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해금강의 진경(眞景)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의
총석정도(叢石亭圖)
천하절경으로 알려진 금강산은 예부터 그 아름다움을 필설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일컬어 왔다. 조선 성종 때 노사신 등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금강산의 일만 이천 암봉이 우뚝 솟아 동쪽으로 푸른 바다와 접하고 삼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하늘에서 보면 마치 그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금강산에 대한 명성은 고려시대부터 중국에 알려졌으며 조선 태종실록에는 “중국의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고, 고려에서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라는 이야기가 중국에 있을 정도다”는 기사가 전한다.
금강산은 내·외금강과 해금강으로 나누어지는 바 총석정은 해금강의 최북단에 위치한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해안 승경으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예부터 문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여기서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하 도인)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의 [총석정도(叢石亭圖)]를 통하여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듬어 보면서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식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궁정화원의 첨단에 서다
대대로 역관의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인이 처음으로 화원이 되었다. 아호는 ‘늙은 소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는 집(또는 마을)에 사는 사람’의 뜻을 가진 고송유수관도인이란 다소 긴 아호를 즐겨 썼다.
도인은 어려서부터 산수(山水)를 즐겨 그렸으며 영모(翎毛), 초충(草蟲), 매죽(梅竹) 등도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다소 거칠면서도 기이한 형태의 소나무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북학파 박제가는 시문집 [정유당집(貞㽔堂集)]에서 “갈필로 산을 그리고 발묵(潑墨)으로 점점이 숲을 이루니 명암과 향배의 묘체를 얻었다”고 도인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도인이 도화서 화원이 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주부(主簿, 종6품)가 된 것은 33세 때였다. 정조 때 규장각(奎章閣) 소속의 자비대령화원(差備大鈴畵員)은 도화서 화원 중에서 공개로 선발했으며 도인이 자비대령화원이 된 것은 39세였다. 같은 해 녹봉이 정해지는 월 정기 평가에서는 영모(翎毛)로 2등을 차지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이 무렵 도인은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강희언, 신한평, 김응환, 한종일 등 당대 이름난 화가들과도 깊은 교유를 이어갔으며 특히 단원과는 서로의 그림에 화제를 바꾸어 쓰는 등 누구보다도 깊은 친교를 이어갔다.
위항인들의 대표적 시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옥계시사(玉溪詩社 또는 松石園詩社)를 그린 [송석원시사회도(松石園詩社會圖)]는 도인 나이 47세경의 작품으로 탄탄한 구성과 도인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청아한 선염법이 잘 녹아난 명작이다. 그의 평생 벗인 단원은 같은 모임의 밤 풍경인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를 그려 두 사람의 빼어난 화풍을 확연히 비교할 수 있다.
도인이 도화서 화원이 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주부(主簿, 종6품)가 된 것은 33세 때였다. 정조 때 규장각(奎章閣) 소속의 자비대령화원(差備大鈴畵員)은 도화서 화원 중에서 공개로 선발했으며 도인이 자비대령화원이 된 것은 39세였다. 같은 해 녹봉이 정해지는 월 정기 평가에서는 영모(翎毛)로 2등을 차지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이 무렵 도인은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강희언, 신한평, 김응환, 한종일 등 당대 이름난 화가들과도 깊은 교유를 이어갔으며 특히 단원과는 서로의 그림에 화제를 바꾸어 쓰는 등 누구보다도 깊은 친교를 이어갔다.
위항인들의 대표적 시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옥계시사(玉溪詩社 또는 松石園詩社)를 그린 [송석원시사회도(松石園詩社會圖)]는 도인 나이 47세경의 작품으로 탄탄한 구성과 도인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청아한 선염법이 잘 녹아난 명작이다. 그의 평생 벗인 단원은 같은 모임의 밤 풍경인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를 그려 두 사람의 빼어난 화풍을 확연히 비교할 수 있다.
세련된 필치와 고운 선염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넘실대는 파도도 원근에 따라 높고 낮음을 분명히 하며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그림의 요체인 총석(叢石)의 돌기둥들이 화폭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으며 반원 형태의 해안은 아주 단순화했다. 해안 우측 끝, 천 길 낭떠러지 위에는 날렵한 누대(樓臺)가 맵시 있게 서있으며 저 멀리 작은 섬 하나를 살짝 보태어 화폭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었다.
