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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블루스와 가락국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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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0시 50분

조용필 1집에 실려 널리 알려진 ‘대전 블루스’는 사실 1956년 안정애가 처음 부른 곡이다. 당시 서울역을 오후 8시 45분에 출발한 완행열차가 대전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0시 40분이었고, 꼭 10분 뒤인 0시 50분에 목포행 완행열차가 떠났다. 호남으로 향하는 마지막 하행열차였다.

대전역의 정차 시간이 10분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이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대전역이 철도 교통의 요충지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전역이 세워졌고, 1914년에는 호남선이 완공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호남평야의 곡물을 부산항으로 신속히 수탈하기 위해 대전역에서 호남선을 갈라지게 했다. 당시 기술로는 노선을 바꾸려면 분기점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야 했는데, 기관차를 교체하고 선로를 전환하는 데 꼭 10분이 걸렸다. 그렇게 0시 40분에 도착한 열차는 0시 50분에 떠났고, ‘대전발 0시 50분’은 애끓는 이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대전역 플랫폼에 눈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처럼 효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금쪽같은 10분을 멍하니 보낼 리 없었다. 대전역에서의 대기시간을 채워준 주인공이 바로 ‘가락국수’였다. 가락국수는 일본어 ‘우동(うどん)’을 우리말로 순화한 이름인데, 굵은 면 가락에서 비롯되었다. ‘각기우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가케우동(かけうどん)’에서 변한 말이다.

맑은장국에 담긴 가락국수 한 그릇은 긴 여정에 지친 이들에게 반가운 한끼였고, 대전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한편으론 지루한 여행길에 즐길 수 있는 짜릿한 모험이기도 했다. 플랫폼 안의 간이매장에는 열차가 설 때마다 긴 줄이 늘어섰고, 사람들은 스탠딩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서서 급히 국수를 들이켰다. 기차가 떠날까 봐 서둘러 먹다 입천장을 데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아버지는 국수를 사러 가고 객차에 남은 아이들은 아버지가 기차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실제로 국수를 먹다 열차를 놓친 사람들도 많았다.

증기기관차에서 디젤, 그리고 KTX 시대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의 이동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대신 우리는 등가교환으로 승강장에서 먹는 가락국수 한 그릇이 주는 즐거움을 잃었다. 대전역 승강장의 가락국수집은 1998년 역사 환경시설 정비사업 때 철거되면서 추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지금도 역사 안이나 역 앞 가게에서 가락국수를 맛볼 수 있지만, “예전 맛만 못하다”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가락국수 맛이 그렇게 달라졌을 리는 없다. 오히려 면을 뽑는 기술이 더 좋아져 면발은 더 쫄깃하고 탱탱해졌다. 그럼에도 그 맛이 유독 그리운 이유는 따로 있다. 열차가 떠날까 연신 뒤를 돌아보며, 시간에 쫓겨 급히 들이키던 그 짜릿함 때문이다. 마치 몰래 먹는 도시락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긴장’이라는 도파민이 양념이 되어 대전역 가락국수를 더 맛있게 만들었던 셈이다. 결국 변한 것은 가락국수가 아니라, 시대였다.

사라진 것을 자꾸 그리워하는 일은 촌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조금 촌스러우면 어떤가. 사람 사는 재미라는 게 보통 거창하지 않고 이렇게 소소한 일들이다. 가락국수 한 그릇 앞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부모님이나 옛 연인을 회상하는 작은 행복 같은 것 말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우리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감각만큼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쑥갓 향이 은은히 퍼지는 따끈한 가락국수 한 그릇 앞에서 문득 옛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능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