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역사(驛舍)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 철도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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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 전에 또 오리
강촌역강촌역은 1939년 경춘선 개통과 함께 무배치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여객 수요가 늘면서 1961년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승격됐고, 역사도 새로 지어졌다. 이후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 사업으로 기존 강촌리에서 약 1.3km 떨어진 방곡리로 이전했다. 옛 강촌역은 북한강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통기타를 든 청춘들로 늘 붐비던 곳이었다. 지금은 역 앞에서 바로 북한강을 만날 수는 없지만, ‘강촌역’이라는 이름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다. 통기타 대신 자전거를 타고, 그 시절의 추억을 찾는 이들과 새로운 세대의 청춘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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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누구에게나 봄(春)
춘천역1939년, 오랫동안 춘천 지역민의 숙원이었던 경춘선 열차가 마침내 달리기 시작했다. 1920년대, 대전과 대구 등 도청 소재지들은 철도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지만, 험준한 산맥에 가로막힌 춘천은 철도 건설이 어려웠다. 이에 춘천의 조선인 유지들은 스스로 철도를 놓기로 결심하고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약 4년간의 공사 끝에 경춘선이 완공됐고, 개통 5년 만에 총독부의 보조금 없이도 운영이 가능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둔다.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 사업으로 새로 지어진 춘천역은 역사 전면에 소양강댐의 모습을 담아 지역의 상징성을 더했다.

청춘을 부르는 낙서, 피암터널 옛 강촌역은 1면 1선으로 열차가 정차하던 소박한 간이역이었다. 1995년, 낙석 사고를 막기 위해 피암터널이 건설됐고, 독특한 터널 형태 덕분에 ‘콧구멍 터널’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지금도 옛 강촌역과 피암터널 주변에는 수많은 청춘들이 남기고 간 낙서와 그래피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바래고 지워진 그 흔적들은 추억의 시간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최근 춘천시는 이곳을 다시 걷고 머무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관광 자원화에 나섰다.

30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돌아온, 출렁다리 피암터널과 함께, 옛 강촌에는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명물이 있었다. 바로 강촌 출렁다리다. 1972년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등선교’는 상판을 케이블로 연결한 독특한 형태 덕분에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당시 강촌유원지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1985년, 수해와 이용객 감소로 철거되었고,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30년이 흐른 2015년, 폐철도 관광자원화 사업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조금 작아졌지만, 야간조명이 설치되어 운치를 더한다.

폐역이 된 옛 강촌역 일대는 이제 자전거가 달리는 철길로 다시 살아났다. 바로 강촌레일바이크다. 경춘선이 ITX로 전환되며 사용되지 않게 된 구 철로를 활용해, 북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강촌레일바이크는 철도와 자연을 함께 즐길 수있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기차가 다니던 선로 위를 페달로 달리는 색다른 경험은, 어린 시절 기차 여행의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강촌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청정호반 도시의 청춘정거장 춘천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1965년 춘천댐을 시작으로 의암댐, 소양강댐 등이 건설되며 수도권의 상수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깨끗한 물을 위한 개발 제한이 오히려 청정한 자연을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춘천은 급격한 산업화에 지친 사람들이 찾는 호반의 도시가 되었다. 소양강가에서는 스카이워크와 처녀상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막국수와 닭갈비가 그들의 빈속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호반의 도시를 넘어, 문화콘텐츠의 도시로 1990년대 초반까지 도시 청년들의 꿈과 사랑을 상징하던 ‘호반의 도시’ 춘천은, 2000년대를 지나며 독창적인 문화예술과 콘텐츠 산업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의암호 일대에 조성된 ‘춘천 애니메이션박물관’은 국내 최대의 ICT 기반 콘텐츠 클러스터이자, 인기 애니메이션 구름빵을 탄생시킨 테마 공간이다. 춘천은 만화축제, 마임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더불어 먹거리, 볼거리가 어우러진 멀티미디어 도시로 자리잡으며, 새로운 세대의 청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제4 미사일 사령부를 포함한 미군의 부대가 춘천에 주둔하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 춘천역 일대의 '캠프페이지'이다. 이곳은 1983년, 중공민항기 256편이 납치로 인해 불시착하며 한중 수교의 물꼬를 튼 역사적 장소다. 상하이발 여객기는 대만행을 요구한 납치범에 의해 미 육군 항공기지였던 캠프페이지에 착륙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한국 정부 간 첫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정식 국호 사용과 함께 체육·관광·문화 등 비정치적 교류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