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기록

철도는 한 번에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철도를 떠올릴 때 플랫폼에 들어서는 열차와 그 속의 풍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철도는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년간 이어지는 치열한 검토와 설계, 땀방울이 맺힌 공사와 시험운행이 차곡차곡 쌓여야 선로 위에 ‘첫 번째 열차’가 발을 내디딘다. 이 과정은 마치 사람의 성장과 같다. 철도 역시 생명을 얻어 태어나고(설계·건설), 치열하게 살아가며(운영 및 유지관리), 때로는 노쇠해 아프기도 하지만(노후),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회복하고(보수·개량), 임무를 다한 뒤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폐선부지 활용). 말 그대로 철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그 흐름 속에서 국가철도공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에 대해 김윤양 SE융합본부장이 현장에서 느낀 이야기로 풀어봤다.

철도의 생로병사

철도망구축계획~개통

운영 및 유지관리

유지보수 및 개량

재탄생

철도망 구축계획 반영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고시

기본 및 실시 설계

노반/궤도/건축 공사

전기·신호·통신 시스템 구축

종합시험운행

개통

운영 및 유지 관리

유지 보수 및 개량

폐선 발생

철도 폐선부지 활용

주민친화 공간 및 지역 거점으로 부활

철도의 시작: 필요를 찾고, 길을 정하는 일

철도의 시작은 화려한 설계도가 아니라,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철도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기반시설인 만큼 단지 ‘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바람만으로는 궤도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노선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전체의 큰 그림을 담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이 계획은 우리나라 철도 분야의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어느 지역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 비전과 방향성을 담고 있습니다.

계획이 정해진 뒤에는 가장 엄격한 관문이 기다립니다. 바로 사전타당성조사와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입니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는 사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핵심 절차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검토되는 가치를 크게 세 가지라고 정리합니다. 첫 번째는 경제성입니다. 사회 전체 관점에서 투입 비용 대비 편익이 충분한지를 따져봅니다. 두 번째는 정책성입니다. 숫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공공성과 필요성, 국가 정책과 상위계획의 정합성을 살핍니다. 마지막은 지역균형발전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고 국토가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경제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 ‘추진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국가철도공단은 단순한 서류 작업을 넘어서 노선의 목적과 효과가 설득력 있게 정리되도록 돕고, 관련 기관 및 지역과의 협의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조정합니다. 철도는 결국 사람의 삶을 바꾸는 기반시설이기에 출발점부터 꼼꼼해야 합니다.

철도의 시작: 긴 수명을 결정하는 정교한 밑그림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고시로 철도의 방향이 정해지면, 이제 이 길을 구체화하는 ‘설계’의 시간입니다. 기본계획 단계는 노선의 세부 대안과 정거장의 위치, 개수를 확정 짓는 골격을 형성합니다. 정거장 하나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지역의 생활권과 부동산 지형은 물론, 지역 산업의 흐름까지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릴 수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투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청회와 주민설명회 같은 절차가 번거로워 보여도 결국 사회적 신뢰를 쌓는 핵심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설계 단계에 들어서면 철도의 미래 수명을 좌우할 세 가지 핵심 기준이 적용됩니다. 첫째는 생애주기비용(LCC)입니다. 과거에는 당장의 공사비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완공 후 수십 년간 들어갈 유지관리 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예산의 합리성을 따져야 합니다. 둘째는 철도 시스템의 완결성을 뜻하는 RAMS입니다. RAMS는 신뢰성(Reliability), 가용성(Availability), 유지보수성(Maintainability), 안전성(Safety)의 앞 글자를 딴 지표입니다. 철도 시스템이 얼마나 신뢰성 있게, 필요할 때 바로 가동되고, 유지보수가 쉽고, 무엇보다 안전한지를 수치와 체계로 관리하는 기준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유지관리 기반 설계가 중요합니다. 시공 전부터 시설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연결해 운영 단계에서 더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토대를 닦는 것입니다.

철도의 시공: ‘몸과 신경’을 완성해 생명력을 불어넣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 철도는 비로소 거대한 시스템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토목 공사가 교량과 터널, 노반을 닦으며 철도의 뼈대와 ‘몸’을 만든다면, 그 뒤를 잇는 궤도와 전기, 신호, 통신 공정은 그 구조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조립 과정입니다.

먼저 궤도 공사는 철도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기본 체력’입니다. 레일과 침목, 도상은 열차의 하중을 견뎌내는 동시에 진동을 흡수하고, 바퀴가 흔들림 없이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줍니다. 같은 선로라도 궤도의 품질에 따라 승차감과 소음, 향후 유지보수 비용이 크게 달라지기에 우리 공단은 이를 가장 기초적인 핵심 역량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도가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전기와 신호, 통신이 연결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기는 변전소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전차선으로 공급해 열차를 달리게 하고 역사를 밝히는 ‘혈액(에너지)’과 같습니다. 전기가 없는 철도는 멈춘 구조물에 가깝지만, 전기가 흐르는 순간 철도는 비로소 생체가 됩니다. 신호는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진로와 간격을 제어하며, 위급할 때 자동 제동까지 수행하는 ‘두뇌이자 신경계’입니다. 열차가 언제 서고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안전의 최후 보루인 셈입니다. 여기에 상황을 감지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감각과 언어’인 통신이 더해지면, 철도는 외부와 소통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거듭납니다.