맑고 고운 바닷가에는 누워있는 형상을 한 와총(臥叢)과 앉은 모습의 좌총(坐叢)들이 도열한 가운데 수정같이 여섯 모난 바위가 바다 깊숙이 뿌리를 박고 수천 년을 파도에 깎이며 기발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바로 총석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입총(立叢)들이 아닌가. 주변의 경관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벼랑 위 누대가 곧 총석정(叢石亭)임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고 그 주변에 소략한 송림(松林)과 해당화로 보이는 붉은 꽃 몇 무더기를 펼쳐 둠으로써 자칫 단조롭기 쉬운 바닷가 풍광에 훈풍이 돌게 하였다.
넘실대는 파도의 동세를 위해 교묘하게 완급을 조절한 섬세한 붓질과 수직준(垂直皴)을 활용해 표현한 검붉은 빛의 강렬한 돌기둥과 벼랑, 붓을 뉘어 찍은 미점(米點)으로 그린 반원형의 언덕. 단조롭기 쉬운 원경에 멀리 조각배와 같이 떠 있는 알섬(卵島) 하나를 보태고 하늘과 파도, 해안으로 이어진 창윤(蒼潤)한 빛깔에 붉은 꽃을 더하는 섬세하면서도 공교한 솜씨는 누구도 쉬이 접할 수 없는 도인만의 탁월한 솜씨가 아닌가. 이렇듯 도인의 총석정 그림은 남종화에 기반을 둔 수채화 같은 은은하면서도 고운 화면 구성에다 꼼꼼하면서도 치밀한 선묘로 이루어지는 북종화의 특장을 겸비한 조선 후기의 수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맑고 고운 바닷가에는 누워있는 형상을 한 와총(臥叢)과 앉은 모습의 좌총(坐叢)들이 도열한 가운데 수정같이 여섯 모난 바위가 바다 깊숙이 뿌리를 박고 수천 년을 파도에 깎이며 기발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바로 총석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입총(立叢)들이 아닌가. 주변의 경관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벼랑 위 누대가 곧 총석정(叢石亭)임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고 그 주변에 소략한 송림(松林)과 해당화로 보이는 붉은 꽃 몇 무더기를 펼쳐 둠으로써 자칫 단조롭기 쉬운 바닷가 풍광에 훈풍이 돌게 하였다.
넘실대는 파도의 동세를 위해 교묘하게 완급을 조절한 섬세한 붓질과 수직준(垂直皴)을 활용해 표현한 검붉은 빛의 강렬한 돌기둥과 벼랑, 붓을 뉘어 찍은 미점(米點)으로 그린 반원형의 언덕. 단조롭기 쉬운 원경에 멀리 조각배와 같이 떠 있는 알섬(卵島) 하나를 보태고 하늘과 파도, 해안으로 이어진 창윤(蒼潤)한 빛깔에 붉은 꽃을 더하는 섬세하면서도 공교한 솜씨는 누구도 쉬이 접할 수 없는 도인만의 탁월한 솜씨가 아닌가. 이렇듯 도인의 총석정 그림은 남종화에 기반을 둔 수채화 같은 은은하면서도 고운 화면 구성에다 꼼꼼하면서도 치밀한 선묘로 이루어지는 북종화의 특장을 겸비한 조선 후기의 수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붓과 함께한 장구한 세월
궁정화원으로 40년 가까이 봉직한 도인은 만년에도 몸은 늙었지만 두 눈의 형형한 빛은 전혀 쇠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폭 44cm, 길이 857cm에 이르는 대작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려 조선회화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것도 이 만년의 일이었다.화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통정대부(정3품)라는 위계에 오르는 남다른 영예까지 안았던 도인이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은 그의 나이 80세 이후로 추정된다.
성큼 다가온 여름 더위 속에 싱그러운 녹음만이 소리 없이 짙어 가고 있다.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보배로운 작품은 그의 작품에서 보듯,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라보는 천 길 폭포수같이 우리 미술사에 장쾌한 여운을 깊고 길게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