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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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향해 쌓아 올린 건축

세계 친환경 건축물

건축물에는 시대의 사상과 문학이 깃들어 있다. 기후위기가 이슈로 떠오른 지금,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 쌓아 올린 건축물 중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세 개의 친환경 건축물을 소개한다.

writer. 박신영

건축물에는 시대의 사상과 문학이 깃들어 있다. 기후위기가 이슈로 떠오른 지금,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 쌓아 올린 건축물 중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세 개의 친환경 건축물을 소개한다.

writer. 박신영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

플러스 에너지 빌딩 ‘선 십’

독일 남부 소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이곳은 태양열과 풍력 등 대체 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절감 정책으로 도시 전체가 에너지 자립에 성공한 생태 도시다.
1940년대 세계 2차대전 당시 도시의 80%가 무너진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힘을 모아 도시를 재건했는데, 이들이 중점을 둔 것은 친환경이었다. 이후 프라이부르크는 1979년 세계 최초로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1980년대에는 독일 최초로 도시에 환경국을 설립, 1990년대는 환경부시장직을 신설하는 등 친환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보봉(Vauban) 주거 지역의 플러스 에너지 빌딩 ‘선 십(Sun Ship)’이다. 선 십은 약 200명이 상주하는 복합 건물로 슈퍼마켓, 은행, 오피스, 펜트하우스 등 다양한 상점과 공동주택으로 구성됐다. 모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선 십 빌딩에 숨겨진 친환경 건축 공법은 무엇일까?
바로, 패시브 하우스에 지붕 모양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한 플러스 에너지 빌딩이라는 점이다. 패시브 하우스는 199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친환경 건축 공법으로 열의 유출을 막아 냉난방을 조절하는 주택을 의미한다.
서울에너지드림센터, 환경산업기술원 등 국내에서도 패시브 하우스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건축 공법이다. 선 십은 패시브 하우스에서 멈추지 않고 지붕 모양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에너지도 생산한다. 즉, 패시브 하우스로 에너지 소비는 줄이고, 태양광 설비로 필요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는 게 플러스 에너지 빌딩의 기본 개념이다. 그래서 선 십의 주민들은 쓰고 남은 전기를 팔아 연평균 4천 유로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180도 회전하는 태양 전지판이 설치된 플러스 에너지 주택 ‘헬리오트롭’, 건물 전체 외벽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에너지 제로 건물 ‘프라이부르크 신시청사’, 지붕형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솔라 축구장 ‘SC 프라이부르크 경기장’ 등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다양한 친환경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살아 있는 지붕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공원에는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이 있다. 어린이 TV 시리즈 <꼬꼬마 텔레토비>의 언덕을 연상시키면서도 판타지 만화에서 등장할 법한 몽환적인 모습의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California Academy of Scienc es)’이다.
이곳은 1853년 미국 서부의 첫 과학 연구 기관으로 운영되다가 1989년 로마 프리에타 지진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후 2008년 4,600만 개 이상의 표본을 보유한 최대 규모의 자연사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사고 당시 지진 피해를 복구하고 내진 설계된 건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샌프란시스코 환경부는 하이테크 건축의 선두 주자인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렌조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의 설계를 맡고 고민에 빠졌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역시 친환경 건축물로 설계하고자 했지만, 지진 당시 무너진 일부 건축물의 철거가 불가피해 그 의미가 퇴색될 위기였기 때문이다. 철거로 나온 폐건축 자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에 빠진 렌조. 문득 폐건축 자재를 새로운 건축물의 재료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친환경을 향한 렌조의 열정은 ‘살아 있는 지붕(The Living Roof)’으로 이어졌다. 초록을 뽐내는 식물들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지붕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7개의 언덕에서 영감을 받았다. 언덕 여러 개를 모아 둔 듯한 모양의 지붕에는 170만 그루의 캘리포니아 자생 식물이 자라나는데, 지붕을 덮은 식물은 박물관의 연구 재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건축 내부의 열을 낮춰주는 자연 냉방 역할까지 겸한다.
또한 렌조는 볼록 솟은 지붕 언덕에 개폐가 가능한 채광창을 설치했다. 이는 외부 환경에 따라 건물 내부의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에너지 소비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채광 효과도 가져다준다. 이외에도 렌조는 살아 있는 지붕의 토사로부터 저장된 빗물을 화장실 및 식수로 재이용하거나, 지붕 처마에 설치한 태양 전지판으로부터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가 사용하는 전력 일정 부분을 생산하는 등 다양한 친환경 공법을 실현했다.
환경을 사랑하는 과학자들을 위해 친환경 건축가가 설계한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이곳의 방문객들은 박물관을 둘러보며 친환경을 실현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친환경 예술가가 바꾼 환경오염 시설

빈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기후위기가 도래하기 전부터 환경을 위해 활동하는 예술가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이다.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던 훈데르트바서는 어린 시절부터 친환경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직선 대신 나선형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는 신조를 의미한다. 그만큼 훈데르트바서는 환경을 사랑하는 종합예술가다.
1987년 오스트리아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Müllverbrennungsanlage Spittelau)에 대형 화재가 터지며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빈의 시장이던 헬무트 질크(Helmut Zilk)가 소각장의 외관 개조 작업을 요청했던 것.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반감이 있던 훈데르트바서는 질크 시장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지만, 어쨌든 빈 시내에 쓰레기 소각장은 필요하다는 점과 환경오염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대대적인 외관 개조 작업에 돌입한다.
먼저 그는 재활용품을 건축 재료로 활용해 소각장의 외관을 개조함과 동시에 자신이 가진 예술적 철학을 활용해 외벽을 꾸몄다. 일반적으로 쓰레기 소각장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퀴퀴한 모습 대신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색감으로 연출해 도심에 아름다움을 더한 것.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가장 화려한 부분이자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양식인 황금색 굴뚝 돔에도 친환경을 향한 훈데르트바서의 애정이 깃들어 있다. 돔 내부에 분진이나 각종 유해가스를 걸러내는 최첨단 배기가스 정화 장치를 설치한 것. 그뿐만 아니라 쓰레기 소각 시 발생하는 열을 빈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현재까지도 소각장 인근 6만 가구가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에서 공급한 열로 난방과 온수를 이용하고 있다.
주민이 버린 쓰레기를 소각하면서도, 폐기물을 활용해 발전하고, 발전으로 나온 유해 물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주민들에게 난방을 공급하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지구는 물론 시민들과 관광객이 모두 만족하는 세계 도시재생사업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