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위해 누군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누군가는 신제품을 개발한다. ‘페셰(PESCE)’의 이우열 대표는 바다로 가 쓰레기를 줍는다. 작은 불편을 감내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공존을 위한 가장 값진 실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writer. 임지영 photographer. 이도영 sources. 페셰

공유와 공존을 위해 만든 브랜드 ‘페셰’

우연히 본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 파장은 길었고, 그 진폭은 컸다. “2019년 다큐멘터리 <인류세>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관련 서적과 다큐를 찾아보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텀블러를 쓰거나, 정수 필터 물통을 사용하거나,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처럼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에서 나아가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회사를 꾸렸습니다.”
회사 생활을 할 당시 파타고니아, 프라이탁 같은 브랜드 설립을 꿈꿔온 이우열 대표는 2020년 7월 ‘페셰’를 설립했다. ‘페셰(PESCE)’는 어류,
*물살이를 뜻하는 ‘FISH’의 이탈리아 말이다. 어감이 좋고 의미가 좋아 브랜드명으로 정했다. “로고는 향유고래입니다. 바다에서 크고 작은 물살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은 인간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그의 아내는 몇 달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회사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그게 올해로 3년째다. 페셰는 ‘슬리핑 자이언트(SLEEPING GIANT)’라 이름 붙인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좋은 소재로 내구성 있는 제품을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며, 적게 만들더라도 저렴하지 않은 비용에 판매하면서 업사이클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실제 버려지는 것들로 만든 제품이 아니거나 버려지는 부분은 극히 일부인데 업사이클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사이클이 대접받으려면 진정성이 있고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페셰’를 다른 기업의 친환경적 변화를 돕는 ‘행동주의 브랜드’로 정의한다. ‘TIDE 프로젝트’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TIDE 프로젝트는 ‘기업의 환경을 위한 행동과 선택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하도록 돕는 B2B 시각 콘텐츠 사업’입니다. 환경을 위한 선택을 하거나 그럴 의지가 있는 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페셰가 행동주의 기업으로서 이런 시각 콘텐츠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한 이유는 환경 오염, 기후 위기 문제는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생각에 머무는 게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에서다.
*물살이 : ‘물’과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의 ‘고기’로 이루어진 ‘물고기’ 대신 ‘물에 사는 존재’인 ‘물살이’로 표현

Ocean Trash,
  • No More!

Ocean Trash, No More!

페셰의 근간에는 비치클린이 있다. 이들이 펼쳐온 ‘Ocean Trash, No More’ 캠페인은 해변을 청소하고, 바다 서핑을 하는 활동이다. 시민들에게 해변의 쓰레기를 마주하게 하고, 그 바다에 직접 들어가 파도를 즐기는 경험을 만들어 줌으로써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페셰는 제품을 만들기 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익 활동을 하지 않고, 이 활동을 이어왔다. 캠페인은 월 2회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캠페인을 통해 페셰가 얻는 수익은 단 일 원도 없다.
“KTX를 직접 예매하거나, 교통비를 걷어 버스 대절비로 사용하거나, 서핑 강습 비용은 페셰를 거치지 않고 서핑숍으로 입금하게 합니다. 티셔츠 또한 상업적으로 판매하지 않습니다. 캠페인 참여자에게만 판매하고, 바다에서 직접 드립니다.”
‘Ocean Trash, No More’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페셰 웹사이트 상단 파란 줄 ‘캠페인 참가 신청’을 누르면 나오는 폼을 작성하면 된다. 캠페인 일주일 전 크루가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고, 공지 사항을 안내한다. 캠페인은 단순히 줍는 행위에 국한하지 않는다. 무엇을 줍고, 어디에 주워 담을지도 고민한다. 재사용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만들지 않고자 버려지는 마대를 재사용해 쓰레기를 줍는다. 플라스틱은 바다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플라스틱의 마지막 종착지는 다름 아닌 우리 몸속이라는 생각에, 미세 플라스틱 거름망을 활용해 해변의 스티로폼 알갱이들을 줍고 있다.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 그것들을 다시 해변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일은 대단한 각오나 결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동은 나 자신을 포함한 생명을 살리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페셰의 목표는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병들어 가는 바다가 건강을 되찾고, 해양 생태계가 회복되며, 더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떠밀려 오지 않을 때 이 활동을 그만둔다는 계획이다.

  •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 그것들을 다시 해변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일은 대단한 각오나 결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동은 나 자신을 포함한 생명을 살리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작은 파도가 큰 파도를 만든다는 믿음

페셰의 홈페이지에는 ‘Big Wave starts with Small Waves’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작은 파도가 큰 파도를 만든다는 의미다. 슬로건 아래에는 페셰와 함께 연대하거나, 협업하고 있는 단체, 업체, 기관의 로고가 ‘OUR WAVES’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캠페인을 통해 쓰레기를 줍는 순간이 얼마나 멋있을 수 있는지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매번 참여자들에게 사진을 찍어 제공합니다. 멋지고 생동감 있는 비치클린(Beach Clean) 장면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었으면 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쓰레기 줍는 문화를 만들고, 함부로 버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진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의식이 변한 우리 스스로의 행동임을 믿는다는 이우열 대표. 그는 앞으로도 매월 비치클린 활동을 하면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고, 기업 콘텐츠 제작을 이어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 긴 호흡으로 환경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계획이다.
“비치클린 캠페인 참여자들에게 ‘자연을 위한 활동을 하러 가는 길인 만큼, 오늘만큼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서 조금만 하루를 불편하게 보내 보자’고 당부합니다. 도로보다 철도를 선택하는 일, 텀블러를 챙겨 카페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는 일, 식당에 앉으면 종이컵을 거절하고 다회용컵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 ‘조금만 불편하면 되는 일’들이지요. 이 작은 것들이 모이면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또한 어딘가로 떠나는 분들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 불편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