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냉장고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TV 없는 집은 있어도 냉장고 없는 집은 없다.
하지만 냉장고가 세상에 등장한 지는 이제 고작 100년, 우리의 일상에 들어온 지는 50년 정도 됐을 뿐이다.

writer. 전하영

식생활의 혁명이 된

냉장고의 탄생

냉장고가 없던 시대의 인류는 자연의 주기와 계절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식을 보관하고 활용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흙 항아리에 곡물을 저장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눈과 얼음으로 음식을 차갑게 보관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경 생활을 통해 자급자족한 음식을 신선하게 소비했고, 고기는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주로 발효와 절임을 통해 음식을 보존했다. 이러한 전통적 식품 보존법들은 현대의 식품 과학과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음식을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겨울에 얼음을 수집해 뒀다가 여름에 사용했다. 우리나라도 신라시대부터 석빙고(石氷庫)를 이용해 얼음을 저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냉장고 발명 이전의 얼음은 부유층만이 독점한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얼음을 보관하고 싶은 인류의 욕망이 오늘날의 냉장고를 탄생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세계의 여러 발명가들이 인공 냉각 시스템 개발을 위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1862년 스코틀랜드의 인쇄공 제임스 해리슨이 최초의 공업용 냉장고를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911년에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를 개발했다.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인류의 식생활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계절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식중독이나 기생충 감염 등 식품 관련 질병이 크게 줄었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냉장고는 인류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냉장고 없는 일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냉장고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장독과 우물을 대신하는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리나라 아낙들은 봄이면 봄나물, 여름에는 여름 채소로 밥상을 채웠다. 가을이면 곡식을 추수해 저장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 김치를 담가 장독째 땅에 묻었다. 제철 재료를 수확해 그때그때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식재료나 음식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 주로 발효와 절임, 건조의 방식을 이용했다. 음식을 담은 항아리를 우물에 담가 저온 저장하는 등 자연이 냉장고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나라에도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냉장고는 1965년 금성사가 출시한 눈표 냉장고였다. 120리터 용량으로, 반찬통을 몇 개 넣으면 냉장실이 꽉 차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 몇 개를 넣어 음식을 보관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마술상자와 같은 물건이었다. 당시 냉장고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수 1순위 품목으로 등극했다. 훗날 금성사의 국내 최초 냉장고는 한국인의 식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제품이라는 점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마침내 냉장고 대중화의 시대가 열렸다. 1965년 1%도 채 되지 않던 냉장고 보급률이 1986년에 이르러 95%에 도달했다. 냉장고의 기능과 종류도 다양해졌다. 1984년에는 최초의 김치냉장고도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단독주택 거주자가 많아 김장독을 앞마당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곧장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아파트 거주가 일반화되자 김치냉장고의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다. 2020년대인 현재는 가정 내 김치냉장고 보급률이 90%, 냉장고 보급률은 99%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