이처럼 에너지(전기)와 판단(신호), 소통(통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 있는 철도’가 갖춰지면, 마지막 관문인 종합시험운행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은 설비가 각각 잘 작동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안전을 보장하는지를 확인하는 ‘탄생 전 최종 검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도의 유지 관리: 안전하게 오래 달리게 하는 일

철도는 개통하는 순간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합니다. 철도의 일생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시기는 오히려 개통 이후입니다. 모든 시설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후화되기 마련이기에, 유지관리의 핵심은 상태를 정확히 읽고 최적의 타이밍에 판단하는 ‘적기 관리’에 있어야 합니다. 시설물은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점검·진단되며, 그 결과에 따라 보수·보강 또는 개량을 결정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기준과 데이터입니다.

우리나라는 철도시설 상태 평가를 「시설물안전법」과 「철도건설법」에 근거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진단 결과는 A부터 E까지의 성능등급으로 매겨지는데, 이 등급은 단순한 알파벳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얼마를 투입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객관적 지표가 됩니다. 이런 체계가 있어야 현장은 우선순위를 흔들림 없이 정하고, 예산과 인력을 가장 시급한 곳에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이 시설 이력관리입니다. 점검 결과, 보수 이력, 상태 변화 같은 정보가 축적되면 의사결정이 달라집니다.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게 찾을 수 있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우선순위도 정교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결국 유지관리는 ‘얼마나 많이 고쳤나’가 아니라 ‘어떻게 위험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했나’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우리 공단은 이런 방향을 담아 ‘철도시설 스마트 유지보수 마스터플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첨단 검측장비와 유지보수 장비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점검의 그물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고, 사물인터넷(IoT) 기반 시설 상태 정보와 AI 분석 기술을 결합해 위험 구간을 미리 찾아내는 유지관리 체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낡은 것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최적의 시점에 최적의 자원을 투입해 철도의 수명을 늘리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철도의 삶’입니다.

철도의 재탄생: 멈춘 선로 위에서 피어나는 일상

철도의 생로병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역설적으로 철도의 ‘죽음’ 이후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고속화를 위해 선형개량이 이뤄지다 보면, 소임을 다한 옛 철길이 폐선부지가 됩니다. 길고 좁은 형태의 특성상 개발이 까다로워 방치되기 쉬운 이 공간들에 우리 공단은 새로운 쓰임을 더합니다. 철도 폐선부지 활용사업을 통해 쓸모를 잃었던 땅을 지역사회가 다시 누리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공단이 추진하는 폐선부지 활용의 원칙은 네 가지 가치 위에 세워집니다. 공공성, 지역상생, 안전, 그리고 기억의 보존입니다. 남겨진 땅을 처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합니다. 산책로와 쉼터, 지역의 거점 생활공간으로 돌려드리는 한편, 그곳이 한때 열차가 달리던 철길이었다는 기억이 남도록 안내판이나 상징 조형물도 함께 검토합니다.

어둡고 가로막혔던 옛 철길이 숲길과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철도의 생명은 ‘운송’이라는 목적을 넘어 ‘공존’이라는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MINI INTERVIEW

오랜 시간 근무하시면서 “우리의 노력이 철도의 미래를 바꿨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처음 공단에 발을 들였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의 지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경부고속철도 시대를 넘어 전국 주요 거점을 2시간대로 묶어 ‘전국 단일 생활권’을 현실로 만들어가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철도는 단순히 선로를 건설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벌어주는 일입니다. 고된 출퇴근길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GTX를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되찾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만든 철도가 누군가의 삶의 질을 바꾸는 결정적 인프라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보람을 느낍니다. 철도를 어떤 사람에 비유하고 싶으신가요? 철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소통가’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철도의 본질은 결국 ‘연결’에 있으니까요. 도시와 농촌을 잇고, 소외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누구나 차별 없이 보편적인 이동권을 누리게 하는 철도는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제가 조직을 이끌 때 가장 경계하는 것도 ‘단절’입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갈등의 지점들을 매끄러운 철길처럼 이어 나가는 것. 그것이 철도가 지닌 포용의 미학이자 제가 지향하는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끝으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요? 철도 공학에는 열차가 멈추는 ‘종착역’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끝이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철도는 이제 운송 수단을 넘어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복지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국가철도공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국민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누리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철도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철도는 사람의 마음과 시간을 잇는
따뜻한 소통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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