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2월 영암선 영주 ~ 철암 간 전통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신한국철도사
1955년 12월 30일, 영암선이 개통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 기술진의 힘으로 처음 건설한 철도였기 때문이다. 6·25전쟁으로 공사가 멈추고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야 했던 길. 그 끝에 울린 기적 소리는 단순한 개통의 신호가 아니었다. 이제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의 소리였다.
1955년 12월 영암선 영주 ~ 철암 간 전통
영암선 인부 명부
해방 직후 우리는 심각한 연료난을 겪었다. 1948년 북한의 송전 중단으로 전력 사정까지 악화되자 석탄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해졌다. 강원 남부 태백산맥 일대에는 무연탄이 풍부했지만, 험준한 산세 탓에 내륙으로 곧장
실어 나를 철도가 없었다. 석탄을 묵호항으로 보낸 뒤 배와 철도를 갈아타며 먼 길을 돌아야 해 3일이라는 시간과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가 영주와 철암을 잇는 영암선을 추진했다. 중앙선 영주에서 철암까지 철도를 놓아 태백산맥의 석탄과 산림자원을 내륙 철도망에 바로 연결하려 한 것. 영암선은 두 지역을 잇는 철도를 넘어 자원이 있는
곳과 필요한 곳을 잇는 산업의 길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계획에 낙관하는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생국가가 부족한 자금과 장비, 경험으로 험준한 산악철도를 완성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나왔다. 실제로 공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1949년 4월
영주에서 시작한 공사는 이듬해 지금의 봉화까지 철길을 열었지만 6·25전쟁으로 중단됐다. 3년여 뒤 공사가 재개됐을 때는 전쟁으로 자재와 장비가 사라진 데다 산악지역의 치안까지 불안했다. 그래도 철길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육군공병대와 철도운영대·수송대까지 장비와 병력을 보탰다. 가장 큰 상대는 태백산맥이었다. 험준한 산을 만나면 뚫고, 계곡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승부역
일대는 양쪽에서 진행하던 공사가 모두 멈출 만큼 험준한 난공사 구간이었다.
마침내 1955년 12월 철길이 철암까지 닿았다. 다음 날에는 태백지역의 무연탄과 시멘트를 실은 열차가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산속에 묻혀 있던 자원이 전국으로 빠르게 이동할 길이 열린 것이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절, 그것도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 우리 기술진의 힘으로 완성한 철도. 수년간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끝내 길을 냈다는 벅찬 자부심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산 너머 세상과 연결됐다는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석탄과 물자를 싣고 달릴 첫 열차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제 나라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영암선 개통 뒤 태백산맥의 석탄은 더 이상 해안을 거쳐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발전소와 공장, 철도에 필요한 연료가 내륙으로 빠르게 공급되면서 전후 산업 재건에도 힘을 보탰다.
1963년 영암선은 다른 노선과 통합돼 영동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암선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철길은 지금도 남아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를 길이 절실했던 시절, 산을 뚫고 계곡을 건넌 이 철도는 대한민국의
산업 기반을 세운 한 줄의 길이었다.
1955년 7월 1일, 영암선 봉성~춘양 구간 개통 행사
1955년 이전, 영암선 공사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