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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따라 커진 축구판

얼마 전 한 달 넘게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2026년 FIFA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경기장이 있는 도시를 찾아 수많은 팬이 국경을 넘고, 수백에서 수천km를 이동하는 모습도 월드컵이 만든 풍경이다. 좋아하는 팀을 따라 다른 도시로, 나라로 이동하는 원정은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이러한 원정 경기와 관람 문화가 자리 잡는 데에는 철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도 노동자들이 즐긴 축구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에서는 공장과 철도가 빠르게 늘었다. 기관차 운전, 차량 정비, 선로 보수, 신호, 화물 운송 등 철도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많이 늘었다. 한곳에 모여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됐고, 일이 끝난 뒤나 주말이면 동료들과 함께 즐길 여가 활동이 필요해졌다.

축구는 이에 잘 맞는 스포츠였다. 공 하나와 넓은 공간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회사에서는 부서별로 팀을 꾸려 경기를 하거나 다른 철도회사·공장 노동자들과 친선경기를 벌였다. 직접 공을 차는 사람이 늘자 동료의 경기를 구경하고 응원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직장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축구팀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전신인 ‘뉴턴 히스 LYR FC’는 1878년 랭커셔·요크셔 철도 노동자들이 만든 팀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철도 부서나 철도회사 팀과 경기를 벌이던 직장 축구팀에 가까웠다. 일이 끝난 뒤 동료들과 공을 차던 작은 팀이 훗날 세계적인 축구클럽으로 성장한 것이다. 철도도시 크루를 연고로 하는 크루 알렉산드라 역시 지금도 ‘The Railwaymen’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철도가 넓힌 축구의 반경

축구팀이 늘면서 상대를 찾아 더 먼 곳으로 가야 할 일도 많아졌다. 가까운 지역의 팀끼리만 경기를 치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철도망이 충분히 갖춰지기 전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바꾼 것이 철도였다. 맨체스터, 리버풀, 셰필드, 버밍엄 등 주요 산업도시가 철도로 연결되면서 선수들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다른 도시의 팀과 정기적으로 맞붙을 수 있게 되자 친선경기는 점차 대회와 리그로 발전했고, 축구 무대도 지역에서 전국으로 넓어졌다.

철도를 탄 사람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응원하는 팀을 따라가는 관중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882년 FA컵 당시 랭커셔·요크셔 철도는 축구팬들을 위한 특별열차를 운행했다. FA컵 준결승이 열린 허더즈필드까지 약 2,000명, 런던에서 열린 결승전에는 약 1,200명의 팬을 실어 날랐다. 북부 지방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따라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규모는 빠르게 커졌다. 1904년 맨체스터 시티와 볼턴 원더러스가 맞붙은 FA컵 결승 때는 약 100편의 특별열차가 북부 지역 팬 약 3~4만여 명을 런던으로 실어 날랐다. 런던과 남부 지역에서 온 관중까지 합쳐 약 6만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향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경기를 보고, 저녁이면 다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날 익숙한 축구 원정의 하루가 이미 이 무렵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 축구에서 원정경기를 뜻하는 ‘어웨이 데이(Away Day)’​를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는 문화도 철도를 타고 도시와 도시를 오가던 축구팬들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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