며, ESG, 건설, 시설 등에 관한 이사회 내 소위원회 참석 및 경영전략 자문 역할을 한다.
7명의 비상임이사, 이사장, 부이사장을 포함한 13명의 이사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조율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과정은 언제나 어렵고, 그래서 더 소통 과정이 의미 있다. 지난해 말, 비상임이사들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중요한 안건의 의사결정 기한을 지키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신설 철도 개통을 위한 예산을 통과시켜 계획 실현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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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상대가 더 잘 보일 거예요.
더불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각자의 생각이 달라 쉽사리 하나의 결론에 이르지 못할 때는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반대로 만장일치로 안건이 통과될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연결’ 의 힘이죠.”
노 이사는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연결’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으로 ‘양보’를 제시한다. “물러나는 것이 역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상대가 더 잘 보일 거예요. 더불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가정의 달인 5월,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 중이다. 부부, 그리고 결혼한 자녀 부부까지 총 여섯 가족이 ‘한려수도’ 통영과 남해로 떠나는 대장정이다. 남해대교를 건너고 굴국밥을 먹으며 이제껏 갖지 못한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서로를 다시 보게 해주고,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주거든요.”
공단 제1호, 최초의 ‘노동이사’가 되다
문웅현 이사는 국가철도공단의 ‘제1호 노동이사’다. 생소한 타이틀에 다소 생경한 역할, 말하자면 ‘조율사’다.
“노동이사는 노동계에서 계속해서 요구했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내부 구성원인 우리 노동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함께 경영해야 한다는 요구인 거죠. 상층에 치우쳐져 있는 의사결정 구조에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서 우리 조직이 보다 양질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문 이사는 대학에서 토목환경공학을 전공했다. 공단의 건설본부와 노동조합 위원장을 거쳐 3월 공단 최초의 노동이사로 임명됐다.
“사실 공단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화장을 곱게 한 건강한 얼굴로 보이지만, 안으로는 업무 콜레스테롤이 잔뜩 끼어 있어 언제 동맥경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겉과 속이 모두 건강한 공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문 이사는 과거 노동조합 위원장 시절 노동조합의 요구로 추진하게 된 양양 연수원 건립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공단이 ‘국가철도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는 데도 기여했다. 취임 첫해였던 2019년 봄에는 공단 출범 이후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했던 전 직원 체육대회를 마련해 조직 화합에 기여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우리가 전국 조직이거든요. 부산에서, 호남에서 올라와야 하고 다시 내려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다 같이 모이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노사가 같이 고민해서 방법을 찾고 추진했죠. 회사가 준비를 너무 잘해줘서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전 직원이 모여서 찍은 사진은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하느라 고생한 직원들에게 지금도 너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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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목표가 같다고 관점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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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사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되 다른 관점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소통맨’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일방 아닌 ‘쌍방’이 통하는 소통 추구할 것
녹록지 않은 직장 생활, 문 이사는 ‘워라밸’을 넘어 업무와 일상의 분리와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블’을 강조한다. 삶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스스로 미래를 구축해 나가려는 노력을 곁들인다면 직장생활이 조금은 의미 있고 견딜 만해질 거라는 생각이다.
‘입술의 30초가 마음의 30년이 된다’는 말이 있다. 공단의 발전을 위해 ‘소통을 잘하는’ 비상임이사가 되겠다는 것, 문 이사의 다짐이다. 직원들의 뜻과 결이 같은 의사 결정에는 적극 동참하고, 직원들의 의견과 다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쌍방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말이다.
“세대 갈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공단 내에도 세대 갈등이 존재할 거고요.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같다고 관점까지 같은 것은 아니죠.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되, 다른 관점을 존중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