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경의선 부설 현장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철도의 속도를 만들어 낸 궤도
철도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흔히 기관차와 차량의 발전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차량이라 하더라도 이를 안전하게 받쳐주는 선로가 없다면 속도를 높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철도 120여 년의
역사는 차량의 발전뿐 아니라 레일·침목·도상·체결장치와 이를 유지하는 보선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철도궤도는 차량을 직접 지지하고 주행방향을 유도하는 레일, 레일의 위치와 궤간을 유지하면서 열차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침목, 그리고 하중을 노반으로 전달하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도상으로 구성된다. 철도 초창기에는 열차의
운행 횟수와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레일과 목침목을 사용하고 사람이 직접 선로를 보수하는 방식으로도 철도운영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열차의 속도가 빨라지고 운행 횟수와 수송량이 증가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무거운 차량이 빠른 속도로 반복하여 통과하게 되면 레일과 침목, 도상의 부담이 증가하고 궤도틀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철도의 고속화는 차량 성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로 전체의 강도를 높이고 유지관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기술 발전을 요구하였다. 한국 철도의 속도 향상 과정에서 이러한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노선이
경부선이다.
표준궤간의 채택과 근대 철도궤도의 출발
한국 철도의 궤도기술은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896년 서울∼인천 간 철도부설권이 허가될 당시 이미 궤간은 4피트 8½인치, 즉 오늘날의 1,435mm 표준궤간으로 계획되었다.
경인선은 이후 일본계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의해 건설되면서 25kg/m급 레일과 목침목을 사용하여 1899년 9월 18일 영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궤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은 1,067mm 협궤를 채택하고 있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는 1,524mm 광궤였다. 이에 비해 중국의 주요 철도는 표준궤간을
사용하였다. 대한제국도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친 끝에 결국 표준궤간을 선택하였다. 이후 경부선과 경의선 등 주요 간선이 모두 표준궤간으로 건설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철도 네트워크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졌다.
1905년 개통된 경부선은 한국 철도의 궤도기술과 속도 향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선이 되었다. 초기 경부선의 열차는 증기기관차로 서울과 부산을 약 14시간에 연결하였다. 이후 철도시설과 차량의 개선이 계속되면서
운행시간은 점차 단축되었다.
1946년 해방자호가 약 9시간, 1955년 통일호가 약 7시간, 1962년 재건호가 6시간 10분으로 단축되었고, 1969년 관광호가 등장하면서 서울∼부산 운행시간은 4시간 50분까지 줄어들었다. 관광호는
1974년 새마을호로 개칭되어 이후 한국 철도의 대표적인 우등열차가 되었다.
이러한 속도 향상 뒤에는 차량의 발전과 함께 레일의 중량화와 장대레일화, PC침목의 도입, 도상 보강, 체결장치 개선이라는 궤도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광궤열차의 전망차
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종로전차 궤도 부설공사
출처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목침목에서 PC침목으로, 이음매 레일에서 장대레일로
1960년대 이후 한국 철도 궤도기술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PC(Prestressed Concrete)침목의 도입이다. 초창기 철도에는 대부분 목침목이 사용되었다. 목침목은 가공과 취급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명이 짧고 열차가 고속화·중량화될수록 강도와 유지관리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1958년 독일형 PC침목 기술을 도입하여 시험 제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국산화와 기술개량이 진행되면서 PC침목의 사용이 확대되었다. PC침목은 목침목에 비해 수명이 길고 강성이 높아 열차의 고속화와
중량화에 적합했다. 이후 전국에 PC침목 생산시설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계도 구축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은 장대레일(Long Welded Rail)의 도입이었다. 전통적인 철도 레일은 일정한 길이의 레일을 이음매판으로 연결하는 구조였다. 열차가 이음매를 통과할 때마다 충격과 소음이 발생하였으며,
이음매 부분의 손상은 선로 유지보수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일을 용접하여 수백 미터 이상 하나로 연결하는 장대레일 기술이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경부선 삼랑진∼원동 구간에서 장대레일 시험부설이 이루어졌고, 1966년 시흥∼안양 구간에 약 1,200m의 장대레일이 부설되면서 본격적인 장대레일 시대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용접기술과
