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철도

불과 연기를 내뿜는 수레가 바다로 달리던 첫 아침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에서 제물포를 잇는 33.2km의 철길.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가 움직이며 한반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독립신문》 1899년 9월 18일 자 기사 “객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고,
나는 새도 기차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겠더라.”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경인철도 개통식

경인선(京仁線)은 한국 철도사의 출발점이다. 19세기 말, 제물포와 도성인 한성을 잇는 교통망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철도 부설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 결실로 1899년 9월 18일,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구간이 먼저 개통되며 한반도에서 철도가 실제로 운행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경인선의 첫 기적을 울린 주인공은 미국 브룩스(Brooks)사에서 제작한 ‘모가(Mogul)형 증기기관차’였다. 1899년 6월, 미국에서 부품 형태로 들여온 이 기차는 인천공장에서 조립되어 시운전을 마친 뒤 철길 위에 올랐다. 경인선의 등장은 물리적 거리감을 혁신적으로 파괴했다. 성인 걸음으로 온종일 걸리던 서울과 인천 사이를 단 2시간으로 단축하며, 바야흐로 ‘속도의 시대’를 열었다.

개통 당시 서울역이 종점이 아니라 노량진이었던 이유는 한강철교가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객들은 노량진에서 내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도심으로 들어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이후 1900년 한강철교가 개통되면서 경인선은 비로소 서울(당시 남대문역)까지 완전히 이어지게 됐다.

경인선 개통의 가치는 단순히 이동 수단의 확장을 넘어선다. 철도는 압도적인 수송 능력과 정시성을 바탕으로 도보와 우마차 중심의 전통적 물류 구조를 근대적으로 재편했다. 특히 항구와 내륙 도시를 잇는 유통 거점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대외 교역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는 철도의 시간은 사회 전반에 근대적인 시간 감각을 심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사람들은 이 낯선 기계를 ‘불과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라는 뜻의 ‘화륜거(火輪車)’라 불렀다. 이 명칭에는 기차가 내뿜는 굉음과 거대한 형체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시각적·청각적 충격이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인선은 이후 경부선과 경의선으로 이어지는 철도망 확장의 초석이 됐다. 1899년의 그 아침은 교통·물류, 도시 구조를 넘어 삶의 양식까지 변화시킨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점이었다.

경인철도 1차 기공식

길이 열리면 풍경이 아니라
생활의 방식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