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5년간 ‘냉장고 없이 살기’를 몸소 실천해 온 에코 저널리스트 김미수.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는 실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생태적인 부엌살림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생태부엌’이란 저에너지 부엌, 쓰레기 없는 순환의 부엌,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책임이 뒤따르는 부엌이다.

writer. 전하영 sources. 김미수

<생태부엌>

생태적인 일상을 만드는 작은 시도들

현대인에게 냉장고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까? 에코 저널리스트 김미수는 15년간 독일에서 냉장고를 없앤 부엌 생활을 실천하며 자신의 경험을 책, 강연, 칼럼, 블로그 등을 통해 공유해왔다. 하루하루 조금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그의 일상 중심에는 지속가능한 살림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부엌’이 있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부터 생태적인 삶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세상을 위해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 보고자 2001년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을 위해 도시락을 싸 다니다 보니 부엌살림을 좀 더 생태적으로 돌보는 데 관심을 두게 됐다. 전기밥솥 사용을 줄이고, 채소 씻은 물을 재활용하는 등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했다. 이후 독일로 터전을 옮긴 후에도 이러한 습관과 시도는 이어졌다. 독일 집은 한국과 달리 공용 마당과 정원이 있고 켈러(Keller)라 불리는 지하 저장공간이 갖춰져 있어 생태적인 일상을 실천하기에 더욱 적합했다.
“독일 사람들은 켈러를 다용도실이나 창고처럼 사용합니다. 저 역시 켈러에 감자, 양파, 당근 포대, 병조림 등을 저장해 뒀습니다. 신선 채소는 그날그날 근처 유기농 가게에서 조금씩 사 먹거나, 제가 일하던 대안농업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만큼 수확해다 먹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냉장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그 역시 처음에는 냉장고 가동을 완전히 멈추는 것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곧 본격적으로 ‘냉장고 없이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켈러는 냉장고의 대안으로써 적극 활용됐다. 그는 켈러를 쓰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한국형 켈러, ‘고방’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엄마가 유과 등의 주전부리를 꺼내 주던 부엌 옆에 붙은 서늘한 공간. 그의 독일 생활에서 켈러는 고방과 같은 역할을 했다.

켈러와 텃밭, 그리고 병조림

김미수 작가는 당시에도 동물성 섭취를 전혀 하지 않는 채식 생활을 유지 중이었기에 더욱 냉장고 없이 사는 생활에 적합했다. 고기나 달걀, 생선 등 부패 때문에 보관에 주의가 필요한 식품들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 독일은 한국처럼 밑반찬을만들어두고 먹는 문화도 아니기에 보통 끼니마다 먹을 만큼만 바로 조리해 먹곤 했다. 집에 텃밭을 두고 산 뒤부터는 매일 필요한 재료를 텃밭에서 바로 수확해 신선하게 먹을 수 있게 돼 더욱 냉장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주키니호박 여린 것은 바로바로 따 먹고, 껍질이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완전히 익을 때까지 뒀다가 켈러에 두고 이듬해 봄까지 먹습니다. 수확량이 많은 깍지째 먹는 콩, 토마토, 체리, 멜론 같은 작물은 병조림해두고 새로 날 때까지 두고두고 먹었고요. 철마다 배추, 무, 무청과 씨방 및 야생초 잎 등 제철 텃밭 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고, 한겨울에 차와 양념으로 쓸 허브, 가을걷이 콩과 옥수수알 정도만 말려 썼어요.”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식품 보관법은 유리병조림이다. 남는 채소를 소금물에 병조림해두면 수개월간 보관해 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 제철 채소가 부족한 겨울과 불을 써 조리하기 힘든 여름날에 특히 빛을 발한다. 소스류, 피클류, 빵 스프레드 등도 병조림해두고, 밥이나 국도 뜨거울 때 유리병에 담아 밀봉해 식혀 두면 냉장 보관 없이 한여름에도 사나흘 간 먹을 수 있다.
독일에서 냉장고 없이 지낸 15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생태적으로 살았던 기간이었다. 냉장해서 이것저것 보관하지 않기 때문에 상해서 버려지는 음식물도 없었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부담이 되는 부분을 줄여 나가고, 내 삶이 자연의 일부로 함께 순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굉장히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기후위기에 대처해
소소하지만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날마다 조금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 바로
생태부엌이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살림을 위한 4가지 제안

그러나 공동주택 생활이 일반적인 한국에서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역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 중인 현재는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지속가능한 살림법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켈러와 텃밭은 없지만, 조금 더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부엌을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김미수 작가는 냉장고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4가지 실천법을 제안한다. 채식 밥상과 병조림, 대체 냉장 공간, 그리고 도시텃밭이다.
“생태적인 밥상을 고려하신다면 동물성 섭취를 조금이라도 줄이시는 것을 가장 먼저 추천드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하루 한 끼라도 채식 중심으로 식사해 보세요. 두 번째 방법은 병조림인데요. 첨가물 없이 재료 100%만으로 병조림할 수도 있고, 잼이나 조림처럼 당을 첨가하거나, 채소와 버섯 등에 소금을 넣거나, 피클처럼 식초를 이용해 병조림할 수 있습니다. 막 지어 뜨거운 밥을 담아 밀봉한 밥병조림도 만들 수 있고요. 이때 가족 식습관에 맞춰 남기지 않고 한 끼에 다 해치울 수 있을 만큼만 보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세 번째 방법은 아파트 내 베란다나 서늘한 창고방, 붙박이장 등을 저장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겨울과 늦가을에는 과일과 채소 등도 비교적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과일은 납작한 나무상자에 한 층으로 담아 눌리지 않게 해두고, 뿌리채소는 모래를 담은 양동이에 보관하면 효과적이다. 저장 공간은 서늘한 시간대에 자주 환기해주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태부엌 실현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작물을 직접 길러 먹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주말농장이나 도시텃밭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다양한 부식거리를 길러 먹는 것이다. 부엌에서 나오는 오래된 식재료를 이용한다면 더욱 알뜰하게 텃밭을 가꿀 수 있다. 싹이 난 양파나 마늘, 고구마, 밑동만 자른 대파 등을 흙에 묻어 놓고, 올라온 싹을 각종요리에 고명으로 얹거나 국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제게 부엌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생태적인 순환의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자 끝이 되는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엌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나타내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기후위기에 대처해 소소하지만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날마다 조금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 바로 생태부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