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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도시의 내일을 설계하다

철도역은 열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역을 중심으로 이동, 생활, 일, 문화가 이어질 때 하나의 역은 지역의 생활권을 바꾸고 도시의 성장축을 새롭게 만든다. 역세권 복합개발은 바로 그 변화를 설계하는 일이다. 철도와 도시를 함께 바라보며, 이동과 일상이 막힘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국가철도공단의 역할을 유승현 글로벌사업본부 글로벌개발처장의 이야기로 들어본다.

철도와 도시를 함께 설계하는 일, 역세권 복합개발

과거의 철도역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점(Point)’의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승객은 역에 도착해 열차를 이용하고, 다시 역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은 주변 지역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내는 ‘면(Area)’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역을 중심으로 상업, 업무, 문화, 주거, 환승 기능이 모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세권 복합개발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개발사업입니다. 단순히 역 주변에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철도 이용의 편리함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출근길에는 환승이 쉬워지고, 퇴근길에는 장보기와 식사를 해결하며, 주말에는 문화시설과 공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역은 더 이상 통과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업을 단순한 부동산 개발로 보지 않습니다. 철도 이용 수요를 만들고, 대중교통 중심의 생활 방식을 확산시키며, 국가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공공적 도시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소멸 대응이 중요한 과제가 된 지금, 철도역은 사람과 기업, 생활 인프라를 모으는 지역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성되는 균형

국가철도공단은 역세권 복합개발사업의 전 과정을 주도하는 핵심 시행기관입니다. 역 주변 부지는 공단이 기획, 설계, 시공, 토지분양 등을 통해 직접 개발하고, 철도 부지는 점용허가 방식을 바탕으로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역과 연계한 복합환승센터 개발을 추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단은 철도 중심의 대중교통 편의를 높이고, 국가 자산의 활용 가치를 키우는 총괄 기획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역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균형입니다. 철도 부지는 국가 자산인 만큼 환승시설, 문화공간, 보행환경 등 국민을 위한 공공성을 충분히 담아야 합니다. 동시에 민간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입시설의 비율과 사업성도 정교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공익적 가치만 앞세우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고, 수익성만 따라가면 철도역이 가져야 할 공공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단의 역할이 가장 잘 발휘될 때는 역설적으로 이용자 눈에 잘 띄지 않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이 완료된 뒤 이용자는 불편 없이 시설을 이용하고, 운영자는 효율적으로 공간을 관리하며, 도시는 자연스럽게 활기를 얻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 뒤에는 이용자의 동선, 교통수단 간 환승 체계, 기반시설의 안전성까지 세밀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균형을 설계하는 일이 공단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좋은 입지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성

역이 좋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모든 개발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주변 도시 구조, 지자체의 협조, 기존 시설물, 이해관계자, 보상 문제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사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서역이나 춘천역세권처럼 아직 주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거나 철거해야 할 지장물이 적은 곳은 상대적으로 추진이 수월합니다. 반면 이미 역 주변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은 협의와 보상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지자체의 의지와 이해도 역시 중요합니다. 역을 중심으로 도시 기능을 모으는 개발은 철도기관만의 노력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지자체와 민간, 지역사회가 함께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지자체가 사업의 공익적 가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개발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를 일반 도시개발로만 바라보거나 인허가에 소극적일 경우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결성입니다. 철도와 버스, 택시, 자전거, 보행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고, 역 주변에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흐름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복합환승센터는 여러 교통수단을 한곳에 모아놓은 시설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입체적 연결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지역의 생활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의 얼굴이 된 역들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개발이 지역의 변화를 이끈 사례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는 KTX와 고속·시외버스, 상업시설이 결합된 대중교통 거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교통과 상업 기능이 한곳에 모이면서 역 주변은 영남권을 대표하는 교통·상업 중심지로 변화했습니다.

