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역사(驛舍)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 철도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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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유의 도시
제천역제천역은 1941년 9월 1일, 중앙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1971년에는 역사가 신축되었는데, 옛 제천역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약초 냄새 가득한 대합실을 떠올리곤 한다. 약초의 고장답게 제천역 구내에는 한방특산품판매점이 있어, 씁쓸하고 향긋한 한약재 냄새가 역의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2020년, 제천역은 중앙선 복선전철사업에 따라 의림지와 제천향교 등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새 역사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전면부가 투명 창으로 된 커튼월로 지어져, 중부지역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서 제천역의 밝은 미래와 위상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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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하나 되는
영주역영주역은 1941년 7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는 철암·강릉으로 이어지는 영동선, 남서쪽으로는 문경·김천을 잇는 경북선, 남쪽으로는 영천·경주로 향하는 중앙선이 연결되어 철도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영주역의 위상과 함께 영주 지역의 발전도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그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는 1961년 7월 대수해였다. 당시 영주시내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국가 차원의 수해 복구 과정에서 많은 행정·교육기관과 함께 영주역이 들어서며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었다. 이후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중앙선 복선전철사업과 함께 지역의 랜드마크로 다시 태어난 영주역은 철도도시 영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동양 최대 규모, 제천조차장 제천역은 동쪽으로 태백선과 영동선, 남서쪽으로는 충북선이 이어지며, 영동과 충청 내륙을 연결하는 주요 철도 분기점이다. 분단 이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지역의 자원 수송이 활발해지며, 제천역의 중요성도 함께 커졌다. 이를 보여주듯 1966년에는 제천역과 봉양역 사이에 동양 최대 규모의 제천조차장이 건설됐다. 당시 국내에서 대전조차장과 함께 유일한 시설이었다.

수몰의 아픔을 품고 치유로 흐르는, 청풍호 충주호는 남한강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충주·제천·단양에 걸쳐 있다. 이름은 댐이 위치한 충주에서 따왔지만, 실제로 가장 넓은 수몰지는 제천이었다. 그래서 제천 사람들은 이 호수를 ‘충주호’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바로 청풍호이다. 고향을 잃은 제천 사람들은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차마 충주호라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픔을 품은 제천시는 청풍면 물태리에 수몰로 이전된 청풍 관아와 전통 가옥 등 문화재를 모은 청풍문화재단지, 그리고 수몰역사관을 조성해, 잊을 수 없는 고향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가꾸고 있다.

백운터널은 길이 14.24km로, 국내 철도 터널 중 다섯 번째로 길다. ‘똬리굴 터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옛 금대터널을 대체한 이 터널은 지역 자원을 적극 활용한 건설 방식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백운터널을 중심으로 완공된 원주~제천 복선철도는 청량리~제천 간 이동 시간을 기존 1시간 40분에서 56분대로 단축시키며, ‘기술 속도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철도가 만든 섬, 삼각지마을 1965년, 북영주에 삼각선 철길이 개설되었다. 북영주신호소와 영동선 문단역을 잇는 0.7km 구간으로, 영동선 무연탄을 중앙선으로 바로 연결해 물류 효율을 높였다. 이 삼각선 때문에 철도에 둘러싸여 ‘섬’처럼 형성된 마을이 있다. 바로 삼각지마을이다. 그러나 1973년 태백선이제천역과 직접 연결되면서 폐선되었다. 이후 삼각지마을은 철도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문화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나라 서원의 시작,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하는 기능을 겸한 곳으로, 서원의 시초로 평가된다. 설립 당시에는 백운동서원이라 불렸다. 이는 중국의 백록동서원이 자리한 산 못지않게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이며,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골짜기에 가득한’ 경관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만큼 풍광이 수려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로 여겨져 왔다.

경북 내륙지방인 영주의 특산물이 '문어'가 된 이유는 바로 영주역 때문이다. 영주 문어는 동해에서 잡힌 참문어가 영동선을 따라 묵호를 출발해 완행열차로 영주에 도착할 즈음, 가장 맛있게 숙성된 상태가 된 데서 유래한다. 경북 봉화에서 담배 농사를 짓던 한 사람이 철암으로 이주한 뒤 인근에서 문어를 팔다가, 영동선 개통을 계기로 묵호항의 문어를 영주까지 들여와 판매하면서 ‘영주 문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