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람 PD

여행의 렌즈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김가람 PD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만들며 오랫동안 세계의 도시와 자연을 걸어 다녔다. 여행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소개하는 일이 아니라, 각 나라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과 여행의 즐거움을 시청자에게 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현지의 공기와 속도, 거리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일은 그의 직업적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었다. “보이는 이 장면은 무엇 위에 놓여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 뒤편에 존재하는 산업 구조, 환경 변화, 개발로 흔들리는 지역의 삶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풍경 자체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더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코로나 시기였다. 병원 취재가 막혀 국내 암 발병 지도를 분석하던 중 특정 지역의 발병률이 전국 평균의 몇십 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주변에는 소각장과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본 낮 시간의 짙고 탁한 연기, 그리고 그 속에서 일상을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래 남았다.그는 스스로 말한다. “환경 문제에 전혀 관심 없었다. 디폴트는 ‘내가 뭐 해봤자’였다.” 하지만 현장을 본 이후, 그는 확신했다. 여행의 아름다움을 비추던 카메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삶을 가리는 구조를 비추는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후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풍경에서 구조로,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되었다.

일상의 언어로 환경을 다시 연결하다

환경 이야기는 어렵고, 전문 용어는 금세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김가람 PD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준은 단순하다. “우리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에게 환경은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질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주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옷’이었다. 집을 정리하다 버리려던 단체티 한 벌을 보고 “이 옷은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그 단순한 호기심이 취재의 시작이 되었다. 헌옷 대부분이 국내에서 순환되지 못한 채 해외로 수출되고 있었고, 코로나로 수출길이 막히자 처리하지 못한 옷더미가 그대로 쌓인 창고를 보며 그는 지금의 소비 구조가 만들어 낸 현실을 실감했다.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옷에서 음식, 전자제품, 그리고 세계 공급망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전자제품 수리보다 새 제품 구매가 더 쉽게 설계된 구조나, 유통기한 중심의 폐기 문제는 그가 오래 고민해온 지점이었다. “환경 운동 쪽에서는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일반인은 절대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일상의 언어와 시민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김가람 PD의 환경 작업은 하나의 방송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질문에서 출발한 이슈들을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해 다큐 시리즈를 제작해왔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와 ‘음식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옷과 음식이라는 친숙한 대상 뒤에 숨은 세계적 소비 구조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옷 한 벌이 재사용되지 못한 채 해외로 흘러가 쌓이는 풍경, 식품이 생산·유통·폐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과 노동 문제 등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문제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김가람 PD에게 다큐는 장면을 넘어 구조를 설명하는 도구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플라스틱과 조명, 사라짐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는 일’

환경팀은 촬영 현장에서 일회용 생수병이나 컵을 사용하지 않지만, 모든 상황에서 일회용을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식품 유통기한을 다루는 관능검사는 표준 절차상 일회용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플라스틱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배분’해야 하는 자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조명도 같은 원리다. 야생에서는 조명을 켜는 순간 동물이 그 밝기에 적응하는 데 한두 달이 걸릴 수 있다. 도시의 과도한 빛은 곤충· 조류·양서류의 이동과 번식을 방해하고, 결국 생태계를 흔들어 놓는다.

“한국 도시의 밤은 외국인들이 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밝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왼쪽 망막 혈관이 손상되어 밤길을 걷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경험한 간판 조명과 반사광의 눈부심은 조명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몸으로 알게 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조명 OFF는 단순히 조명을 끄자는 뜻이 아니다. 시간과 장소, 용도에 따라 빛의 양을 조절하며 조명을 하나의 자원으로 대하는 문화에 가깝다. 유럽과 캐나다 일부 도시에서 자정 이후 간판 소등을 의무화한 것도 같은 이유다. 조명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안 산다’는 선택이 남기는 자리

김가람 PD의 일상은 그의 작업 방식과 이어져 있다. 집에 5년 이상 둘 수 없는 물건은 처음부터 사지 않고, 한철 쓰다 버릴 것이 분명한 초저가 제품은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다. 팬데믹 시기 예약해둔 새 차도 인수하지 않았다. 이는 소비를 줄이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의 방식에 가깝다.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안 산다’는 선택을 남겨두는 게 중요해요.” 최근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후 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구조’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을 희생이나 불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대신, 누구나 일상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환경 문제를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선택’의 이야기로 바꾸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에게 환경은 사라지는 것의 이야기가 아니다. 덜 밝히고, 덜 사고, 덜 버리며 무엇을 더 깊게 볼 수 있는지 탐구하는 일에 가깝다. 작은 선택이 삶의 리듬을 조금 더 느리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작업 안에 자리한다. 그는 오늘도 그 질문을 기록하며, 그 질문이 만들어낸 사람들을 천천히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