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역사(驛舍)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 철도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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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가득한 마법의 성
곡성역
곡성역은 1933년 10월 15일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문을 열었다. 옛 역사는 오곡면에 자리해 읍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나, 1999년 전라선 선로 이설과 함께 곡성읍으로 신축 이전했다. 굽이진 산세와 섬진강의 흐름에서 이름을 얻은 곡성은 한때 금빛 모래를 전국으로 실어 나르던 철도의 고장이었다. 섬진강의 금빛 모래가 오가던 그 옛 모습 그대로의 역사가 1004종 장미정원과 기차 테마정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새 역사는 이름처럼 ‘성(城)’ 의 형태를 본떠 지어져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며, 용문역·탑리역 등과 함께 성곽형 건축의 대표 여행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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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일(克日)의 역사
순천역
순천역은 1930년 12월 25일, 남조선철도주식회사가 순천–여수와 순천–광주 구간을 동시에 개통하며 문을 열었다. 순천은 전남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 철도의 개통과 함께 중요한 철도 도시로 성장했다. 경전선과 전라선이 분기하는 순천역은 지금도 우리나라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2009년 12월 22일, 현재의 위치로 신축 이전했다. 일제강점기, 멸시 속에서도 기차를 멈추지 않았던 철도인들의 의지가 흐르는 순천역은 이제 세계 정원의 도시를 지키는 따뜻한 관문이 되었다.
소재지: 전남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한국관광 100선의 기차테마공원, 섬진강 기차마을 1999년 곡성역과 압록역 사이 복선화 이설로 생겨난 폐철도.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을 거라 여겨졌던 그 길 위로, 다시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곡성군이 버려질 뻔한 철도와 역사를 살려, 옛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기차테마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옛 전라선 17.9km 구간이 그대로 보존된 이곳은 연간 150만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으며,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소재지: 전남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장미공원과 세계장미축제 2009년 기차마을 안에 조성된 1004장미공원은 곡성테마공원의 또 다른 성공을 이끌었다. 철길의 낭만과 꽃의 향기가 어우러진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정원이다. 약 4만㎡ 규모의 공원에는 이름처럼 1004종의 장미가 심어져 있으며, 국내 단일 장미원으로는 가장 다양한 품종을 자랑한다. 매년 열리는 세계장미축제 기간이면 온 마을이 장미빛으로 물들고, 방문객들은 향기로운 산책길을 따라 오래 머무는 추억을 남긴다.

물이 맑고 깨끗한 섬진강은 곡성 참게의 고향이다. 민물과 바다를 오가며 자라는 참게는 봄과 가을, 특히 음력 2월 영등철에 가장 맛이 좋다. 살이 꽉 차 ‘황소가 밟아도 안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들깨와 된장, 미나리를 넣고 뚝배기에 끓여낸 참게탕은 여행의 허기를 달래는 곡성의 별미다. 봄이면 벚꽃과 어우러지고, 가을이면 단풍과 함께 참게장이 식탁을 채운다. 섬진강의 맑은 물과 함께한 계절의 맛, 곡성에서는 그 한 숟가락에도 자연이 담겨 있다.
소재지: 전남 순천시 국가정원1호길 47자연이 숨 쉬는 세계인의 정원도시 갈대밭 사이로 흑두루미가 날고, 짱둥어와 농게가 노니는 곳, 순천만.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의 보고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정원’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처음 법적으로 도입되었고, 순천만정원은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순천을 세계적인 정원의 도시로 이끈 상징이자, 사람과 자연이 함께 머무는 가장 순천다운 풍경이다.
소재지: 전남 순천시 자경2길 10-5옛 철도인의 일상을 만나는 순천철도문화마을 우리나라에 남은 옛 철도 관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순천 철도 관사촌이다. 집집마다 다다미방과 화장실, 텃밭과 창고를 갖추었고, 마을 안에는 병원과 영화관, 클럽까지 들어서 있었으니 그 시절의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당시 4급 국장 관사는 무려 1,653㎡, 전체 152채 규모로 철도 도시 순천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옛 건물 40여 채가 보존되어 철도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났고, 철도인의 삶과 역사를 담은 박물관과 게스트하우스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순천 사람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철도사무소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단순 노역에만 종사할 뿐 철도의 핵심 기술은 배울 수 없었다. 광복을 앞두고 일본인들은 “조선은 결코 이 철도를 운행할 수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순천 철도원들의 지혜와 피나는 노력으로, 기차는 다시 우리 땅 위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되었다. 극일(克日)의 현장이자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