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참는다는 말이 낡은 미덕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연과 어울려 살아온 삶의 방식이 있다.
에어컨이 바꿔 놓은 오늘을 지나, 우리는 다시 새로운 여름을
설계하고 있다. 시원함의 기준부터 바꿔야 할 시간이다.

writer. 황혜민

시원함을 기다리던
여름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계절이었다. 뜨거운 한낮이면 집 안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맞바람을 끌어들였고, 처마 끝에는 잘게 자른 왕골 발이 드리워졌다. 대청마루는 자연 통풍을 위해 집의 중앙에 자리 잡아, 더위에 달궈진 몸을 식히는 ‘천연 냉방실’ 역할을 했다.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은 앞마당 수돗가에서 물장구를 치다 흙투성이가 되었고, 어른들은 우물에서 떠온 시원한 물에 수박을 담가 두었다. 부엌에서는 찬 보리차를 수통에 담아두고, 식구들은 돌아가며 목을 축였다. 밤이 깊으면 옥상이나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빛과 바람을 이불 삼아 잠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면 부채질로 서로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도 정이었다.
그 시절 선풍기는 집마다 한 대씩 있었지만, 20분쯤 돌리고 나면 전기료 걱정에 스위치를 내렸다. 땀은 불편한 게 아니라 여름의 공기처럼 당연했고, 더위를 참아내는 것이 어른스러움의 척도로 여겨졌다. “더운 날엔 느릿이 움직여라”, “그늘 아래로 모여라” 같은 할머니들의 생활 처방은 체온 조절법이자 삶의 리듬이었다. 잠시 찬물에 발을 담그거나, 저녁 해가 기울 무렵 동네 어귀 그늘에서 모여 앉는 일이 흔했다. 불편했지만 자연과 보조를 맞추며 살았던 여름, 그 시원함은 기술이 아닌 태도였다. 여름은 고된 계절이었지만, 동시에 계절을 살아내는 감각이 살아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냉방이 바꾼
삶의 풍경

폭염이 일상이 된 시대,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는 ‘인류의 구원자’, ‘20세기의 성인’으로 불린다. 1902년, 그는 인쇄소의 잉크 번짐을 막기 위해 습도 조절 장치를 고안했고, 이는 현대식 에어컨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1950년대 미국 백화점과 극장에 도입되며 ‘한여름에도 외투를 챙겨야 하는’ 공간이 유행처럼 번졌다. 한국에는 1968년 조선호텔 로비가 첫 설치 사례로 기록되고,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부터 가정용 보급이 시작됐다. 1997년 IMF 이후 할부·렌털 상품이 등장하면서 에어컨은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여름방학마다 피서지를 찾던 풍경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집 안에서 냉방으로 더위를 해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에어컨은 여름을 바꾸었고, 동시에 도시도 바꾸었다. 통풍을 위한 대청마루와 창호는 사라지고, 단열과 기밀성이 강조된 콘크리트 벽이 표준이 됐다. 창문은 작아졌고, 바람길은 막혔다. 여름이면 실외기는 뜨거운 공기와 소음을 골목길로 쏟아내고, 도시는 스스로 열섬이 되었다. 지열은 축적되고, 그 열은 다시 실내를 덥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23년 기준 국내 가정용 냉방 전력은 전력피크의 32%를 차지하고, 냉매로 쓰이는 HFC-410A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지수가 2,088배 높다. 우리는 시원함을 얻었지만 계절의 감각과 이웃, 별빛을 잃었다. 여름을 감각하는 방식이 기술로 대체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편리함과 바꾸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뜨거운 시대의
새로운 선택

폭염 경보가 일상이 된 2020년대, 단순한 절전이 아니라 시원함의 기준 자체를 새로 짜야 할 때다. 친환경 냉매 전환, 소비전력 30% 이상 낮춘 인버터 시스템, 태양광 기반 지역 냉방망 같은 기술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건축 측면에서도 바람길을 열고 고반사 외장재를 사용하는 패시브 디자인, 쿨루프 도장 등으로 실내 온도를 낮추는 방안이현실화되고 있다. 대형 빌딩이나 공공시설은 실내 공기 순환 방식을 재설계하고, 에너지 자립형 건물로의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실내 온도를 2℃ 높이고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병행하며, 해가 진 후 활동을 늘리는 ‘여름형 시간표’로 조정하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자연 바람을 유도하거나, 옷차림을 더운 날씨에 맞게 조절하는 일도 중요하다. 공공 쉼터나 쿨링포그 같은 복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원함을 ‘소비재’가 아닌 ‘공존의 조건’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땀을 불편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으로 받아들이고, 나무 그늘과 느린 여름 밤의 산책을 다시 발견하는 일. 덜 시원하지만 더 건강한 여름, 그것이 우리 미래의 기본값이어야 한다. 시원함을 되찾는 길은 기술이 아니라, 다시 느끼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여름을 ‘살아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