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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시를 만들어 낸 철도
우리는 전국 어디서나 같은 시간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140여 년 전만 해도 시간은 지역마다 제각각이었다. 당시에는 태양의 위치를 따르는 지역적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보편적인 시간 체계는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대륙을 하나로 이은 철도가 만든 산물이다.
그리니치 표준시를 기준으로 삼은 영국
1825년 영국 스톡턴-달링턴 노선을 시작으로 증기기관차가 등장하자 세상은 열광했다. 시속 15km의 마차 시대가 저물고 시속 50km의 증기기관차가 나타나자 속도의 혁명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지역
간의 ‘시차’였다.
당시 영국인들은 각 지역의 머리 위에 해가 뜰 때를 정오로 삼았다. 문제는 런던의 정오와 서쪽 브리스틀의 정오 사이에 약 10분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마차 시절에는 아무 문제가 없던 이 10분이 동서를
가로지르는 서부 철도(Great Western Railway) 개통 이후 치명적인 사고 위협이 되었다. 런던에서 출발한 열차가 브리스틀에 도착하면 역무원의 시계와 열차 안의 시계가 매번 10분씩 어긋났고, 이는 대형
사고의 위험과 승객들의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10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철도 회사는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시간을 통일해 버렸다. 사람들은 이를 ‘철도 시간(Railway Time)’이라 불렀다.
마을의 시계탑은 지역의 태양을 따르고 있지만 기차역의 시계는 그리니치를 따르는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1847년 영국철도연맹이 모든 노선에 그리니치 표준시(GMT)를 도입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태양이 아닌
‘선로’에 시계를 맞추기 시작했다.
미국의 혼란을 잠재운 철도
바다 건너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드넓은 영토 탓에 무려 80개가 넘는 지역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철도망이 확대될수록 안전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불거졌다. 특히 단선 구간에서 서로 다른 기준 시간을 가진
열차가 마주 달려오는 상황은 대참사를 예고하는 것과 같았다.
비극은 1853년 로드아일랜드주 밸리폴스에서 터졌다. 프로비던스 & 우스터 철도(Providence & Worcester Railroad) 소속의 두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두 기관사 시계의 ‘2분 차이’였다. 한 회사 소속이었음에도 서로 다른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이던 두 열차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커브길에서 충돌하고 말았다. 이 참혹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표준시의 필요성을
인지시켰다.
비극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표준시가 공식 도입되기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각 주의 자존심을 내세운 시장들, 독자 노선을 고집한 철도 회사들, 그리고 신의 영역인 태양의 시간을 인간이 건드려선 안 된다는
종교적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이 혼란을 잠재운 이는 미국 철도 총괄 책임자 회의의 간사였던 윌리엄 F. 앨런이었다. 그의 주도로 1883년, 미국 철도 업계는 대륙의 시간을 4개의 시간대(동부, 중부, 동쪽 산악
지역, 서부 태평양 지역)로 나누는 합의를 이뤄냈다. 도입 초기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은행, 학교 등 주요 기관들이 기차 시간에 맞춰 일정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철도 시간은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철도가 표준시를 도입한 지 단 1년 만에 사고율은 급감했고 물류 효율은 높아졌다. 세계 각국은 이를 주목하며 1884년 워싱턴 D.C.에서 국제자오선회의를 열고 인류 공통의 기준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는 전신과 바다를 누비는 배들을 위해 단 하나의 ‘영점(0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의 결과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본초자오선으로 낙점되었다. 영국의 강력한 해상권과 이미 표준화를 마친 영국 철도의 선례, 그리고 신흥 강대국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합쳐진 결과였다. 이로써 그리니치
평균시(GMT)는 이후 100년 넘게 세계의 기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