레일의 온도변화에 따른 팽창·수축 문제가 중요한 과제였으나 테르밋 용접과 가스용접 등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대레일은 주요 간선으로 확대되었다. 장대레일의 확대는 열차의 충격과 소음을 줄이고 승차감을 높였을 뿐
아니라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였다. 무엇보다도 열차의 고속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사람 중심의 보선에서 기계화 보선으로
궤도구조가 강화되는 것과 함께 유지보수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철도 초창기에는 선로보수의 대부분을 사람이 직접 담당하였다. 작업자들이 삽과 곡괭이, 다짐도구를 들고 자갈을 정리하며 선로의 높이와 방향을 맞추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열차 운행 횟수와 통과톤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인력 중심의 보선 방식에는 한계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1968년경부터 보선기계화가 추진되었다. 당시에는 보선기계화에 대한 인식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철도당국은 기계화를 선로 현대화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였다. 1971년에는 IBRD 자금 200만 달러를 활용해 대형 보선장비를 도입하였고 이를 계기로 한국 철도에서도 조직적인 기계화 보선이 본격화되었다. 보선기계화는 단순히 사람을 기계로 대체한 것이 아니었다. 궤도의 방향과 높이, 수평을 보다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선로 품질 자체가 향상되었다. 이는 열차 속도를 높이면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기반이었다.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깬자갈 도상, PC침목, 탄성체결장치, 장대레일, 기계화 보선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1978년에는 레일 국산화도 이루어져 한국 철도의 궤도기술은 점차 해외기술 의존에서 자체 기술축적 단계로 발전하였다.
철로변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구 장항역의 모습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경부선 150km/h 시대와 고속철도의 준비
1980년대는 기존 철도에서 속도향상을 본격적으로 추구한 시기였다. 1984년 철도청은 선로·차량·신호·운전 분야 전문가로 ‘경부선 속도향상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서정리∼천안 구간을 시험선구로 선정하여 선로를
정비한 뒤 고속주행시험을 시행하였으며, 시험 결과 150km/h급 운행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를 위해 경부선에서는 장대레일을 확대하고 PC침목과 팬드롤형 탄성체결장치를 보강하였다. 곡선부와 분기기, 신호 절연구간도
고속운행에 적합하도록 개량하였다. 이러한 종합적인 궤도보강을 통해 새마을호는 1985년 최고속도 150km/h 체제로 발전하였으며, 서울∼부산 운행시간도 4시간 10분까지 단축되었다. 다만 실제 150km/h 운행이
가능한 구간은 제한적이었으며 상당수 구간은 135km/h 수준이었다.
이 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철도의 속도향상은 단순히 더 빠른 기관차를 도입한 결과가 아니었다. 레일의 중량화와 장대화, 목침목에서 PC침목으로의 전환, 도상 강화, 탄성체결장치 도입, 선형개량,
보선기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종합적인 철도기술 발전의 결과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천선·분당선·일산선 등 수도권 신설노선에는 유지보수를 줄일 수 있는 콘크리트도상 궤도가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는 이후 고속철도에서 사용되는 보다 안정적이고 정밀한 궤도구조로 발전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고속철도 기반을 만든 100년의 궤도기술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약 100년 동안 한국 철도의 궤도는 크게 변화하였다. 경량에서 중량 레일로, 이음매 레일에서 장대레일로, 목침목에서 PC침목으로, 인력보선에서 기계화 보선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자갈도상
중심의 궤도에서 콘크리트도상 궤도까지 발전하면서 열차의 고속화·중량화에 대응할 수 있는 선로기술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더 빠르고, 더 안전하며, 더 편안한 철도였다.
2004년 KTX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한국 철도는 시속 300km의 고속철도 시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속철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기반에는 경인선과 경부선에서 시작하여 약 한 세기에 걸쳐
축적된 레일·침목·도상·보선기술이 있었다.
따라서 고속철도 이전 한국 철도의 궤도 발전사는 단순한 시설개량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철도의 속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축적해 온 기술혁신의 역사이며, 오늘날 한국 고속철도를 가능하게 한
토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콘크리트 궤도 구조 종류
KR형(한국형)
Rheda-2000
Rheda-Clas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