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종착역인 부산역입니다.”
차내 안내 방송에 가슴이 부푼다. 늘 비슷한 부산 여행을 했다면
이번만큼은 느낀 만큼 실천하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지구와 더 오랜 공존을 꿈꾸는 부산의 친환경 공간을 찾았다.

writer. 임지영 photographer 이도영

뚜벅뚜벅 걸을수록 더 좋은

부산역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남인수의 유명한 노래에도 등장하는 부산역은 경부선과 경부고속선의 철도역이자 종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역, 동대구역 다음으로 세 번째로 이용객이 많다. 1905년 1월 1일 남대문~초량 구간의 경부선 개통이 시작된 지 3년 만인 1908년에 초량~부산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 해 4월 중앙동 임시 부산 역사가 마련되었으며, 중앙동 부산 역사는 1910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최초의 역사는 비잔틴풍이 가미된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었다. 역사는 러시아 총영사관이 자리한 건물이 있는 블록에 있었고, 그 주변은 전부 철도 부지였다. 하지만 1953년 대화재로 역사가 전소되어 임시 가설 역사를 지어 사용하다가 1969년 지금의 초량동에 새 역사를 세웠다.
현재의 역사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2003년 9월 다시 증개축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부산역에는 신구(新舊)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앞부분은 신축 역사의 모습이지만 내부 부대 시설과 역사 뒤편, 승강장 통로 등은 1969년 6월 10일 완공 당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부산역 광장은 2019년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철도의 미래를 상징하는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역 주변을 이용하려면 걷기를 추천한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차이나타운의 중국집 등 보석처럼 숨어있는 맛집과 명소들이 즐비하기 때문. 뚜벅뚜벅 누비면서 또박또박 보다 보면 부산 여행은 부산역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의미는 기본, 재미는 덤!

홈커밍랩

이름부터 걸음을 부르는 ‘홈커밍랩’. 부산역을 나와 햇살을 쬐며 초량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가게다. 간판이 보이는 건물에서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보물섬 같은 매장이 펼쳐진다. 원래 빈티지 의류 가게를 운영했던 운영자는 골목길 모퉁이에 사랑스러운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을 열었다. 그리고 지구로 회귀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보자는 뜻에서 ‘홈커밍+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장 앞에는 ‘매거진’, ‘로컬’, ‘뷰티’, ‘업사이클링,’ ‘라이프’, ’패션’ 등 홈커밍랩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키워드들이 장식되어 있다.
매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입구에 놓인 업모스트의 조명이다. 버려진 플라스틱과 비닐을 재활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조명은 각기 다른 텍스처와 컬러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플라스틱스톤 문진과 화병, 인센스 홀더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업사이클링 데님을 사용한 키링과 헤어핀, 가방 등 패션 소품들은 가장 최근에 선보인 제품들로 뉴트로 붐을 업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회용 방수 토이 카메라와 네팔 양모로 제작된 야채 펠트 키링은 홈커밍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빈티지 감성의 엽서와 포스터는 누구나 맑은 개울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혔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부른다. 홈커밍랩은 드립백 커피와 병아리콩 초코볼, 시리얼 등 다양한 식품도 구비하고 있다. 특히 치즈 맛, 소금 맛, 갈릭버터 맛으로 구분되는 포파칩은 이곳의 베스트셀러이자 부산 여행의 좋은 동반자다. 다 먹은 후 틴케이스는 기념품으로 소장할 수도 있어 일석이조다.
홈커밍랩에서는 다양한 테마의 부산 여행 포켓북도 판매한다. 현지인만 아는 정보도 얻을 수 있고 기념품으로도 간직할 수 있어 요긴하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중로 141 지하1층

월~토 12:00~19:00, 일 휴무

살림도 리필, 행복도 리필되는 가게

천연제작소

부산 3호선 사직역 3번 출구에서 5~6분쯤 걸으면 투명한 창의 ‘천연제작소’를 마주한다. ‘제로웨이스트 잡화점’이라는 재미있는 부제를 달고 있는 가게 안에 들어서면 초록색 몬스테라가 손을 활짝 뻗어 인사를 건넨다. 원래 천연 화장품과 비누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공방을 운영했던 대표는 2020년 초 ‘천연제작소’를 열었다. 생활 속 화학 약품 사용을 줄여보자고 연 가게가 지금은 부산의 대표 제로웨이스트 숍이 되었다.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도 많고, 최근에는 환경에 관심 많은 중·고등학생들까지 찾으며 사직역의 명소로 부상했다.
‘대표 주자’는 일상생활에서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 나갈 수 있는 생활용품이다. 플라스틱을 1%도 사용하지 않은 대나무 칫솔부터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샴푸 바와 비건 비누, 살림하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예쁜 구리 수세미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자랑한다.
각종 리필 제품들로 채워진 ‘리필 스테이션’도 인기가 많다. 플라스틱 용기가 없는 만큼 부피도 부담스럽지 않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샴푸, 컨디셔너 등 친환경 화장품과 세탁 세제, 버블 섬유유연제 등 세제는 원하는 만큼 소분 구매가 가능하다. 성분은 물론, 사용 기한도 표시되어 있다.
푸드 코너는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비건 푸드와 이동 거리가 짧은 로컬 푸드로 채워져 있다. ‘코끼리똥 노트’ 같은 친환경 문구류부터 재사용 화장솜, 소창 수건, 비건 코인 육수 등은 빛나는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게 안쪽에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공정무역 커피와 비건 쿠키로 건강하고 향긋한 오후를 채울 수 있다. 개인 컵을 지참하면 카페의 모든 음료에 대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장바구니를 지참하면 100원을 추가로 할인받는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석사로 26 1층

월~금 11:30~20:00,
토 11:30~17:00, 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