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울시간역으로 출퇴근을 했다. 사나흘에 한 번 아침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타나는데, 그런 날엔 반드시 역 방향으로 사라지듯 퇴근했다. 회사가 역 근처라 접근성은 좋았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출퇴근하는 회사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 열차표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릴 텐데.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기에, 나는 큰 배낭을 메고 퇴근하는 그를 미행하기로 했다.
멀리서 바라본 그는 너무 초췌하고 피곤해 보였다. 입사 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3년은 더 늙어 보였다. 딱하고 걱정되었다. 물론 나 또한 야근 때문에 머리와 화장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친하지도 않은데 동질감이 들었다. 나는 그와 같이 입사했지만 업무 관련 얘기밖에 나눈 적 없었다. 먼저라도 말 걸어보고 싶었지만 소심한 내 성격에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밤 11시에 집에도 안 가고 취객과 관광객을 뚫고 친하지도 않은 직장 동료를 미행하는 직장인이라니. 내 처지가 처량해 눈물이 찔끔 났다.
그가 1년 전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걸 보았다. 모바일로 티켓을 구매하며 재빨리 열차에 올라탔다. 1년 시간 여행을 하는 데는 대략 하루 걸릴 것이다. 긴급 연차를 쓰려고 팀장님에게 말할 핑곗거리를 생각해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연차를 쓸 필요가 없잖아? 과거에서 아무리 긴 시간을 보낸다 해도 떠난 바로 그날로 복귀하면 그만이니까. 다만 나만 상대적으로 늙어 올 뿐.
그렇다면 그는 시간역에서 출퇴근할 때마다 왕복 이틀을 더 늙어 온다는 말일까? 그가 입사 전보다 유독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이해가 되었다.
열차는 최고 시속 3,000킬로미터로, 대구까지 닿는 큰 원을 몇십 바퀴나 빙빙 돈다. 그런데 다시 내려도 서울이다. 열차에서 하루 동안 푸지게 자느라 부스스한 채로 1년 전의 서울에 내렸다. 그를 놓칠까 봐 서둘러 쫓아갔다. 그가 다시 완행으로 갈아타려 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열차가 가는 날짜를 확인했다.
3개월 전 행 열차였다. 망했다. 완전 한겨울이잖아? 옷이고 뭐고 살 시간도 없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이었고 난 서둘러 열차에 올라탔다.
결국 난 한겨울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서 얇디얇은 봄옷 한 장만 걸치고 벌벌 떠는 꼴이 되어 버렸다. 머리와 눈화장은 하루 반나절치 여독으로 못 봐줄 정도로 떡 져 있었고, 다리는 퉁퉁 부어서 하차할 때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를 놓치고 말았고, 이리저리 두리번대며 허둥지둥하다 문득 그가 내 뒤쪽에 서 있는 걸 돌아보고 깜짝 놀라 버렸다.
“주임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의 능청스러운 말투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은 마치 내가 올지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나는 어버버하다 모르는 척할 순간도 놓쳐 버렸다(1년 3개월 전의 나는 그를 모르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미행 여정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킥킥대며 그가 입고 있던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나에게 건네주고, 메고 온 커다란 배낭에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다.
우리는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서울 외곽 지역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 동네를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화제가 되었던 아파트 재개발 지역이었다.
“저 여기 알아요. 우리 회사 차장님도 여기 청약했다가 떨어져서 무척 아쉬워하시던데.”
그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여기 살아요.”
오래된 주공아파트였다. 콘크리트는 낡아서 금이 쩍쩍 가 있고, 놀이터에 있던 기린 미끄럼틀은 페인트가 벗겨져 시멘트색이 다 드러났다. 낡은 상가의 촌스러운 캥거루 마크와 난잡하게 걸려 있는 “관리처분인가”, “이주비 지원 신청” 같은 현수막들. 가로수들을 쳐낸 듯한 나뭇가지와 버리고 간 목제 가구로 이루어진 폐기물 산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대리님, 근데 왜 과거까지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저 미래에서 이 집 팔았거든요. 그 돈으로 시간열차 정기권 샀어요.”
“네? 왜요? 아파트 엄청 비싸잖아요?”
“저는 옛날부터 여기서 살았어요. 그래서 새 아파트는 좀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익숙한 길도 사라지고, 어릴 적 올라타고 놀던 단지 이름 새긴 바위도 어디에다 갖다버렸을지…. 전 그냥, 이런 아파트에 추억이 있어요. 주임님도 그런 기억 있지 않나요?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 가보면 왠지 눈물 나고, 없어지는 게 아쉽고….”
나는 동네를 다시 슬쩍 둘러보았다.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였지만, 굳이 찾아보면 정겨워 보이는 면도 있었다. 겨울이라 이파리는 없지만 가지만이라도 빽빽한 나무들, 그에 비해 낮고 야트막한 5층 건물들. 여름이 상상되었다. 나무는 낮은 건물이 보이지조차 않을 정도로 울창해질 것이다.
어느덧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마중 나왔다. 쌍둥이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려서 대학생처럼 보였다. 남동생이라도 이렇게 똑같이 생길 수는 없다. 나는 당황하며 나와 함께 온 대리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해 주었다. 어릴 적의 자신이고 처음부터 이 아파트에 살던 집주인이라고.
나는 두 명의 대리님과 함께 기린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로 갔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제각기 폭죽, 케이크, 리본, 꽃다발 등이 들려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속속 모였다.
그런데 인파 속에서 대리님이 두 명이나 더 나타났다.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들. 똑같이 생긴 네 명의 대리님이라니, 이젠 황당하다 못해 웃겼다. 나와 같이 온 대리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집도 좁고 출퇴근 시간도 오래 걸려서, 사흘에 한 번 돌아가면서 그 집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날이길래 이렇게 모인 거예요?”
나와 함께 온 대리님이 답했다.
“내일이면 이 미끄럼틀을 시작으로 놀이터 시설들을 우선 철거할 거예요. 단지에 하나뿐인 기린 미끄럼틀이 없어진다니 아쉬운 마음에 모여 보자, 한 거죠.”
나는 미끄럼틀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비록 회색빛 콘크리트 재질이었지만 귀여운 생김새였다. 새끼인 것처럼 보이는 기린이 엄마의 목에 이마를 대고 마주 서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꼬리를 통해 올라갔다가 새끼의 등을 타고 꼬리까지 미끄러져 내려갔을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가 미끄럼틀을 오르내렸을까?
“영원히 이 시대에 머무를 수는 없어요. 나이가 들면 누군가는 물러나야 하니까.”
가장 늙어 보이는 대리님이 쓸쓸히 말했다. 그 또한 이 아파트의 마지막 날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어느덧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가 폭죽을 나눠주어 우리 모두 불꽃을 손에 들었다. 또 누군가가 기린의 목에 리본을 둘렀다. 아이들은 손수 쓴 편지를 미끄럼틀 위에 놓았다. 우리는 이 낡고 보잘것없는 아파트 단지의 마지막을 기렸다.
김필산 작가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하드SF 〈책이 된 남자〉로 중단편 부문 가작을 수상했다. 고덕주공과 둔촌주공에서 자란 ‘아파트 키드’로, 기린 미끄럼틀의 일화는 둔촌주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본작은 시간여행 열차 옴니버스 중 하나로, 다른 작품인 〈두 서울 전쟁〉은 소설 플랫폼 브릿지(britg.kr)에 공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