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를 목격하고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소연 작가는 5년 전부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다양한 실천을 이어나가고 있다. 환경에 진심인 그녀를 만나 진정한 친환경적 의생활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writer. 김정주 sources. 이도영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패션 산업에 관해 공부하면서
정말 옷을 안 사고 싶어졌고,
안 사도 되겠다는 마음이
확실해졌어요

1.5달러짜리 패딩을 보고
쇼핑이 싫어진 이유

우리는 나를 위한 보상으로 옷을 사거나, 중요한 자리를 빛내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등의 이유로 쇼핑을 주저하지 않는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 작가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쇼핑 중독이었다.
“원래 옷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저의 쇼핑력이 폭발하게 된 때는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시기였어요. 쇼핑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할인의 폭이 엄청났거든요. 당시 저는 폐기물에 대해 연구할 때였는데 연구하러 가는 길에 옷을 사고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도 옷을 샀던 것 같아요. 매일 귀가할 때 쇼핑백을 안 들고 간 적이 없을 정도였죠.”
그렇게 옷 쇼핑을 사랑하던 그녀가 180도 변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쇼핑하다가 패딩 하나를 발견했어요. 가격표를 보니 1.5달러. 한화로 2천 원 정도 되는 금액을 확인하곤 ‘이게 말이 되는 가격이라고?’ 하는 의문이 들었죠.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이 가격에 옷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증이 생겼고, 이것을 계기로 패션 산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호기심은 거대한 패션 산업의 이면을 마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알고 싶지 않았던 패션의 어두운 뒷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저는 멋져 보이고 싶어서 옷을 샀는데 패션 산업의 전체적인 과정은 전혀 멋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사랑하던 ‘쇼핑’이라는 행위에 정이 떨어지는 순간이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옷을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연결됐어요.”
옷을 사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단단히 굳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수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왜 이런 결심을 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까?’라는 마음에 억울하기까지 했다고.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예쁘고 저렴한 옷들이었어요. 가게마다 진열된 새 옷을 볼 때마다 ‘내가 쇼핑을 안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저렇게 많은 옷이 이미 생산됐는데 누군가는 입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저를 어렵게 만들었죠.”
그렇게 다짐이 흐려질 때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단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자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위한 나름의 수단이었다.
“책을 집필하면서 스스로 안정화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전에는 언제든지 결심을 뒤집을 수 있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책을 통해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세상에 공언한 셈이 되었으니까요. (웃음) 실제로 책을 쓰기 위해 패션 산업에 관해 공부하면서 정말 옷을 안 사고 싶어졌고, 안 사도 되겠다는 마음이 확실해졌어요.”

버려진 옷들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패션 산업이 일으키는 환경문제는 오래전부터 대두된 이슈다. 하지만 논쟁이 무색할 만큼 패션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패션 플랫폼들은 더욱더 대형화되고 있다. 이소연 작가는 자신이 목도한 패스트패션의 어두운 구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싸게, 많이, 빨리 판매하는 것이 패스트패션이잖아요. 패스트패션의 비즈니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요. 다시 말해 ‘소비 촉진’ 이 패스트패션의 비결이죠. 저는 이러한 패스트패션의정의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패스트패션을 선도하는 소수의 브랜드만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패션 산업에 관련된 대부분의 브랜드가 패스트패션화 되고 있어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쉬인’, ‘테무’와 같은 기업도 초저가 커머스 플랫폼이라는 명목 아래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옷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니까요. 심지어 패션계에서는 ‘울트라 패스트패션’ 이라는 개념을 트렌디한 문화로 포장해 패스트패션보다 더 빠른 흐름을 유도하고 있어요.”
패스트패션이라는 명목하에 엄청난 새 옷들이 생산되는 반면, 옷을 폐기하고 처리하는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누구나 한 번쯤 사용해 봤을 ‘헌옷수거함’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도 안 입는 옷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헌옷수거함에 넣어본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헌옷수거함에 버려진 옷 중 단 5%만 국내에 남는다는 사실은 모르셨을 거예요. 나머지 95%는 모두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데 보통 사막이나 바다에 버려집니다. 헌 옷이 누군가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새 옷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거든요. 즉, 재활용하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싸다는 이유가 전부예요. 참 안타까운 것은 생산과 폐기의 과정은 모두 돈이 없고 힘이 없는 개발도상국에 떠넘겨진다는 것이죠. 이건 정말 비정상적인 구조라고 생각해요.”


패스트패션의 비즈니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요

옷을 사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멋지다

이쯤 되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표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현명한 의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식이 들 때 명심할 것은 ‘에코라는 이름에 속지 않는 것’이다.
“현재 패션 산업에서 일어나는 에코 캠페인을 보면 방향성조차 이미 친환경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이런 폐자원을 이용해서 물건을 만들었으니까 많이 사’와 같은 입장이라면 친환경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죠. 이렇게 친환경의 가면을 쓰고 오히려 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친환경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소비를 촉진한다면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동이죠. 개인적으로는 에코 마케팅으로 발생한 매출의 100%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등의 과감한 시도 없이는 ‘에코’나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슬기로운 의생활을 위한 해답이 이미 우리의 옷장 안에 있다고 말했다. “저는 누군가의 옷장에 있는 옷이 지속가능한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라고 했을 때 매해 800억 벌의 옷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새 옷을 사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많은 옷이 우리 옷장에 들어와 있죠. 재미있는 사실은 옷장을 봐야 나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는 거예요. 옷을 계속 사기만 한다면 쇼핑에 실패해도 원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 옷을 사게 되지만, 옷장 안에 있는 옷으로 한정하면 내가 어울리는 옷, 나의 취향 등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지죠.”


옷장 안에 있는 옷으로
한정하면
내가 어울리는 옷,
나의 취향 등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지죠

옷을 사지 않기로 한 그녀이지만 여전히 옷을 좋아하는 그는 ‘옷 교환’ 방식을 애용한다. 대표적으로 ‘다시입다 연구소’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주최하는 ‘21% 파티’가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옷장 안에 21%의 옷은 잠들어 있다고 한다. 21% 파티는 옷장 안의 옷들을 깨워 서로 교환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교환되는 옷들에는 가격표 대신 옷에 대한 사연이 적혀 있다. 그는 ‘아름다운가게’도 추천했다. 엄선된 양질의 물건들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환경 문제에 동참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먼저 주변에 쩌렁쩌렁 선언하기’라는 ‘꿀팁’을 전했다. 환경을 위한 나의 다짐을 주변에 알리는 것 자체가 환경보호의 첫걸음이라는 것. “제가 인스타그램에 ‘#엄마옷챌린지’나 빈티지 옷으로 코디한 ‘#ootd’ 게시물을 본 친구들이 ‘힙하고 멋진 행동’으로 인정해 주고, 또 조금씩 동참해 주더라고요. 꼭 쇼핑을 하지 않아도 옷이라는 소재로 친구들과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의미 있는 일이에요.”
굳이 옷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나는 어떤 것에 소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제품들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그리고 환경에 조금 더 이로운 쪽으로 소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당신도 환경운동가의 자질이 충분하다. “소비만이 나를 결정하는 전부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무한한 쇼핑의 굴레에서 탈출하는 그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