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간 열차가 달리던 포항의 기찻길이 시민친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시원한 바람 속 뜨거운 불의 기운을 뿜어내는 포항철길숲을 만났다.
효자역에서 출발하는
도심 속 그린웨이
포항시 남구 대잠동에는 두 개의 선, 두 개의 온도가 공존하는 특별한 숲이 있다. 폐철도를 품은 도심속 푸른 산책로인 ‘포항철길숲’, 이른바 숲의 ‘포레스트’와 철길의 ‘레일’을 딴 ‘포레일’이다. 이름 그대로 철길과 자연이 만나 탄생한 철길숲은 생기 넘치는 이 계절의 도시를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시민 공원이다. 지난 2015년 4월 KTX 포항직결선 개통으로 동해남부선이 폐선되면서 조성된 공원으로, 남구 효자역에서부터 출발해 효곡동, 대이동, 양학동, 용흥동, 중앙동, 우창동 6개 동을 거치는 도심 속 ‘그린웨이’다.
KTX 포항역 이전으로,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기차가 달렸던 효자역과 옛 포항역 사이 4.3km 구간은 폐철도가 되었다. 그냥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긴 구간이었고, 포항시에서 2017년 포항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폐선이 된 철도 부지에 숲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활기 넘치는 산책로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픔을 딛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자연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생경한 조합인 ‘철길 숲’은 철강도시에서 벗어나 그린생태도시로 나아가려는 포항시의 선언적 의미를 지닌다. 낡은 철강도시 이미지를 벗고, 친환경 건물과 녹지, 맑은 물이 흐르는 생태도시로 탈바꿈하려 상징성도 띠고 있다. 자연과 두루두루, 그리고 오래오래 공존하고 상생하려는 의지와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꺼지지 않는 심장이 된
‘불의 정원’
산책로 초입에는 열차 한 량이 덩그러니 서 있다. 철길 숲이 지나온 과거를 상징하는 ‘시그니처’다. 지금의 열차와 사뭇 다른 모습, 그리고 ‘포항-문산’ 이라는 구간은 향수를 자극한다.
철길 숲은 자전거 도로, 실개천, 인공폭포와 조형물로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에 왕벚나무, 노거수,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4,800여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다. 숲은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면서 여름철 뜨거워진 도심을 식혀주고, 소음을 줄여주고, 상쾌한 공기를 제공해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 산책로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낭만이 있고, 분수와 인공폭포도 설치돼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걷다 보면 증기 열차도 보이고 수선화 연못과 오크 숲도 펼쳐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멋진 조형물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부르는 분수도 있다.
동화적 감성을 일깨우는 요소들 사이로 자리하고 있는 폐철로 만든 독특한 조형물과 철판은 새삼 포항이 제철의 도시임을 일깨워 준다.
푸른 정원 한 가운데서는 붉은 불의 기운이 용솟음친다.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 눈길을 끄는 건 단연 ‘불의 정원’이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2017년 3월 8일 오후 지하 200m 굴착 중에 천연가스가 분출되었고 불꽃이 옮겨붙어 불길이 치솟았다. 수일 내로 꺼질 것으로 생각해 자연 소화를 기다렸지만, 불은 시간이 흘러도 꺼지지 않았고, 포항시는 아예 주변에 보호 장치를 조성하고 ‘불의 정원’으로 테마를 변경했다.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길은 공원의 상징이자 포항의 심장이 되었다. 앞으로 10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불길은 철길 숲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구 환경에 대한 고찰 지점과 함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남구 효자동에서부터 시작된 철길 숲을 따라 북쪽으로 서서히 걸으면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언제나 편안한 도심 속
최고의 힐링 장소
철길 숲은 도심 속 최고의 힐링 장소다. 자연과 어우러진 편의 시설, 운동기구, 분수대 등은 인근 주민들에게 도심 속 쉼터를 제공해 준다. 남구 효자동에서부터 시작된 철길 숲을 따라 북쪽으로 서서히 걸으면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잘 꾸며진 공원 사이로 예쁜 꽃과 조형이 어우러진 특이한 나무들도 볼 수 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도심숲’ 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미래지향적인 도시재생과 녹색생태도시조성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산책로에는 철길을 그대로 보존해 둔 구간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선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을 사이에 두고 재미있는 대비가 펼쳐진다. 산 아래의 오래된 집들과 반대편의 차들이 속도감 있게 달리는 번화한 차도는 이질적인 공간으로 상충하는 대신, 포항의 과거와 현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4차선 도로가 지나는 곳은 지하도를 내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나루 여행길’이란 주제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변천사와 역사를 사진과 함께 단장해 두었다.
도심 속 그린공원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접근성이 뛰어나다. 누구나 한 번쯤 걷고 나면 또다시 찾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과 휴일 모두 많은 시민들이 산책과 라이딩을 즐기러 찾아온다. 별도의 주차 공간이 없어 멀리 주차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볼거리와 휴식 공간이 충분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걸어서 왕복으로 약 1시간쯤 걸리는 산책로는 데이트 코스로도 추천한다. 아직 걸어보지 않았다면 여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철길 숲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해가 질 무렵과 새벽에도 자연과 더불어 힐링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 생기로 가득한 수목과 차분한 공기에 몸을 맡기고 나면 어느새 치유와 위무를 받은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연이 하는 일에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