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남대문역 출처: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1925년 10월 15일, 새 경성역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였다. 웅장한 돔 지붕과 붉은 벽돌, 널찍한 대합실을 갖춘 경성역은 단순한 승하차의 공간을 넘어선 곳이었다. 그날부터 경성역은 서울에 발을 내딛는
이들을 맨 먼저 맞이하는 도시의 얼굴이자, 근대의 풍경을 집약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관문이 되었다. 개장 당일의 열기는 대단하였다. 준공식(낙성식) 행사 당일 일반 관람이 허용되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역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새 경성역은 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구경거리이자 시대의 상징이었다.
이 자리가 처음부터 웅장하였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인철도가 서울 남대문 인근까지 연장되면서 이곳에 40평 규모의 목조 건물인 남대문정거장이 들어섰다. 당시 이곳은 용산역과
서대문역 사이에 놓인 소박한 간이 정거장에 불과하였다. 철도의 종착지 역할은 서대문역 인근의 옛 경성정거장이 맡고 있었기에 남대문정거장은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관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철길이 넓어질수록 역도 함께 커졌다. 한반도 철도망이 경부선과 경의선으로 확장되면서 남대문정거장의 비중은 급격히 높아졌다. 1915년에는 목조 신역사를 올렸고, 1922년부터 3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경성역 건물이 완성되었다. 1925년 9월 준공된 새 역사는 르네상스풍 외관과 벽돌, 석재가 어우러진 화려한 건축물로 당시 사람들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1925년 10월 15일 영업을 시작한 경성역은 서울에 들어서는 첫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역은 단순히 기차가 서는 정거장이 아니라 도시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다. 2층 대식당과 티룸은 커피와
양식을 선보이며 새로운 생활양식을 전파하였고, 사람들은 역을 통해 낯선 복식과 유행을 접하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에게는 설렘의 시작점이었고, 더 먼 곳으로 떠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서성이는 이별의
자리였다.
또한, 1925년 10월 15일은 단순한 역사(驛舍)의 개관일이 아니었다. 1900년 남대문정거장이라는 이름의 목조 건물로 시작한 자리가 25년 만에 서울의 상징으로 거듭난 날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공간이
달라지자 도시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날 경성역이 실어 나른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욕망과 표정, 그리고 근대라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역 엽서출처:서울역사박물관
1930년 경성역 출처: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