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증하는 보급률과 전력 수요

1993년 국내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고작 6%였다. 불과 한 세대 만에 97%를 넘어섰고, 4~5월부터 에어컨을 트는 ‘조기 냉방’이 일상화됐다. 시원함은 곧 전력 폭증을 뜻한다. 룸에어컨 1대는 시간당 1.1kWh를 삼킨다. 강풍 선풍기(35~55W) 20~30대를 동시에 돌리는 셈이다.

냉방의 역설, 전기가 만든 더위

에어컨은 시원함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전기를 태운다. 냉방을 위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전기는 전 체 전력 사용량의 10%에 달하며, 이로 인해 연간 약 19.5억 톤의 온실가스(CO₂)가 배출된다. 이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4%를 차지하는 수치다. 특히 화석연료 기반 전력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상 황은 심각하다.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가 65.5%인 한국은 에어컨 스위치가 곧 탄소 스위치다.

냉매, 보이지 않는 폭탄

에어컨 속 냉기를 만드는 건 냉매다. 하지만 대부분의 에어컨에 사용되는 수소불화탄소(HFCs)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수천 배에서 많게는 14,800배에 달한다. 문제는 이 냉매 가 에어컨 사용 중 조금씩 새어나오다 제품 폐기 시점에는 최초 충전량의 80% 이상이 대기 중으로 유 출된다는 사실이다. 냉방은 단순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지구를 뜨 겁게 만든다.

내 방의 냉기, 녹아내리는 빙하

지구 평균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북극 해빙은 13% 감소한다. NASA는 북극 해빙이 10년마다 12.6%씩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2000년대 초반보다 해빙 속도는 30% 빨라졌으며, 지난 20 년간 녹아내린 빙하량은 남북한 전 국토를 아파트 10층 높이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을 수 있는 규모 에 달한다. 내 방의 냉기는 극지의 ‘지구 에어컨’을 끄는 데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