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 기록실

철도가 지나간 자리, 시대를 읽다

일제강점기의 수탈 철도부터 전쟁의 폐허, 산업화의 전철화와 지하철 개통, 그리고 대중가요와 역사의 생활 문화까지.
엽서·도면·홍보물·사진·음반에 남은 철도 기록물은 ‘이동’의 기술을 넘어 그 시대의 욕망과 상처, 도시의 탄생을 엿볼 수 있다.

#1

호남선은 일제가 미곡 수탈을 위해 부설된 철도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호남선 개통 홍보를 위해 호남선별 구간별 세트 엽서를 제작했다. 사진은 1913년 5월 목포~학교 구간을 기념해 만들어진 엽서다.

출처: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2

‘경성역 정면도(京城驛 正面圖)’이다. 상단에는 ‘경성역(京城驛)’, 하단에는 ‘정면(正面)’, ‘축척백분지일 준공 대정14년 9월 20일 제도자 이종상(縮尺百分之壹 竣功大正拾四年九月參拾日 製圖者 李鍾相, 축척 1/100, 준공 1925년 9월 20일, 제도자 이종상)’이 적혀 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3

국토종합개발 5개년 계획하에 1971년(추정)의 수도권전철화계획도다. 서울 지하철 착공(2호선 등) 홍보용으로 제작됐으며, 수도권 전철(현 1~8호선)은 1974년 2호선 개통으로 시작됐다.

출처: 한국철도공사
#4

한반도에서 교통망이 빠르게 연결되면서 실제 이동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경부선이 전 구간 영업을 시작하고 개통식을 치르면서 서울–부산 같은 장거리 이동이 현실화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시간표, 정차역, 요금, 환승 같은 정보를 한데 모은 안내서가 실무에 필요했다. 사진은 이 시기에 발행된 《한국 철도·기선 안내》 책자다.

출처: 철도박물관
#5

1950~1980년대에는 철도를 소재로 한 가요가 많이 나왔다. 그 시기에 철도는 우리나라 사람의 일상 이동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근대적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이 늘어났고, 철도는 떠남, 기다림, 그리움, 성공을 향한 출발 등의 상징적 장치가 됐다.

출처: 철도박물관
#6

1925년 10월 경성역(현 서울역) 신축 당시 2층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그릴(Grill)’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유명했다. 세공 식기는 당시 엘리트층만 이용할 수 있는 럭셔리 공간임을 보여준다.

출처: 철도박물관
#7

6·25전쟁 당시 경성역(현 서울역)은 미군 B-29 폭격기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1950년 6월 29일 첫 폭격 목표로 선정돼 북한군 보급열차·시설이 파괴됐고, 이후 용산역과 연계해 융단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출처: 한국철도공사
#8

사진은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개통식 당일에 서울역 지하구간으로 진입하는 전동차 모습이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9

1975년 12월 5일, 한국 철도가 횡단 전철화 시대를 연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경인선 개통(1899년) 이후 70여 년간 경제·사회·군사 발전에 기여한 철도가 수도권 전철화(1973~1974년)를 거쳐 영동선 북평까지 연결되며 인천항~동해를 잇는 국토 횡단 전철이 완성됐다.

출처: 한국우편사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