홍대입구역과 공덕역은 경의선 지하화로 생긴 상부 공간을 활용한 사례입니다. 과거 철길로 단절되었던 공간은 경의선숲길이라는 공원으로 바뀌었고, 역 주변에는 호텔, 쇼핑몰, 기업 사옥 등이 들어서며 문화와 상업이 어우러진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단은 지자체와 협의해 공원과 복합시설이 조화롭게 이어지도록 종합개발계획을 검토하고, 지하 철도 구조물 위에 시설이 안전하게 들어설 수 있도록 구조 보강 계획도 세밀하게 수립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수서역세권은 공단 최초의 대규모 역세권 개발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단순한 고속철도 종착역을 넘어 서울 동남권의 복합환승센터와 업무·상업시설이 결합된 미래형 대중교통 중심 개발 모델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공단은 사업타당성 기획부터 토지 공급에 이르기까지 총괄 디벨로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경험은 앞으로 철도 중심 도시개발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역이 랜드마크가 된다는 것은 건축물의 규모나 디자인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가입니다. 광역 교통 이용객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아와 소비하고, 쉬고, 교류할 수 있을 때 역은 지역사회의 중심지가 됩니다.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주거, 업무, 문화, 쇼핑이 하나의 권역 안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역은 도시의 얼굴이 됩니다.

도시와 일상을 잇는 중심으로

국민이 가장 크게 체감할 변화는 이동과 일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편리함입니다. 교통, 쇼핑, 주거, 업무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이동 시간은 줄고 삶의 여유는 늘어납니다. 역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생활 기능이 쌓이며, 그 흐름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 도시의 접근 방식은 달라야 합니다. 수도권은 풍부한 수요와 높은 사업성을 바탕으로 민간 주도의 고밀도 복합개발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철도 거점에 환승시설을 구축하고, 주거·업무·상업 기능을 압축해 자가용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반면 지방 도시는 민간 수요와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공단과 지자체, 민간이 협력하는 개발 체계가 필요합니다. 지자체의 인허가 지원과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되, 공공이 주도해 행정·복지·문화시설과 주거, 일자리 기능을 역 주변에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인프라를 넓게 흩뿌리기보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지역의 거점 기능을 모으는 전략이 지방소멸 대응의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철도역은 더 많은 기능을 담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철도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지역의 기능이 연결되고, 도시의 활력이 다시 살아날 때 역은 국민의 일상과 도시의 내일을 함께 설계하는 공간이 됩니다.

MINI INTERVIEW

유승현 글로벌사업본부
글로벌개발처장 미니 인터뷰
오랜 시간 근무하시면서 ‘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셨나요? 1997년 철도청에 입사해 건축 업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제게 역은 열차 운행과 승객 이용을 위한 철도시설에 가까웠습니다. 승강장, 대합실, 이용자 동선, 설비, 안전성처럼 건축물로서의 기능과 완성도를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철도사업 기획과 역세권 개발, 자산개발 업무를 거치며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지금의 역은 단순히 열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도시의 흐름과 지역의 가치를 바꾸는 공공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지방 소도시의 역을 중심으로 행정, 문화, 복지, 주거, 일자리 기능을 연결하는 생활거점형 개발도 중요한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철도역 주변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역세권 개발과 자산개발은 짧은 시간 안에 성과가 드러나는 일은 아닙니다. 하나의 구상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기까지 여러 검토와 협의, 인허가와 설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도면과 보고서 속에 있던 내용이 도시계획에 반영되고, 실제 사업 단계로 나아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이 역을 중심으로 지역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철도역 주변의 변화가 지역의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 일은 제게 큰 책임감과 의미로 다가옵니다. 처장님께 ‘좋은 역’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좋은 역은 ‘사람이 편한 역’에서 출발해 ‘도시를 바꾸는 역’으로 나아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차가 안전하고 정확하게 운행되는 것은 기본이고, 이용자가 길을 쉽게 찾고 편리하게 환승하며 부담 없이 머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편해야 철도 이용이 늘고, 그 흐름이 역 주변의 활력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역은 규모가 크거나 시설이 화려한 역이 아닙니다. 철도 이용자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편리한 역, 그 편리함이 결국 도시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역입니다.
후배 철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원칙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첫째는 철도 본연의 기능입니다. 어떤 개발도 철도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 열차 운행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지역을 함께 보는 시야입니다. 역을 건물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생활 흐름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셋째는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입니다. 단기적인 수익성만 볼 것이 아니라, 철도자산이 지역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기고 도시의 장기적 발전과 어떻게 맞물릴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역은 도시를 바꾸는 공공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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